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니아 딸기잼 : 인생에 정답이 어디있어?!
서른에 만난 엄마의 텃밭 14
이게 딸기잼이라고요?
엄마는 새로운 레시피를 창조해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엄마는 가끔 독특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데, 손맛이 좋은 것인지 성공확률이 꽤 높다. 맛있는 것과 맛있는 것이 만나면 더 맛있는 것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전정신이 꽤나 강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엄마가 맛없다는 음식이 별로 없다. 엄마는 세상 모든 음식이 다 제 맛이 있어 맛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엄마의 입맛이 요리에서 실패를 모르게 하는 원인이 되었으리라.
부여에 내려가서 가장 먼저 창조해낸 음식은 아로니아 딸기잼이다. 큰외삼촌은 부여집에 올 때마다 근처 딸기농장에서 딸기를 사 왔다. 부여집에 있던 딸기밭은 엎어버렸지만, 부여에는 딸기 농장이 많이 있었다. 부여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면 딸기농장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도로 양쪽으로 딸기를 직판하는 가건물이 쭉 늘어서 있다.
딸기농장에서는 직접 딸기를 사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푹 익은 새빨간 딸기를 팔았다. 이런 딸기는 유통 과정에서 무르고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시의 마트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며칠 안에 바로 먹어야 한다. 농장에서 사야지만 누릴 수 있는 특별 찬스이다. 엄마는 그 딸기를 먹고 딸기잼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는 서울에 있을 때에도 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사과가 엄마의 수제잼의 주요 재료였다. 비싼 딸기로는 잼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엄마는 주말에 내려온 아빠를 데리고 외삼촌이 말한 딸기 농장에 데리고 갔다. 농장에서는 딸기잼용으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모양이 안 예쁘고 덜 자란 딸기만 따로 모아서 싼 값에 팔았다. 엄마는 팔천 원을 주고 한 바구니의 딸기를 사왔다.
딸기에 설탕을 넣고 버무리는 일은 아빠를 시켰다. 버무려지는 딸기를 보며 엄마의 창의적은 요리 센스가 발동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부여에 오자마자 냉동실을 열어보고 쌓여있던 아로니아 박스에 놀랐다. 외할아버지는 동네에 블루베리가 유행하자 따라 키우셨다. 마침 도시에도 냉동 블루베리가 유행하기 시작한 때여서 블루베리의 인기는 좋았다. 얼리지 않은 블루베리는 더 달고 상큼했다. 외할아버지의 텃밭에 주 고객인 어른들뿐만 아니라 나도, 사촌들도 블루베리를 좋아했다.
작년, 아로니아가 블루베리보다 안토시아닌이 더 많아서 눈에 더 좋다는 소식을 접한 큰외삼촌은 블루베리를 두 그루만 남기고 모두 아로니아로 바꿔버렸다. 엄마의 오 남매 모두 노안이 온 나이여서 눈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많이 썼다. 큰이모는 아로니아 가루를 사다가 요거트에 넣어 먹기도 했다.
키우기 어려운 블루베리와 다르게 아로니아는 키우기가 매우 쉬운 작물에 속했다. 게다가 떫어서 맛이 별로 없었다. 대체로 과육을 그냥 먹지는 않는 과일이었다. 수요는 적은데 공급은 과다였다. 가루로 만들어 오 남매의 집에 나눠주고도, 너무 많이 남아 과육을 그대로 얼려 놓았다. 결국 작년에 수확한 아로니아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쌓여 냉동실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엄마의 눈에는 딸기든 아로니아든 베리 종류로 보였다. 행동력이 강한 엄마는 아로니아를 딸기잼에 콸콸 부었고, 처음 보는 조합인 아로니아 딸기잼이 탄생되었다. 엄마의 계획은 아로니아가 조금 들어간 딸기잼이었으나, 대략 1대 1의 비율로 들어가서 딸기잼이라고 부르기는 힘든 결과물이었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외가 식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추가 주문이 줄이어 들어왔다. 은퇴한 후 아침 당번이 된 큰외삼촌은 아침을 차리기에 좋은 재료가 생겼다며 좋아했고, 학교 선생님인 큰외숙모와 큰이모는 학교에 가져갔는데 인기가 많았다고 더 만들어달라고 했다. 작은 외삼촌도 벌써 다 먹어간다며 아쉬워했다.
