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취미 - 쑥 캐기 3

서른에 만난 엄마의 텃밭 5

by 소라

착한 아이는 쉽게 변하지 못해


내가 부여집에 내려갔을 때, 큰 외숙모가 요청한 쑥 가래떡을 만들기 위해 엄마와 방앗간에 갔다. 무려 10kg이나 되는 쌀을 가지고 가야 했기에 엄마는 내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린 것 같았다. 시골 방앗간은 내가 서울에서 자주 가는 떡집과는 달랐다. 기름을 짜주고, 가루를 빻아주고, 떡을 만들어 줬다. 하지만 떡을 만들어서 팔지는 않았다. 재료를 다 가져가야 원하는 것을 만들어줬다. 나는 방금 뽑은 뜨끈한 가래떡을 받아먹었다. 쫀득쫀득하고 말랑말랑한 가래떡이 개떡보다 내 취향이었다.

집에 와서는 엄마와 개떡도 만들었다. 엄마는 자기의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다. 방앗간에서 받아온 반죽을 송편 빚듯이 동그랗게 뭉치고 만지작만지작 해주며 납작하게 펴야 했다. 엄마는 내가 송편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못한다고 했다. “나는 잘해서 예쁜 딸 낳았는데, 너는 어쩔 수 없이 아들 낳아야겠다.”라며 놀렸다.

외동인 아빠 덕에 우리는 소박한 명절을 보냈고, 제사 음식도 대부분 사서 했다. 혼자 계시는 친할머니를 생각해 외갓집에는 명절 전후로 다녀갔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생신이 명절과 가까워서 겸사겸사. 그 때문에 가족끼리 둘러앉아 송편이나 만두를 빚는 시끌벅적한 명절을 지내본 적은 거의 없다. 우리의 명절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치킨집에서 치맥을 하는 다소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개떡이 달라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반죽에 식용유를 발라 찜통에 쪄야 했다. 주말을 맞아 내려온 큰 이모는 엄마에게 진짜 느끼하고 이상할 것 같다며 그건 아니라고 했다. 엄마는 “이제까지 잘만 먹어놓고는.”이라고 속삭였다. 이모는 충격을 받았지만, 곧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다. 살림에 관해서는 이모도 엄마에게 의지했다.

큰외삼촌 내외가 모이고 개떡파와 가래떡파로 나뉘었다. 큰 이모와 엄마는 개떡파, 나와 큰 외숙모는 가래떡파였다. 큰외삼촌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떡은 쑥인절미라고 넌지시 말했다. 엄마는 매일 뜯은 많은 양의 쑥을 해결할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엄마는 여전히 잠은 잘 자지 못하지만, 할 일이 있고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 게다가 엄마가 하는 일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엄마는 그런 것에 보람을 느낀다. 자신의 쓸모를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

엄마는 오 남매의 셋째이자 첫째 딸로 태어났다. 위로는 오빠가 둘, 아래로는 여동생이 둘이었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도와 살림을 했다. 남매들 가운데 딱 끼인 것 때문이었을까, 엄마의 천성 탓일까. 엄마는 눈치를 많이 보고 남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오빠들은 남자여서, 동생들은 어려서 일은 엄마 차지였다고 한다. 아홉 살부터는 친척이 아이를 낳으면 외할머니 대신 도와주러 갔다고 했다. 엄마는 동생들이 부모님 무릎에서 놀 때, 부러워하며 일을 했다고 말했다. 누가 시켜서 그랬는지, 엄마의 성격상 부모님의 일을 도왔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엄마는 가만히 있어도 예쁨 받는 동생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외삼촌들은 엄마를 보려고 집 앞까지 찾아온 남학생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가끔 하시곤 했다. 실제 엄마는 하굣길에 남학생들이 자전거를 끌고 뒤에 줄을 섰을 정도로 예뻤지만, 자신이 계속 못생겼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외가 식구들은 다 선남선녀라고 자랑하는 아빠의 말대로 남매들이 모두 잘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엄마의 자존감은 너무 낮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는 너무 컸다.

엄마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누구에게나 적용됐다. 아빠에게는 아주 심하고, 심지어 딸인 나에게도 거절하지 못하고 부담이 될까 걱정한다. 엄마한테 “뭐 먹고 싶어?”라고 물으면, 언제나 “너 먹고 싶은 거 먹고 싶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기주장이 없고, 있어도 숨긴다. 엄마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호의적이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즐기고, 사회생활이 삶의 활력소이다.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다른 사람에게 무심할 정도로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어서 눈치가 없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굳이 다른 사람과 친해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집에서 혼자 노는 걸 제일 좋아하는 집순이다.

지난 금요일에는 맞은편에 앉는 직장 동료가 “이번 주말에는 사회생활 좀 할 거예요?”라고 물어봤다. 내가 맨날 집에만 있는다고 하니 사회생활을 안 하는 줄 아는데, 나는 회사생활이라는 엄청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니 주말에는 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니까. 엄마 눈에는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가 사교적이지는 않다는 걸 안다.

