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더울 때는 - 시골 밥상
서른에 만난 엄마의 텃밭 12
엄마의 밥상
7월 초,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는 언니의 말에 금요일 밤, 부여로 향했다. 차가 있다는 건 이럴 때 참 좋다. 하지만 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나는 경제적으로 더 자유롭지 않게 될 것이다.
나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올여름은 너무 힘들어서 엄마가 필요했다. 다래끼에 결막염까지 걸려 한 달을 넘게 항생제를 먹고 입맛이 뚝 떨어졌다. 나는 위가 약해서 약을 먹으면 소화를 잘 못 시켰다. 게다가 원래 여름에는 입맛이 없어서 살이 빠지고는 했다.
전화로 엄마의 자랑을 들으며 엄마의 밭에서 이것 한입, 저것 한입 먹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먹다 보면 한 끼가 금방이지 않을까. 왠지 더우면 더 입맛이 없고 챙겨 먹기가 귀찮다. 더운데 불 앞에서 요리를 하자면 먹기도 전에 지치는 기분이다. 결국 날이 더워지니 배달음식만 시키고 그것도 물려서 다 버렸다. 엄마가 필요한데 너무 멀리 있었다.
부여에 가서 하루 자고 다음날 바로 올라가야 하지만, 엄마는 이것저것 해주고 싶어 했다. 세 시간 걸려 도착하니 9시가 넘었다. 엄마는 그 사이 족발을 삶아 놨다. 서천 장에서 사 왔다는 보리굴비도 찌고, 붉게 익은 매실도 식탁에 올려놨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딸들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평소에 입맛이 짧은 언니는 집 밥이 오랜만이라며 두 그릇이나 비웠다. 엄마는 이것저것 발라서 앞 접시에 놓느라 바빴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난 나에게 밭에 가자며 이끌었다. 엄마가 꾸민 밭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나에게 팥과 콩이 자라는 자리를 보여주며 “콩 심은 데는 콩이 나고, 팥 심은 데는 팥이 난다. 신기하지?”라며 좋아했다. 당연한 이치에도 엄마는 신기해했다. 엄마 손으로 해서 신이 난 걸까. 우리가 와서 하루 좋은 높은 기분을 유지하는 걸까. 하기야, 엄마는 원래 꽃이 피어도, 물이 흘러도 신기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시골 반찬의 베이스 – 들깨
엄마는 야채주스를 할 때 갈아먹을 케일을 심고 싶어 했다. 하나로 마트에서 케일 씨앗을 집으니, 점원이 지금 심을 때가 아니라고 말리는 바람에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농사는 그게 중요한 일이고.
먼 친척이자, 옆집에 사는 엄마의 먼 친척인 아주머니는 엄마한테 남는 밭은 손대지 말라고 했다. 큰외삼촌이 들깨를 좋아해서 남는 밭은 다 들깨를 심어야 한다고. 큰외삼촌은 이맘때 밭의 반은 다 들깨를 심는다고 했다. 밭도 맬 필요 없이 포클레인으로 뒤집어엎는다고 했다. 모종은 아주머니가 구해주셨다.
엄마는 외삼촌의 입맛을 생각하며 납득했다. 큰외삼촌네는 주로 나물반찬을 먹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골사람이라 그런가 봐”라고 덧붙였다. 엄마랑 같은 고향 사람이면서, 엄마는 서울로 시집왔다고 서울 사람인 것처럼 말한다. 외삼촌이 사는 천안은 충청도이지만 지하철이 다니는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엄마는 치과에서 전화를 받을 때 ‘누구셔요?’라며 충청도 사투리를 한다. 자기는 모르는 듯하지만.
나물반찬의 기본은 들기름이다. 엄마도 그러는데, 외삼촌도 참기름보다는 들기름을 선호하나 보다. 나는 상추보다 깻잎을 선호한다. 엄마의 상추밭을 보며, “깻잎은 안 심어?”라고 물었더니, 깻잎은 들깨에서 나오는 잎이라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큰외삼촌이 내려와서 심은 들깨 모종은 며칠 내린 비에 다 쓰러졌다. 옆집 아주머니는 모종을 또 줄 테니 다시 심으라고 했다. 엄마는 저 들깨를 언제 다 심나 걱정했다. 엄마에게 “들깨는 터는 게 더 힘들다 던데?”라고 말해줬다. 엄마는 기겁을 하며, “설마 환자인 날 시키겠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농사일로 손과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산다더니, 하고 싶은 일이 꼭 건강한 일이란 법은 없나 보다. 하긴, 맛있는 음식이 몸에 해로운 법이다.
천도복숭아, 산딸기 서리
외갓집 마을도 이장님이 있고 부녀회도 있다. 큰외삼촌한테 이장님이 와서 거름도 주고 시에서 나오는 혜택도 알려주셨다. 청년회에 가입하라고 찾아온 청년회장은 50대였다. 큰외삼촌은 환갑이 넘으셨고. 그 이외에는 별다른 활동이나 접촉이 없었다. 반면에 옆 마을은 마을 단합이 잘되는 것 같다고 했다. 옆 마을의 마을회관이 삐까번쩍하다고. 옆 마을에서는 개복숭아 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 개복숭아가 열리면 그것을 따다가 액기스를 만들어서 팔았다. 그 수입으로 마을 사람들끼리 야유회도 가고 마을 사업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옆 마을로 산책을 하다가 가로수들 중 한 그루가 천도복숭아 나무인 것을 발견했다. 원인이 우연인지 의도인지 모를 사건에 엄마는 반가워했다. 엄마에게 걸린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내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며칠 동안 산책길을 옆 마을로 잡았다.
어느 날인가는 양철담집 아줌마와 산책을 하다가 천도복숭아를 자랑했다. 아주머니는 엄마에게 비닐봉지를 하나 주며 본격적으로 천도복숭아 서리를 했다. 내가 엄마를 찾아갔을 때도 엄마는 천도복숭아를 꺼내 놨다. 팔려고 키운 게 아닌 과일이라서 그런지 알이 작고 울퉁불퉁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시큼한 맛이라며 아침저녁으로 깎아줬다. 직접 키운 게 아니어도, 아니라서인지? 엄마는 꿀맛이라며 좋아했다.
엄마의 서리는 처음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고 뚝으로 가는 길에 만난 산딸기를 따먹기도 했다. 엄마가 처음 산딸기를 발견할 당시, 나와 통화 중이었다. 엄마가 “와!”하고 감탄하는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나에게 전달되었다. 좋겠다. 나도 산딸기 좋아하는데. 엄마는 길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산딸기를 따먹었다. 산딸기는 다른 과일보다 단맛이나 신맛이 약해서 그런지, 첫 입은 맛있지만 많이 먹지는 않았다.
내가 어릴 적 외가에 내려가면 산에 가는 길에 종종 산딸기를 따먹었다. 왜인지 모르게 내가 만난 산딸기는 지천에 널린 것이 아니라, 한두 그루 정도 열려있었다. 산딸기는 우연히 만난 행운 같았다. 그 자리에서 몇 개를 따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로 충분한 음식이었다. 엄마는 시골에서 그런 기쁨들을 자주 마주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