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피를 들고 병문안 온 선배
샛노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을 때, 노을의 저편에서 거뭇한 실루엣 하나가 거리를 가로질렀다.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골목길, 이런 거리엔 어울리지 않는 젊은 여자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홀로 걷고 있었다. 짧은 소매의 브이넥 블라우스, 체인 스트랩이 달린 작은 가방, 발등이 드러나 약간의 굽이 있는 구두, 그리고 그녀의 긴 생머릿결까지. 모두 검은색이었지만 그녀는 그 안에서 오히려 세련되고 고요해 보였다.
그녀의 손에는 늘 마시던 음료가 담긴 플라스틱 컵이 쥐어져 있었다. 빨대에 입을 댄 채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검은 액체를 마시며 도착한 그곳은 허름해 보이는 파란색 지붕을 가진 건물이었다. 고개를 살짝만 들어도 보이는 촌스러운 색의 3층짜리 건물. 그녀는 그 건물로 들어가는 남색 대문을 지나 굳게 닫힌 회색 현관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102호.
그녀는 현관문 잠금장치의 앞부분을 위로 올렸다. 손가락이 키패드 앞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과감히 여섯 자리 숫자 버튼을 눌렀다.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 그녀의 입가에 미세한 굴곡이 생겼다.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벽에 붙은 작은 싱크대가 보였고 그 안에는 적당량의 설거지거리가 눈에 띄었다. 왼쪽에는 화장실처럼 보이는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현관 앞에는 가지런히 정돈된 슬리퍼와 신발이 한 켤레씩 놓여 있었다.
그녀는 지체 없이 구두를 조용히 벗어 신발 옆에 반듯이 정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환풍기 소리가 약하게 들리는 화장실 옆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가자 왼쪽 아래에서 인기척이 들려왔고 그는 그곳에 누워 있었다.
싱크대 옆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있던 그는 두 겹의 얇은 이불과 극세사 이불을 목 끝까지 덮은 채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500ml 생수 페트병 몇 개가 구겨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집에 불쑥 들어온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만큼 자연스럽고도 교묘한 그녀의 입장이었다.
“약은 먹었니?”
그녀는 잦은 기침을 해대는 그의 옆에 검정 가방을 무심히 내려놓은 채 팔짱을 끼고 털썩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조용하고 단조로운 어투였지만 한순간에 분위기를 바꾸는 목소리가 그의 방에 울려 퍼졌다.
“…에, 뭐야, 누구세요?”
말할 힘도 없어 보이는 그는 그녀를 발견하고 충분히 놀랐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최대한 치켜올리며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얼굴을 살짝 찡그린 채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누구긴, 나야.”
그녀는 일어나려는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냥 누워 있어.”
그리고는 반대편 손에 들려 있던 커피를 살짝 흔들었다.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 선배가 왜 여기에…”
그는 몸에 기운이 없는지 저항 없이 다시 누워버리고 고개만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들어오신 거예요?”
그는 느릿한 말투와 함께 콜록거렸다.
“너라면 생년월일로 해둘 것 같아서. 찍었는데 맞았네.”
남의 집에 무단침입한 것 치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 키 좀 크고 마른 애 있잖아. 동아리실에서 맨날 조는 애. 걔한테 물어보니까 바로 주소를 알려주더라고? 너 친구 좀 잘 사귀어야 될 것 같더라. 아, 나라서 그냥 알려준 건가? 하긴 나 같은 사람이 없긴 하지. 오히려 잘 사귄 걸지도 모르겠네. 나랑 엮어주려고 주소까지 알려줬으니까.”
그녀의 자신만만한 엷은 미소를 보고 있자니 그는 머리가 멍해졌다. 지끈거리는 두통과 열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가 말하는 모든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한 듯했다.
“그래서 뭐 때문에 오신 거예요… 연락도 없이…”
“연락은 했어. 네가 안 받은 거지.”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안 받은 게 아니라 못 받은 건데요….”
자신의 핸드폰을 쳐다보며 확인해 볼까 하다 포기해 버린 그는 아예 눈을 감아버린 채 답했다.
“흠, 그건 뭐 그렇다 치고. 뭐 하러 오긴, 너 아픈 거 구경하러 왔지.”
한 치의 악의도 담겨 있지 않은 말투. 악의는 둘째치고 미세한 감정조차 실려 있지 않았다.
이젠 커피가 거의 바닥난 컵에서 얼마 안 남은 커피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렸다.
“독감 걸려도 마스크 끼고 일하는 애가 얼마나 아프길래 학교를 째버리는지 궁금해서.”
그는 다시 눈꺼풀을 열고 그녀를 희미하게 쳐다본다. 여전히 그녀는 빨대를 입에 물고 쭈그리고 앉아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땐 병원 들렀다가 간 거라고 했잖아요. 주사 한 방 맞고 일했어요….”
갈라지는 목소리가 힘들게 대답했다.
