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의 인간
엄마는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다. 아빠 말에, 엄마는 물만 봐도 “저 물 좀 봐!”라며 좋아한다고 한다. 아빠가 항상 여행을 가자고 하고 엄마는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면서 정작 제일 호응이 좋은 건 엄마다. 엄마는 모든 걸 다 좋고 예쁘게 본다. 가끔 엄마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 진다. 나는 풍경 사진 따위는 찍지 않는 메마른 사람이니까.
최근에 머리가 너무 아파서 열이 나는 줄 알고 체온을 재봤더니, 35.9℃여서 너무 놀랐다. 나에게 무슨 이상이 있나 싶어서 며칠 동안 체온을 체크했는데, 계속 35℃ 후반에 머물렀다. 나의 기본 체온이었나 보다. 나는 내 체온만큼이나 따뜻하지 못한 사람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감성적인 아빠, 엄마, 언니와 달리 나는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게 잘 없다.
대학원 시절, 공부를 끝내고 늦게 집에 가면서 동기 한 명이 ‘달 좀 봐! 보름달이네, 너무 예쁘다.’라고 했다. 나는 대충 그렇다고 대답한 것 같았는데, 동기는 영혼 없이 말한다며 깔깔 웃었다. 그게 그리 웃긴 일일까. 달이 맨날 보는 달이지 오늘 더 예쁜 달이 어디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는 매일 보는 달도 매일 다르게 예뻐 보이는 사람이다.
엄마는 미사를 보러 가면 둘 중 하나를 꼭 한다. 자거나, 울거나. 잠들지 않으면 꼭 운다. 신부님 말씀이 너무 감동적이라며. 그래서 미사가 끝날 시간에 전화를 하면 항상 목이 잠겨있다.
엄마는 남의 결혼식장에 가서도 운다. 너무 울어서 숨겨둔 딸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가끔은 나와 말할 때도 전혀 그런 타이밍이 아니었는데, 우리 딸들이 너무 고맙다고 울고. 그런 점은 언니가 닮은 것 같다. 언니도 어느 날 갑자기 영어 에세이를 쓰는데 동생에 대해 썼다며 가지고 와 펑펑 울었다. 나에게는 없는 재능이다. 가끔은 그런 엄마가 부럽고, 같이 공감하고 싶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과 비슷한 언니보다는 감정 기복 없는 내가 편하다고 했다. 덜 기쁘고 덜 슬픈 내가.
아! 나도 엄마가 아프고 나서 처음 간 결혼식에서 울 뻔한 걸 참기는 했다. 나에게도 울보 유전자가 나오기 시작하는 걸까? 나는 어린 시절에도 새침했다는 엄마의 말로 짐작컨대, 타고나길 감성적이지 않았던 듯하다.
글을 쓸 때는 나도 감성적이고 예쁜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내 감성은 글에도 드러나는지, 수업 시간에 발표할 글을 써 가면 내 글은 단문이 많은 게 특이하다고 말씀해주신 교수님도 계셨다. 내 이름이 없어도 내 글인 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개성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감정을 넣을 필요도 없는 레포트에도 내 성격이 드러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내 문체는 사실 전달의 목적을 가진 기사를 쓰는데 적합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담긴 에세이를 쓰고 있다.
불보며 멍 때리기
엄마가 부여에 내려가고 나서 가장 꽂혀있는 것은 불장난이다. 외할아버지가 집을 처음 지으셨을 때 심은 어린 소나무들은 빽빽하게 자랐다. 외삼촌은 가지가 엉키지 않게 가지치기를 했다. 엄마는 그 소나무들과 밭에서 나온 잡초나 밤송이들을 매일 아침 태운다. 엄마는 그걸 불장난이라고 부른다. 큰외삼촌은 엄마를 위해 벽돌로 불장난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줬다.
요즘 신조어인 불보며 멍 때리기라는 뜻의 ‘불멍’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이 많은지 집에서 불멍을 하기 위해 실내용 화로와 화덕도 나오고 있다. 엄마에게 ‘불멍’이라는 단어를 알려줬더니 엄청 신나 했다. 엄마는 유행에 열광하는 사람이다. 자신과 같은 걸 공유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좋아한다. 게다가 엄마가 유행 전에 시작했으니, 기분이 더 좋을 것이다.
엄마는 원래 불장난을 무척 좋아해서 집에는 항상 초가 있었다. 큰 초를 사다가 태우면 중앙만 초가 녹고 가장자리의 초는 그대로 남아있다. 엄마는 그걸 칼로 잘라서 중앙에 넣었다. 나중에는 작은 초를 가져와 촛불에 녹여 촛농을 섞었다. 오히려 그게 더 지저분해 보이지만 엄마는 초를 끝까지 태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가 볼 땐 그냥 불장난의 일종이다.
