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과 쉰여섯의 공통점 - 사회활동
서른에 만난 엄마의 텃밭 15
민수네- 사회적 관계 맺기
부여집의 옆집은 엄마의 먼 친척이다. 외가에서는 그 집의 아들 이름을 따서 별칭으로 불렀다. 혹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그들을 알아보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기에 ‘민수네’로 지칭하겠다. 외할머니의 친척인 ‘민수네’는 외조부님이 부여로 이사 오기 전에는 왕래가 없었을 정도로 가까운 촌수가 아닌 친척이라고 한다. 부여집에서 고개를 하나 넘어가면 외할머니 가문의 집성촌이 있는 곳이다. 예전부터 그곳을 진짜 동네라는 뜻의 ‘참실’이라고 불렀다. 양반들이 사는 곳이라고. 지금 외가가 있는 아랫동네는 과거 머슴들이 많이 살았고,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참실에는 쓰레기장이 설치되어 있어서, 엄마는 바퀴가 하나 달린 리어카에 쓰레기를 싣고 종종 고개를 넘어간다.
외할머니는 부여로 이사 오고, 여러 친척들을 소개 받는 과정에서 민수네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엄마가 내려오기 전에는 민수네가 비어있는 부여집을 들여다보며 봐줬다. 민수네는 봄~여름에 취나물 농사에 집중했다. 4월부터 시작해서 늦으면 7, 8월까지도 수확한다고 한다. 엄마는 부여가 취나물로 유명하다고 했지만, 딸기와 쌀 등 유명하다는 것이 너무 많아서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엄마에게 들은 정보들은 언제나 의심의 여기가 조금씩은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어쨌든 엄마가 요양 차 내려왔다고 했을 때, 민수네는 취나물을 한 박스 들고 왔다. 취나물 수확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고혈압이 있는 엄마는 취나물이 피를 맑게 해준다며 좋아했다. 항암 약의 독한 성분도 빼준다며. 엄마들은 모두 어떤 음식이 어디에 좋은지를 알고 있는 걸까? 음식 이름만 들으면 효능을 줄줄이 말해준다.
엄마는 아침마다 취나물과 각종 야채를 넣고 갈아 마셨다. 취나물로 나물을 해먹기도 하고 표고버섯을 함께 넣은 취나물 밥을 해먹기도 했다. 엄마는 취나물이 시금치나 곤드레보다 향기롭고 맛있다고 했다. 원래 공짜는 더 맛있다. 취나물이 너무 빨리 동나는 바람에 엄마는 한 박스 사올 생각으로 쑥을 넣고 만든 개떡을 가지고 민수네에 갔다. 민수네는 취나물 농사 때문에 바빠서 개떡을 만들지 못했다며 매우 반겼고, 또 취나물 한 박스를 공짜로 나눠줬다.
농사가 주업인 민수네는 취나물 수확시기에는 엄청나게 바쁘다고 했다. 눈만 뜨면 해가 질 때까지 취나물만 뜯는다고. 그래서 민수네는 밭에 심어 둔 열무나 상추, 마늘쫑 등을 엄마에게 뽑아가라고 했다. 제때 뽑아 먹지 않으면 작물은 너무 질기고 억세지거나 먹지 못하게 된다. 작물을 뽑아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주는 일인 것이다. 엄마는 음식을 얻어서 좋고, 민수네는 밭 관리를 도와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엄마는 민수네에서 뽑은 상추를 정기검진 때 서울에 가져와 나에게도 나눠주었다. 상추가 너무 연해서 두 장씩 싸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처럼 상추는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마침 집에 삼겹살이 있어서 혼자 사는 내가 한 끼 먹을 만큼만 달라고 했었는데, 더 달라고 할 껄 후회했다. 상추 넣고 밥도 비벼먹고 싶고, 겉절이도 해먹고 싶었다. 그러기엔 받은 상추의 양의 너무 적다는 것이 아쉬웠다.