외가 식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엄마가 다시 시도한 아로니아 딸기잼에서는 아로니아가 더 많이 들어가게 됐다. 엄마는 거기에 부엌 한켠에 남아있던 묵은 꿀도 넣어 새로운 맛의 잼을 만들어냈다. 엄마는 이 잼이 딸기잼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힘들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로니아 맛이 더 많이 났으니까. 하지만 딸기잼보다 더 무겁고 중후한 맛이 난다고 했다. 씁쓸한 와인의 맛 같다고. 엄마는 이 음식은 이 맛에 맛있고, 저 음식은 저 맛에 맛있다는 사람이어서 결국 맛있다고 할 줄 알았다.
창의적인 음식의 재료
엄마의 창의적인 음식은 대체로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더니, 용기 있는 엄마가 새로운 음식을 얻는다! 불행히도 엄마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나는 배우지 못했다. 나는 매우 소심하고 안정적인 사람이다. 고리타분할 정도로 성실한. 그런 점에서 언니가 나보다 훨씬 엄마를 닮았다. 손맛을 닮지는 못해, 언니의 창의적인 음식들은 대부분 실패하고 말지만 말이다.
언니는 엄마처럼 호기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았다. 학창 시절부터 하고 싶은 꿈이 수도 없이 바뀌었다. 언니의 꿈은 문·이과와 예체능을 가리지 않았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피아노 과외를 시켰고, 플롯을 전공하고 싶다고 해서 플롯을 사줬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미술로 대학을 가겠다고 해서 미술 입시를 준비했다. 내 눈에 언니는 모든 것에 재능이 있었고, 실천력이 강했다. 오죽 언니가 잘나 보였으면 어릴 적 자랑의 시작에는 항상 “우리 언니는 ~”이 있었다. 엄마는 언니 말고 자랑할 게 그렇게 없냐고 했다.
언니의 장래희망은 대학교에 가서도 계속 바뀌었다. 스튜어디스, 플로리스트, 공무원, 은행원 등 언니는 수도 없는 도전을 했고, 직장을 다니는 지금도 노무사가 되겠다며 공부를 하고 있다. 지치지도 않고 하고 싶은 걸 찾아낸다. 언니는 열정적이고, 포기하더라도 일단 해보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반면에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특히 꼭 해보고 싶은 게 없었다. 어릴 적 나는 언니의 장난감 역할을 많이 했고, 언니가 없으면 엄마에게 “나 뭐하고 놀아?”라고 물어봤다고. 둘째라는 위치가 그런 건지 나는 언니의 경험을 대리 만족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다. 언니가 이미 했던 거니까. 그건 언니가 포기했으니까 굳이 해보고 싶지 않아 진다.
엄마는 내가 엄마의 손맛을 닮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엄마처럼 활용하지 못한다. 나의 요리 스타일은 엄마가 했던 대로, 혹은 인터넷에 나온 레시피 대로였다. 창의적인 요리의 필수조건이 손맛보다는 용기라면, 무언가를 창조해낼 능력은 나에게 없을지도 몰랐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서른 된 내 인생은 전혀 정석대로도 아니고, 남들의 코스를 그대로 밟지도 않았다. 나는 그것이 불안했다. 내가 따라 할 사람이 없다는 것. 내가 내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 나는 정확한 것을 좋아하고 모험을 싫어했다. 나는 입시에서도 수능성적보다 내신이 좋은 학생이었다. 매일 꾸준히 정해진 숙제를 하는 걸 잘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숙제를 내어줄 사람은 없다.
사학과를 졸업한 나는 역사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대학원에 갔고, 그 후 직업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역사는 매력적인 학문이었지만, 연구는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뽐내며 남의 생각과 교류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정답을 알고 있어도 손을 들고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 학생이었다. 답도 정해지지 않은 문제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는 건 더 어려웠다.
학문은 교류 없이 발전하기 힘들고, 내 연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을 간신히 졸업하고, 공부는 그만하고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취업준비를 했다. 연구가 힘든 점도 한몫했지만, 나이도 있는데 들어갈 돈은 많고 돈은 벌지 못하는 대학원생 생활도 고달팠기 때문이다.
취업준비를 할 때에는 어디든 취직만 하면 감사하게 다녀야지라고 생각했다. 빨리 큰 회사에 들어가 부품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 가장 큰 목표는 안정적인 생활이었다. 엄마는 내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겠지만, 아픈 엄마에게 취업도 하고 안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행정 쪽으로 방향을 틀어 인턴을 하고, 행정을 하려면 회계를 알아두는 게 좋겠다 싶어 회계 관련 자격증을 땄다. 나는 그렇게 별생각 없이 공부한 회계로 우연히도 내 전공과는 전혀 다른 재무팀에 입사하게 되었다.