엄마의 일과는 새벽 6시에 불장난을 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불면증인 엄마는 긴 밤을 버티고 버티다 6시에 나가는 거다. 엄마는 불장난이 하고 싶어 잠이 안 오는 거라고 하지만, 잠은 어차피 안 오는 것 같다. 두 시간쯤 멍하니 불을 구경하다가 재료가 떨어져 가면 마당의 잡초를 뽑아다가 넣기 시작한다. 9시쯤이 되면 불을 끄고 들어가 아침을 먹는다.
엄마는 아빠까지도 불장난에 중독시켰다. 아빠는 원래 그런 낭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뜨거운 걸 못 참아서 사우나는 싫어해도 숯가마는 좋아했다. 나는 사우나나 숯가마나 뜨거운 곳에 사람을 가두는 똑같은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아빠가 데려가는 숯가마는 거의 외곽에 있고 나무 향이 강하며 고기를 구워 먹을 곳도 있는 데가 많다. 아빠는 그런 디테일한 차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엄마의 불장난은 그냥 불장난도 아니고 소나무 장작이 타면서 향까지 내뿜으니 아빠로서는 취향 저격당했을 거다. 엄마가 처음 아빠에게 불장난을 보여줬을 때, 아빠는 ‘너무 좋다!’를 연발하며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 했다고 한다. 너무 꼼짝도 안 했다고.
아빠는 주말마다 토요일에 오전 진료가 끝나자마자, 혹은 일요일 새벽 4시에 출발해서 부여에 갔다. 엄마의 아침 불장난 시간을 맞추려면 부여에 새벽 6시에는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차이점은 아빠는 정말 불만 보고, 엄마는 아빠가 불을 계속 볼 수 있게끔 밤송이를 줍고, 잡초를 뽑아다 준다는 것이다. 아빠는 정말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부부의 세계
엄마와 아빠가 둘이 같이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는 건 좋은 일이다. 아빠에게도 엄마의 전원생활이 힐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엄마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처럼. 아빠는 엄마가 아프고 나서 부쩍 나이가 들었다. 엄마가 요양병원에 있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엄마를 데리고 새집으로 가 하루 자고 오는 것이 명절의 코스였다. 우리가 있을 때, 아빠는 어딘지 들뜬 것 같았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고, 잔소리도 웃어넘겼다. 돌아갈 때쯤에 아빠는 체력을 다 소진한 것처럼 무기력하고 졸려 보였다. 손을 흔드는 아빠의 모습은 쓸쓸했다.
우리 아빠는 언제나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아빠는 180이 넘는 큰 키를 가졌고, 우리 집의 유일한 남성이었다. 아빠가 아파트 1층에서 재채기를 하면 7층이었던 우리 집까지 아빠의 소리가 들렸다. 키도, 덩치도, 발도, 소리도. 아빠에게 작은 것은 없었다.
마른 체형인 엄마와 언니, 나에 비해 아빠는 과체중이었다. 가족끼리 외식을 가면 “아빠가 다 뺐어먹죠?”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아빠는 남긴 걸 먹은 거라고 항변했다. 언니와 내가 미취학 아동일 때도 무조건 4인분을 시켰던 아빠를 생각했을 때, 우리가 남기도록 유도한 아빠의 고의적인 계획이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내가 커도 커도 나는 아빠의 반도 안 되었다. 아빠는 나보고 반인분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내가 아빠의 1/3이라고 했다. 아빠는 날 때린 적이 없다. 내가 아주 착하다거나 아빠가 체벌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빠는 체벌이 있는 시대에 학교를 다녔고, 나는 가끔 아빠를 화나게 했다. 내가 죽을까 봐 체벌할 수 없었던 거다.
아빠는 너무 화가 났을 때 나를 침대로 던졌다. 아빠 눈에는 내가 아주 작아 보였고, 내 별명은 코딱지 만 하다고 코딱지였다. 내 눈에도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다. 실제로 우리 아빠보다 큰 친구 아빠는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런 아빠가 부쩍 보호받아야 할 사람처럼 보이는 건, 환갑이 넘었기 때문인지 엄마가 없기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엄마의 보호자도 못하는 내가 아빠를 지켜주려면 얼마나 더 자라야 할까?
아빠는 엄마가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 찾아왔다. 내가 엄마 간병을 하면서 지켜본 결과, 같은 방 환자들의 남편 중에 압도적으로 많이 왔다. 엄마가 한 달에 한 번, 5일씩 입원해서 항암 치료를 할 때도 아빠는 매일 왔다. 너희들은 바쁘니까 안 와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아빠보다 근무시간도 더 짧고, 엄마 병원과 같은 서울에 살았다. 아빠는 안양에 살았고.
아빠는 항암을 할 때 잘 먹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음식을 사 가지고 가서 같이 먹어줬다. 가끔은 자기가 맛있게 먹어본 음식을 안양에서까지 포장해서 사 가지고 갔다.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쉬고 있을 때에도 매주 엄마를 보러 왔다. 아빠는 안 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엄마 아빠는 부부라고.