나는 좀 고슴도치 같은 사람이다. 외로움을 타면서도 가시를 세워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반면에 엄마는 나무와도 같은 사람이다. 김용택 시인의 <안녕, 피치버그 그리고 책>이라는 시 속에서 ‘나무들은 사방이 정면이야.’라는 글귀를 읽었다. 나무들은 뒤를 돌 수가 없다. 가지와 잎사귀들이 뻗어나간 사방이 정면이기 때문에. 이 글을 보자마자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누구에게나 양 팔을 활짝 벌려 환영한다. 뒤돌아버리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오르는 사람.

나는 나와는 다른 엄마의 이타적인 면을 사랑한다. 내 친구들도 엄마가 사랑스러운 분이라고 말할 정도니까. 그러면서도 엄마가 조금만 더 이기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이타적인 면에 화가 나기도 한다. 엄마는 도무지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 나는 엄마에게 엄마만 생각하며 살라고 말했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엄마가 힘들고 싫은 건 하지 말고 살라고. 이기적이 되라고. 엄마는 “맞아, 정말 그래야 해.”라고 말하면서도 바뀌지 못했다. 엄마의 병도 엄마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엄마에게 고생하는 일은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면, 엄마는 말했다.


소라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나처럼.


엄마는 여전히 남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해달라는 건 다 해준다. 그건 아마도 착해빠진 엄마의 심성 때문이다. 나는 그런 엄마여서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든 엄마는 딸들을 걱정시키는 걸까. 나만 이렇게 잔소리가 많은 딸인 걸까.


엄마는 쑥을 캘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엄마가 부여에 내려가기로 결심할 쯤에, 나는 어느 정도 직장에 적응해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힘을 머리끝까지 주고 회사에 나가던 초반과 달리, 적응하니 그것대로 힘든 것이 있었다. 긴장이 풀리고 적응하니, 힘든 것은 그대로인데 따분함이 느껴지고 하루도 더디게 흘렸다. 일은 연차가 늘어나도 힘들다는 말이 맞는지, 스트레스는 쌓이기만 하고 풀리지는 않았다. 다른 것을 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취미 같은 것 말이다. 새로운 바람, 신나는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혹자는 회사를 오래 다니는 방법이 빚을 지는 것이라고 했다. 신용카드를 만들거나 대출을 받아보라고. 회사를 다니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다니게 된다며. 나는 회사 말고 다른 즐거움을 만들어야 된다고 추천하고 싶다. 회사는, 일은 틀림없이 지치는 순간이 있다. 삶의 활기를 좀 더 유지하고 싶다면 나만의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특별함에 너무 빠지는 건 위험하다. 꿈을 직업으로 삶는 건 주의해야 한다. 열정이 과하면 지겨워질 수 있으니. 나의 꿈과 취미가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되는 순간, 그것은 빛을 잃어간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렇다. 그래서 내 대학원 생활은 그렇게 하고 싶던 공부가 싫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의 쑥 캐기는 나의 글쓰기와 같겠지. 내가 스트레스를 풀 방법으로 글쓰기를 생각해냈듯이, 엄마도 자기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은 것이다. 언니는 모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엔 돈이 든다고 했다. 나에게도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책을 사서 읽지 않았냐고 했다. 아빠의 스트레스 해소법인 여행은 엄청난 돈과 체력이 들어서 엄마가 부담스러워했다.

원래 엄마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쇼핑이었다. 세일하는 아울렛과 물류창고에 가서 싸게 샀다며 좋아했고, 구제 옷을 팔고 헌 옷을 기부받는 가게에서 오천 원짜리 옷을 사는 것도 좋아했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아이쇼핑을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기란 상당한 노력을 요했기에 번번이 실패하기 일쑤였다. 이제 엄마는 돈이 드는 취미를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부여집에는 엄마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단순하고, 건강하고, 생산적인 일들이 아주 많아서 엄마를 위한 최상의 일터이자 놀이터가 될 것이다. 엄마는 부여로 내려가기 전부터 그것을 매우 고대하고 있었다. 도시에서만 산 나와 달리, 엄마에게는 익숙하고 그리운 것이었을 테니까.

처음 부여에 내려가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나는 엄마와 매일 출퇴근 때 전화를 하고, 인증 사진을 요구하고 있다. 엄마의 시골 라이프가 나에게는 부러움과 대리만족이 되었다. 엄마가 오늘은 어떤 일을 할까, 어떤 것을 느꼈을까가 근래 나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엄마가 드디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개떡을 싸주며 잡았다는 말을 들으면 나도 행복해졌다.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면, “개떡 좀 주지 그랬어.”라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부여에 내려가면 내가 좋아하는 쑥 버무리를 해주겠다며 유혹했다. 집에 있는 엿기름으로 식혜도 만들어서 같이 먹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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