창의적일 필요도, 도전적일 필요도 없는 숫자는 나랑 제법 잘 맞는다. 가끔은 재미있게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의 내 이력들이 다 부정당하는 기분도 든다. 대학원 생활은 그야말로 주경야독이었다. 낮에는 조교를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며 새벽에 집에 갔는데. 그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내가 평생 회계를 하며 먹고 살 수 있을지.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문다.
얼마 전 입사한 신입 직원은 자기가 하는 일이 30년 후 AI가 할 것 같다며, 다른 공부도 할 생각이라는 말을 했다. 회계야말로 30년은 무슨, 10년이면 회계 프로그램이 알아서 다 할 것 같다. 그럼 나는 실직자가 되겠지.
회사에서는 싫다는 생각만 한다. 일이 없으면 시간 안 가서 싫고, 일이 많으면 하기 싫다. 요즘은 그냥 하루를 때운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아침에 저기압이라는 말을 이해 못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좋고 하루가 기대됐다. 그러나 지금은 제발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솔로여서인지, 삼십대여서인지, 직장인이여서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은 하루 종일 저기압일 때가 많다.
입사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다 놓고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 데가 있다. 소심하고 성실한 내 성격상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특히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내 월급은 아주 작고 소중하다. 이게 다 내가 전문성이 없기 때문일까. 정답이 아닌 길을 걸어와서?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내 인생은 틀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엄마의 귀농은 나에게 나비효과가 되었다. 엄마가 만든 미풍이 나의 고민을 깊고 여물게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고민 없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나는 이렇다 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아로니아잼도 딸기잼도 아니고, 맛있지도 않은.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논술을 배우면서 인간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빠졌다. 그 후 내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었다. 행복하기 위해 일을 하는데, 왜 나는 일을 하기 위해 고민에 빠지고 괴로워해야 하는지. 이런 나라도 엄마의 이상한 요리들처럼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서른 즈음에
내가 고등학생 때는 서른쯤 되면 내 일에 전문성도 키우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저녁에는 애기들을 데리고 치킨집에서 수다를 떨자는 꿈도 그렸다. 그때는 그게 소박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 꿈을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많다. 비슷한 경제적 여건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회사도 같은 지역이어야 한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어야 되고, 야근을 하지 않는 저녁이 있는 삶이어야 한다.
서른인 나는 저녁 있는 삶은커녕 내 정체성도 찾지 못하고 헤맨다. 10년~20년 후의 AI가 내 일을 뺏어가지는 않을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언니는 누구나 나처럼 고민을 한다고 했다. 언니도 여전히 뭘 먹고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한다고. 그러면서 항상 강조하는 말이 일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행복은 취미생활에서 찾으라고. 그건 내 친구들도 하는 말이다. 돈 아까우니 회사에 입고 갈 옷에 돈을 투자하지 말라고도. 하지만 정말 그래야 할까? 내가 행복한 일을 하면서 돈 벌고 사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업무도 나에게 맞지 않는 건 아니다. 나는 정확한 걸 좋아하고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나는 취직을 하고 꽤 만족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 진로에 확신이 없고, 갈증을 느낀다.
얼마 전, 친구가 자기소개서를 첨삭해달라고 해서 봐주면서 문득 대학생 때 내 꿈이 생각났다. 출판사가 가서 책을 읽고 고치며 결과물을 내는 일. 나는 그런 것이 좋아서 논문을 쓰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꿈을 찾아 떠날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그랬다가 후회하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 언니나 엄마처럼 행동으로 바로 옮길 용기는 없는 사람. 그래서 엄마의 귀농이 나에게는 부러움이자, 대리만족이자, 희망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은 지금 침대에 앉아 글을 쓰는 정도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하는 내가 글 쓰는 소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렇게라도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면, 이름을 붙일 수는 없지만 최종적으로는 행복한 인생이라고 만족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려면 독특한 것에 더 애정을 가지는 엄마를 닮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엄마는 새로운 음식을 만든다. 닭가슴살과 브로콜리, 양파 등 각종 야채를 넣고 볶은 후 우유와 두유를 넣고 케첩까지 넣어서 스튜를 끓였다. 아마도 토마토와 크림이 들어간 로제 수프 정도를 상상했던 것이 아닐까? 엄마는 스튜가 유행이라고 했지만, 어디서 유행인지는 모르겠다. 이 음식에는 정말 도저히 이름을 붙이지 못하겠다.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지만, 엄마는 역시나 만족했다. “두유를 넣어서 그런가, 약간 비지찌개 맛도 나고 좋아.”라며 자신이 창조한 음식에 애정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