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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Kwon Jun 19. 2019

나의 카톡 친구에게...

[일상에서...]



첫 아이가 태어난 후 2013년부터 아내와는 서로를 ‘카톡(카카오톡 메신저) 친구’라고 부른다. 지난해 둘째가 태어난 후에도 우리는 '카톡 친구'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는 오전 8시 등교하는 큰 딸아이를 바래다 주기 위해 오전 6시부터 서두른다. 둘째 옆에만 붙어있는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갑질'(?) 아닌 갑질을 하는 첫째는 잠에 드는 것도, 씻는 것도 혼자 하려고 하지 않는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그나마 골라주는 옷을 입기만 해 줘도 감지덕지다. 옷이 낀다든지, 덥다던지... 늘 핑계가 다르다. 핑계를 생각해내는 걸 보면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잠은 덜 깼고, 어리광은 부리고 싶은데 동생이라는 작자가 어느새 옆에 있으니 그러지도 못하고... 5살 배기 딸의 고충도 오죽할까 싶다. 


아내가 전쟁을 치르는 사이 잠에서 깬 6개월 된 둘째를 보는 건 내 몫이다.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거나 안아주고는 출근을 위해 아이를 부모님께 맡긴다. 한국에 거주하시는 부모님은 둘째 손녀를 봐주시기 위해 수개월 째 미국에서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하고 있다.  

 

오전 10시 30분. 회사에 도착해 이메일을 점검하고 급한 업무를 처리한 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는 아내와 딸이 잘 등교하고 출근했는지 여부를 '카톡' 메신저로 주고받는다. 하루 중 아내와 처음 소통하는 시간이다. 일과 중 혹여나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기라도 하면 ‘카톡’엔 불이 난다. 누가 아이를 데리러 갈지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아이가 열이 날 기미만 보여도 연락이 온다. 두말할 필요 없이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 


오후 5시 30분. 미국 회사에 다니면서 그나마 '칼퇴근' 한 아내가 첫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 5분 남짓 통화하는 시간이다.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말이 많아진 딸이 자기가 경험한 일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아빠에게 하루 동안의 사연을 꺼내놓기에 바쁘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노라면 속이 탄다. 업무상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퇴근 후 아내는 하루 종일 둘째와 씨름한 시부모님 눈치 보랴, 첫째와 놀아주면서 먹이고 씻기느라 또다시 전쟁을 치른다. 7시 반에서 8시 남짓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아내의 체력은 이미 고갈된 상태. 밥을 먹고 잠시 씻은 뒤 나의 임무는 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둘째를 재우는 일이다. 부부는 매일 누가 첫째를 누가 둘째를 담당할지 결정한다. 첫째는 늘 엄마와 자고 싶고, 둘째는 엄마 품에 있어야만 잠에 든다. 그러다 보면 아내는 매일 밤을 몽롱하게 지내기 일수다. 잠결에 첫째 아이의 학교 준비물을 챙기는 아내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2시간 남짓. 하루 동안 아내와 조우한 시간이다. 그나마 주중 저녁 모임이라도 있는 날에는 얼굴 한 번 보기가 쉽지 않다. 2시간 남짓한 시간 중에도 온전히 아내와만 함께한 시간은 별로 없다. 


서로를 ‘카톡 친구’라고 부르는 아주 길고 웃픈(?) 사연이다.

 

자녀들 때문에 힘든 것은 젊은 부부들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 것 같다. 최근 미국의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가 발표한 '2019 주택 구매·판매의 세대별 트렌드'에 따르면 높은 나이대의 밀레니얼 세대 가운데 다세대용 주택을 구매한 이들은 9%에 이르렀다. 이들 가운데 33%는 나이 든 부모를 모시기 위해서 다 세대요 주택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30%는 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 와중에 일부 밀레니얼 세대는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부메랑 키즈(boomerang Kids)’다. 자립할 능력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온 세대를 뜻한다. 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60대 초반의 비교적 재정이 넉넉한 부모에게 기대려는 숨은 의미도 담겨있으리라 본다. 급할 때 아이를 잠시 맡아 줄 부모님이 한 집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NAR의 로렌스 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높은 렌트비와 적정 가격 주택 부족 때문에 성인 자녀가 필요에 의해서 또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부모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밀레니얼 자녀 세대도, 은퇴한 부모 세대도 편하게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조금은 서툴고 흔들리는 그대에게 왜 사느냐고 묻거든’...


한 시인의 에세이의 제목이다. 누군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막 불혹에 접어든 지금, 답은 하나다. 


"가족 때문에" 


부푼 꿈과 비전을 안고 달려 나가던 20-30대와는 달리, 40대가 되니 포기할 일이 많아지고, 익숙해진다.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가족'을 위하는 방향으로 쏠린다. 특히나 가족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부모, 형제, 아내, 자녀가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둘째 주 일요일 ‘마더스데이’. 결혼 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에서 마더스데이를 맞는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아내와 점심시간을 빌어 잠시 통화한 적이 있다.  


이런저런 계획들을 의논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아내의 칼진 물음이 귓방망이를 때렸다. 


"마더스데이인데 난 뭐해줄 거야?" 


내 엄마만 생각했지, 딸들의 엄마인 아내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무심하게 말했다. 

"자기가 애들 엄마지 내 엄마냐? ㅎㅎ 애들한테 물어봐!" 

지금 돌이켜봐도 뭘 해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냥저냥 지나간 것 같다. 


오늘도 자식들에게 ‘내리사랑’을 전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부모들’, 그중에서도 오늘도 힘들게 하루를 버텨내면서 아이들의 웃음 한 번에 시름을 날리는 엄마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 아이들의 존경스러운 엄마인 '내 카톡 친구'에게도...  


“안녕, 카톡 친구. 당신도 힘내!!!”


참고로 이번 주 일요일(6월 16일)은 '파더스 데이'라던데... ㅎㅎ 


06.14.2019  Atlanta, 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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