엄마는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면 받고만 있을 성격이 못 되었다. 민수네 밭에서 열무를 뽑아서 열무김치를 담아다 주었다. 그 외에도 상추나 마늘쫑처럼 조리 없이 먹는 작물들도 손질해서 가져다주었다. 민수네는 엄마가 일도 잘하고 음식도 잘하고, 싹싹하다며 좋아했다. 큰 외삼촌이 주말에 내려올 때마다 큰 외삼촌을 붙잡고 엄마의 칭찬을 했다고 한다. 엄마의 사교성은 부여에 내려가서도 빛을 발했다. 시골에서는 어린 편인 엄마가 말도 잘 듣고, 베푸는 것도 좋아하니 예뻐 보인 것이다. 엄마는 사교적인 성격보다도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애정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엄마도 민수네를 좋아했는데,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란 힘든 일이기도 하고 민수네가 농사일로 바쁘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유지가 가능하다는 점도 맘에 들어 했다. 서울에서의 인간관계는 놀러 다니며 기름진 음식을 먹고 돈을 쓰는 게 일상이었다. 민수네와의 관계는 엄마가 벗어나고자 했던 인간관계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엄마는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민수네를 특별히 좋아한다기보다는 ‘민수네와의 관계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것이 정확하다.
2020년 초부터 한국에 들어온 코로나19 전염병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독려했다. 나 같은 집순이들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코로나 상황에 답답해하며 우울증까지 오는 사람이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꼭 필요하다. 너무 다가오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혼자 살기엔 외롭다. 소심한 나는 말을 걸기 전에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연습해보는 버릇이 있다. 사람들에게 실수할까봐 긴장해서 사람들과 오래 같이 있으면 집에 가서 기진맥진해 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힘을 빼는 일은 나에게 매우 힘들다. 회사에서는 특히 하루 종일 짜증 안 내고 웃으려고 노력하다보니, 회식이라도 하면 광대가 다 아프다. 남자친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언니랑 있어도 나는 언니에게 많은 걸 맞춰주려고 눈치를 본다. 언니는 불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 기류가 변할지 모른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끝나면 오늘 실수를 하지 않았나 생각해보는 버릇이 있다.
나에게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는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있나보다. 사교적이지 못하면서 이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피곤한 일이다. 혼자 있는 게 편하면서도 외롭다는 건 참 모순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인걸. 피곤한 사람. 사회에서 어울려 산다는 것은 일정 부분 피곤함을 감수한다는 일이다.
노인보호구역
밭에서는 많은 음식을 얻을 수 있지만, 모든 걸 얻지는 못한다. 더구나 부여집처럼 작은 밭을 가지고 있는 집은 밭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 식생활의 극히 일부이다. 한국인의 식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쌀도 결국 사야한다. 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연인이나 숲속의 마녀가 나오는 소설, 은퇴한 스파이가 산골짜기에 숨어사는 영화 등을 보며 사회와 분리되어 혼자 사는 삶에 로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 불필요한 감정소모도 없고, 나를 내가 온전히 책임지는 삶이 모험 같으면서도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실제로 혼자 살기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부여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는 하나로 마트이다. 사실상 걸어서 갈 수 있는 마트는 그곳이 유일하다. 걸어서 15분 정도면 면사무소가 있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는 우체국과 농협, 하나로 마트, 보건소, 경찰서가 모여 있다. 그 이외의 건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근처에 외할머니가 나온 초등학교가 있지만, 폐교된 지 꽤 되었다고 한다.
면사무소 소재지로 가는 길에는 ‘노인보호구역’이 존재한다. 나는 바닥에 쓰여 진 ‘노인보호구역’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 서울에서는 본적 없는 것이었다. 운전 경력 1년차인 내가 작년에 공부한 필기시험에서도 어린이보호구역만 보았다. 어찌 보면 여기에선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동네에 어린이는 살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보호구역은 어린이보호구역과 마찬가지로 제한속도 30KM이다. 엄마는 바퀴달린 시장바구니를 끌고 노인보호구역을 지나, 하나로 마트로 갔다.
하나로 마트가 있는 구역에는 두어개의 음식점과 방앗간이 함께 있다. 엄마는 음식점들은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지만, 방앗간은 단골이 됐다. 봄에 뜯은 쑥으로 각종 떡을 만들기 위해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방앗간에 가지고 가는 쌀은 하나로 마트에서 샀다. 하나로 마트에는 정육점도 딸려 있어서, 엄마는 사야하는 대부분의 음식을 여기서 구한다. 음식뿐만이 아니라 많은 잡동사니와 농사에 필요한 물품도 판매했다. 내가 부여에 내려갔을 때, 엄마는 여기에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모자와 팔 토시를 구매했다.
농협은 현금을 찾기 위해서, 우체국은 택배를 부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보건소는 엄마가 한 달에 한번 가서 혈압약을 타온다. 정말 필수적인 것들만 배치되어 있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역시 이유 없는 장소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만 그런지는 몰라도 시골에도 꼭 필요한 건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