아빠가 엄마를 자주 보러 가는 것은 엄마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빠를 위해서이기도 한 것 같다. 엄마가 없자, 아빠는 모든 것이 재미없어졌다고 했다. 배도 안 고프다고. 엄마를 보기만 하면 배고프다고 간식과 야식까지 챙겨 먹던 아빠가 하루에 한 끼도 귀찮아한다. 아빠에게 엄마는 모든 것을 같이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산악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자, 아빠가 엄마를 자전거 가게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엄마는 열심히 자전거를 고르고 결정했을 때, 아빠는 2개를 달라고 했다. 엄마가 왜 2개냐고 묻자, 아빠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럼, 혼자 타게?”라고 물었다고 한다. 엄마는 입이 찢어지게 좋아했지만, 그건 아빠에게 당연한 거였다. 부부가 취미생활을 따로 한다는 건 아빠가 생각해 보지 못한 거였다.
뭐든 함께하는 엄마와 아빠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내 연애관도 그렇다. 연인이면 서로의 일상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을 같이 할 수는 없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연락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지금까지의 연애가 그랬고, 그래서 이별 후의 후유증도 컸다. 연애가 내 유일한 취미이자 감정 활동이었는데, 긴 연애가 끝나고 난 후에 허전함은 모든 걸 함께한 만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직장에도 적응을 했고, 앞자리도 바뀌었고, 이제 연애 좀 해볼까 해서 소개팅을 했는데 이전의 연애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먼저 만나자고 말하고도 나에게 호감은 있는 것 같은데, 평일에는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예 무슨 요일에 연락을 하겠다고 하니, 바쁜 사람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실례가 되는 것 같았다. 두 번을 만나고 세 번째 만나기로 했는데도 그러니, 학생 때 선배 언니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가끔 만나고 연락도 하루 이틀 안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오히려 자주 하면 귀찮다는 것이 언니들의 연애 스타일이었다.
서른의 연애는 다 이런 건가 두려움이 엄습했다. 직장 동료도 “서른이 넘으면, 어떤 일이 생겼을 때는 그 일을 다 처리하고 지나가는 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죠.”라고 말했다. 나도 이제 서른의 연애에 적응을 해야 하는 걸까. 엄마와 아빠의 불장난 같은 연애는 끝난 건가. 엄마와 아빠에게 서로 너무 집착하는 게 싸움의 원인이라고 타박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 아빠의 딸인가 보다. 엄마 아빠의 관계를 부부 관계의 기준점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라진 낭만에 대하여
나도 부여집에 내려갔을 때 불장난을 했다. 아빠와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같이하지 못했다. 나는 새벽에 눈을 비비며 나가서 하고, 해가 진 저녁에도 했다. 새벽에는 사실 억지로 나간 것에 가까워서 기억도 희미하지만, 저녁에는 완전히 즐겨버렸다.
조용히 불멍을 즐기는 엄마의 불장난과 달리, 나는 노래를 틀어놓고 몸을 흔들며 캠프파이어에 가까운 불장난을 즐겼다. 엄마도 내가 틀어놓은 트로트를 따라 부르며 신청곡을 주문했다. 고구마도 하나 호일에 싸서 숯 밑에 숨겨놓았다. 숯이 구워준 고구마는 너무 달았다. 엄마와 나는 고구마를 먹으며 숯이 아깝다는 말을 했다. 고기나 생선을 구워 먹으면 맛있겠다는 말을 하며. 식탐이 없는 우리 치고는 너무 돼지 같은 일이었다.
음악을 끄고 잔불을 보면서는 깜짝깜짝 놀랬다. 장작불만 환하고 주변은 어두웠다. 부여집은 가로등도 멀리 있었다. 나는 나뭇가지를 줍는 데도 어려움을 느꼈다. 시야가 어두워서 그런지 오히려 소리를 잘 들렸다. 사람 발자국 소리가 자꾸 나서 엄마를 여러 번 불렀다.
엄마, 누가 왔나 봐.
엄마는 벌레소리라고 했다. 벌레소리가 저렇게 큰가. 벌레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엄마 말을 일단 믿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소리가 날만 한 일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소리나 새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라는 게 더 잘 믿어지겠지만, 엄마는 계속 벌레소리라고 했다.
엄마가 불장난을 끝내려고 땅에 숯을 묻었다. 눈이 점차 어둠에 적응하고 하늘에는 별들이 나타났다. 진짜 많았다. 하늘을 본지가 언제인지. 회사에 다니고부터는 안 보고 다녔던 것 같다. 퇴근이 더 급해서.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서. 핸드폰은 맨날 보는데 하늘은 안 보게 된다.
나에게 낭만은 멸종된 공룡 같다. 음악을 끄니까 벌레소리가 들리고, 불을 끄니까 별이 보인다. 나도 내 강박을 내려놔야 낭만이 보일까. 여전히 나에게 풀벌레 소리는 아저씨 발자국 소리 같고, 별은 하얀 점 같지만. 언젠간 엄마처럼 예쁘다, 아름답다, 좋다며 즐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