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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Kwon Apr 14. 2020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일상에서...] 코로나19 시대... 모든 것이 정지된 미국에서의 하루

새벽 3시. 함께 자고 있던 6살 딸아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아빠... 내가 너무 피곤했나 봐..."

"자다가 갑자기 왜?"

"내가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다가 오줌을 쌌어..."


옆에는 17개월 된 동생이 함께 자고 있었다.

침대는 물론 두 아이의 몸도 젖어있었다. 둘째는 그것도 모른 채 새근새근 잘도 잤다.


1층에서 잠든 아내를 깨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찰나에 '어제 늦게까지 일하다 잠이 들었지...' 하며 마음을 접었다.


포기가 빠르면 행동도 빨라진다. 큰 아이를 먼저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씻긴 후 옷을 입혔다. 

그 사이 작은 아이가 깼다. 둘째는 물티슈로 몸을 닦아준 뒤 새 옷으로 입혔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둘째는 언니와 함께 무엇을 한다는 즐거움에 실실 웃고 있었다.


다 젖은 침대보를 벗겨냈다. 세탁실에 집어넣고 다른 침대보를 씌운 뒤 두 아이를 다시 눕혔다. 

아이들이 다시 곤히 잠들도록 '알렉사'에게 자장가를 들려달라고 했다. 매일 듣는 자장가가 흘러나오니 아이들도 어느새 잠이 든다. 


시간은 어느새 4시 30분. 피곤함에 일어나기는 싫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회사로 향했다. 

이런 생각과 함께...


"그런데 다 큰 아이가 갑자기 오줌은 왜 쌌을까... 진짜로 너무 피곤했나?"


며칠 뒤 한국에서 나온 기사를 보고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다. 


육아정책연구소·한국 발달심리학회에 따르면 어른뿐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이른바 '재난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 아이들이 받는 '코로나 스트레스'는 ▶일상의 변화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말보다 행동으로 스트레스를 표현하며 ▶부모 반응을 통해 재난 상황 이해하지만 ▶ 스트레스를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말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바뀌는 행동양식을 보면 식습관 변화, 수면 어려움, 야뇨증, 악몽, 아기 짓 같은 퇴행적 행동, 짜증·공격성 증가 등이 대표적이라는 것. 


"너도 팬데믹 시대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구나..."


돌이켜 보면 비슷한 행동을 보인 적이 또 있었다. 주말 둘째 딸아이의 낮잠 투정이 시작돼 첫째 딸과 함께 차로 인근 주택단지를 돌았던 적이 있다. 서행을 하면서 둘째를 재우는 동안 첫째는 주변에 핀 꽃에 감탄하기도 하고, 어느새 푸릇하게 돋아난 나뭇가지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그러던 중 운동을 하던 가족과 마주쳤다. 

첫째는 "하커다"라고 했다.

"하커? 누군데?"

"어 나 학교 친구. 인사하고 싶어. 아빠 다시 차 돌려봐. 얼른"


차를 돌리면 창문을 열어야 하고, 창문을 열고 인사를 하면 둘째 아이가 깰 것 같아서 다음에 만나면 꼭 인사하자고 타이른 뒤 그냥 가던 길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둘째 딸아이를 방에 눕히고는 잠시 소파에 앉았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첫째였다. 안방의 커다란 킹사이즈 침대를 가로질러 누운 채 이불을 덮어쓰고는 울고 있던 것. 


"갑자기 왜 울어? 무슨 일 있어?"

"아빠도 잘 알잖아..."

"어? "

잠시 생각하던 나는 하커를 떠올렸다. 


"아까 친구 인사 못해서?"

딸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 너무 가고 싶어. 친구들도, 미스 프리먼 선생님도 보고 싶어..."


아이에게도 집에서 매일 보내는 하루는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첫째의 일상은 이랬다. 오전 7시에 기상, 8시 20분 등교 후 학교에서 3시 30분까지 수업을 한 뒤 5시까지 애프터 스쿨에서 친구들과 보냈다. 그리고는 엄마와 집에 돌아오거나 발레, 미술, 리딩 등 학원에 가는 일상이었다.


지금은 일어나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동생과 놀아주다가 엄마가 일하는 동안 유튜브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상도 이제 힘겨워진 것이었다. 


딸아이의 마음이 좋지 않은 이유는 또 있었다.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주정부는 아예 학기말까지 휴교령을 내리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했다. 가을학기부터 시작하는 미국의 특성상 킨더가든에 재학 중인 아이는 8월, 1학년이 된다. 그동안 함께 지냈던 선생님과 같은 반 아이들을 못 본 채 새 학년으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코로나 사태가 만들어낸 이별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터 딸아이는 "미스 프리먼(MS. Freeman)이 보고 싶어"라고 했다. 프리먼은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이다. 내가 보기에도 예쁜 백인의 젊은 선생님이다. 불만이 있다면 늘 판다 같은 눈 화장. 아내에게 우스갯소리로 늘 한국식 화장법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농담을 던지곤 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미안한 감정이 몰려왔다. 힘든 건 아내와 나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한 달 전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온종일 두 아이와 씨름하면서 일은 일대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3주 전부터는 나도 주 2회씩 재택을 하게 돼 손을 덜어주고 있다. 그럼에도 일, 아이들 삼시 세 끼, 그리고 온라인 수업까지 봐줘야 하는 상황은 곤혹 그 자체다. 


현재 미국은 코로나19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14일 미 존스홉킨스 대학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8만 1679명. 사망자는 2만 3529명이었다. 거주하고 있는 조지아주는 1만 3315명. 사망은 464명.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숫자를 보면서, 또 마트, 은행 등 한인들이 일하는 곳곳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불안감은 점점 높아만 간다. 


불안감의 원인은 부실한 의료체계에서 나온다. 부족한 의료인력과 비품, 병상까지 온전하게 갖춰진 것이 없다. 코로나 증상이 있어도 진단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코로나 진단을 받아도 죽기 직전의 중증이 아니면, 또 기저질환이 없으면 방법은 자가격리를 통한 휴식만이 방법이다. 현시점에서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코로나 극복을 위한 결론은 예방뿐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이기도 하다. 


최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민낯을 보면서, 

기술의 발달로 무인 자동차가 다니는 시대에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정지된 모습을 보면서 

허무함과 한없이 작은 내 모습을,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코로나 사태의 긍정적인 면일까.  


유튜브에서 들은 한 신학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프랑스의 자크 엘륄이라는 사상가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지혜는 헛되다는 걸 인식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어진 교수님의 말은 이렇다. 

"다 잊힌다. 우리의 삶을 정리하는 그 순간에는 

거대한 저작이나 위대한 건물이 남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헌신했던 작은 가치의 구슬들이 놓여있을 것이다."


위기가 오면,

고난 중에 있으면, 

모든 불필요한 생각과 행동들을 멈추게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가치를 찾고, 

가치 있는 일들을 또 하나씩 해나가는 것.


거대한 담론 

큰 비전

야망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그 안에서의 작은 성취에 웃고, 

또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것이 

평범한, 또 비범한 우리들의 인생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언제 또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데이케어에 학교에 직장에...

서로 다른 곳에서 매일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전염병으로 인해 집이라는 곳에 오랜 시간 함께하는 것.

코로나가 주는 긍정적인 요소 중 하나다.  


돌이켜보면 

고난은 

불편은

늘 우리의 겸손을 부르는 신호였다. 


2020년 4월 14일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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