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만난 엄마의 텃밭 4
엄마는 어디선가 쑥으로 떡국 떡을 만들어 놓으면 오래 먹을 수 있고, 향긋한 떡국을 만들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큰 외숙모는 떡을 자르지 않고 쑥 가래떡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쑥 가래떡이라니, 불에 구워 먹으면 불향과 쑥향이 함께 입안에 퍼지는 맛이 상상된다. 꿀까지 찍어먹으면 꿀맛일 것이다.
어버이날 겸 내가 부여집에 내려갔을 때, 엄마는 어김없이 쑥을 뜯으러 가자고 말했다. 나는 엄마가 자주 쑥을 뜯는 장소에 갔다. 엄마는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뚝에서 쑥을 뜯었다. 산에도 쑥이 나오지만, 산에는 멧돼지가 출몰한다. 엄마는 무서워서 산에는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산에는 고사리도 나오지만 엄마는 산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엄마는 유명 연예인이 제주도에서 고사리를 캐서 파스타를 해 먹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고사리 파스타를 해 먹고 싶다고 했다. 산에서 나는 연한 고사리가 탐났지만, 멧돼지를 이기지 못했다.
나는 어떤 쑥이 예쁘고 맛있게 생겼는지 골라가면서 뜯었다. 벌레가 먹었거나 너무 큰 잎을 가진 쑥은 뜯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모양이 예쁜 음식만 골라 먹었더니, 내가 태어나서 똑같이 따라 한다고 했다. 나는 과일도 동그랗고 무르지 않은 것만 골라먹었다.
내가 너무 천천히 뜯는 것 같아서 엄마를 관찰했다. 엄마는 숙련된 솜씨로 쑥을 뜯는 것처럼 보였지만, 쑥의 반 이상을 바람에 날려 보냈다. 쑥을 뜯다가 놓친 것을 굳이 잡지 않았다. 쑥이 손에서 빠져나가면 그냥 나가고 싶은가 보다 하고 놔뒀다. 애초에 엄마가 가지고 다닌 봉지도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엄마는 쑥이 안 나간다고 하면서도 말했다.
나가도 뭐, 괜찮아.
사실 이 일은 ‘열심히’가 필요 없는 일이었다. 쑥을 조금 못 뜯어도 상관없었다. 할당량이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대로 예쁜 것만 골라가면서 뜯어도 되고, 엄마는 엄마 편한 대로 날라 가는 쑥을 놔둬도 좋았다. 엄마에게 부여 쑥의 씨를 말릴 거냐고 장난스레 말했지만, 어차피 길가에 핀 쑥을 모두 뜯지도 못할 것이고 팔지도 못할 거였다. 이건 단지 엄마의 취미생활이었다.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매일 열 개가 넘는 알람을 맞춰놓을 정도로 실수에 민감하다. 기상부터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 회사에 도착해서 할 중요한 업무, 퇴근할 때 금고 확인하기, 세탁소에 옷을 찾기까지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알람에 맞춰있다. 언니는 내 알람이 지겹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람을 끊을 수가 없다.
휴대폰이 하루라도 없다면 내 생활은 엉망이 될 것이다. 알람은 무언가 알려주는 의미를 떠나, 내게 안식을 준다. 알람을 맞춤으로 인해서 내가 무언가를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일 중요한 회의를 준비해야 한다면, 알람을 맞춰 놓음으로 인해서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일 아침까지는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는 것이다. 알람은 일종의 안전장치와도 같다.
가끔은 지각할 것 같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새벽에 화장실로 달려갔다가 아직 기상시간이 한두 시간이나 더 남았다는 걸 발견하기도 한다. 주말에 알람이 없으면 12시간은 거뜬히 20시간도 자는 잠꾸러기가 말이다. 회사에 적응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직장인이 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적응은 했지만 강박증이 나아지진 않았다.
엄마의 시골 라이프는 내 일상과 많이 달랐다. 무언가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삶이었다. 부여집의 대문은 한쪽밖에 달려 있지 않았다. 고장 난 한쪽 문은 그냥 떼어 버렸다고 했다. 어차피 대문은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인적도 드문 동네에 누군가 찾아와 엄마의 마당을 망쳐버릴 확률은 매우 낮았다.
마당에는 그다지 중요한 물건도 없다. 누군가 소나무를 캐가거나, 꽃들을 꺾어 가도 그게 무슨 손해가 있을까. 엄마에게 달라고 말하면 엄마는 흔쾌히 가져가라고 했을 것이다. 중요한 물건은 집 안에 있고, 집은 도어록이 달려있으니 대문은 그냥 모양만 낸 것이다. 마치 엄마의 ‘대충 살자’를 실체화한 것 같다.
쑥 캐는 것과 같이 대충 해도 상관없는 일은 팍팍한 직장인인 나에게 드물고 소중한 것이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도 힘이 빠지는 시간. 엄마는 쑥을 캐다가 오후 5시쯤 되니,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분명 ‘미련 없이’라는 말을 한 것은 엄마다. 그런데 엄마는 돌아가는 도중에 ‘어머 저기 핀 쑥 연하게 생겼다’라면서 쑥을 뜯어 가방에 넣었다. 엄마의 미련이 가방을 채워갔다. 대충 살아도 미련은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