“뭐야, 그럼 곧 죽는 거야?”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의도적인 놀람을 표현했다.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건데요…”
“오늘은 병원 안 가고 학교도 안 왔으니까. 죽는 병에 걸렸나 싶어서.”
커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빨대로 흡입하는 그녀는 이내 일회용 컵을 바닥에 놓고 엉덩이 또한 바닥에 붙여 다리를 모은 채 팔로 무릎을 감싸며 편하게 앉았다.
“병원은 이미 갔다 왔어요… 약도 먹었고요. 한 5시간 전쯤에…”
“그래? 그럼 약은 이제 곧 먹어야겠네. 저녁은 싱크대 상태 보니까 이미 먹은 것 같은데, 맞지?”
“네, 대충 죽으로 때웠죠. 선배 죄송한데 저 오늘은 대화할 기분 아니라 다음에….”
“아, 맞다! 오늘은 보름달이 뜬대. 난 보름달 뜨는 밤이 그렇게 좋더라.”
항상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인 그녀의 말을 전부 받아치기에는 그의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기에 그는 그냥 그녀의 허심탄회한 혼잣말을 듣기만 하기로 결정했다.
“내 아버지는 출장을 자주 가셔. 뭐 자기 딴에는 열심히 가족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계신 거겠지만, 우리 엄마는 아버지가 빨리 집에 정착하셨으면 하고 항상 바라고 있어. 돈은 벌 만큼 벌었는데 왜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 않느냐면서.”
그녀는 그의 집 안 곳곳을 스캔하듯이 둘러보며 말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곧장 이런 식으로 말씀하셔. ‘돈은 벌어도 벌어도 부족한 거야. 당신이야말로 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산 가죽 소파에 편히 앉아 있으면서 응원은 못할 망정 왜 자꾸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라면서 오히려 우리 엄마를 꾸중해.”
그녀는 부자연스러운 표정과 연기톤으로 그녀의 아버지란 사람을 표현했다. 그런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항상 고급스럽고 호화로운 집 소파에서 혼자 외로이 침울해하시지. 나는 애초에 엄마를 좋아하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집에만 있을 순 없어. 그 집에 있으면 너무 답답하고 가끔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어. 엄마랑 함께 있더라도 말이야.”
마지막 한 문장은 왜인지 쓸쓸해 보였다.
“그러다 이번 주에 출장 간 아버지가 콱 죽어버렸다는 거야, 과로사로!”
그녀가 재잘거리며 크게 과장하듯이 말했다.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몸 상태로 인해 제대로 된 반응이 나오질 않았다. 눈썹을 찌푸릴 뿐이었다.
“하하! 재미없었어? 농담이었는데.”
그녀는 두 손을 활짝 펼치며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누가 부모님으로 농담을… 그런 식으로 합니까…?”
그는 여전히 말끝마다 콜록거렸고 얼굴 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여 어이없다는 표정을 있는 힘껏 보여주었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자 그녀는 그저 평온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것은 가면을 쓴 것과 같이 너무나 간결하고도 답답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녀는 이후에도 동아리 사람들의 화젯거리나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음료를 쏟아버린 얘기,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평소 안 다니던 거리를 걷다가 만나게 된 고양이 얘기를 하였다.
“나를 보더니 아주 잽싸게 도망치더라고.”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녀석이 새끼 고양이처럼 보이는 아담한 물체를 입에 물고 있었는데 나를 발견하더니 바닥에 내팽개치고 그냥 가더라고?”
“그것도 농담이죠…?”
그가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미세하게 다시 눈을 뜨며 물었다.
“은혁아, 진짜라니까? 선배님 말씀을 죄다 농담 취급해 버리면 나 정말 서러워.”
과장스러운 표정과 함께 그녀는 몸에 힘을 빼고 축 처진 채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그 새끼 고양이는?”
그가 곁눈질을 하며 호기심이 담긴 말투로 물었다.
“뭘 어떡해? 그냥 냅뒀지. 뭘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그저 구경하거나, 지나쳐가거나. 둘 중에 하나였지 뭐.”
그녀의 몸이 자연스레 원상 복구되었고 이내 퉁명스럽게 답했다.
“하긴… 근데 너무하네요. 놀라서 그런 건진 몰라도 자기 새끼를 버리고 가다니… 새끼 고양이가 아니었던 거 아니에요? 작은 봉투 꾸러미 같은 거일 수도 있고…”
“아니, 분명 새끼 고양이었어. 자기 자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꾸물거리는 모습을 내가 두 눈 똑똑히 봤다니까.”
“예예… 알겠습니다…”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왜? 화장실?”
“아뇨, 약 좀 먹으려고요.”
그가 몸을 일으켜 앉자 그녀는 그의 앞에 놓인 작은 탁상 위에 있는 약들을 손으로 약간 뒤적이다 한 봉지를 집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거지? ‘저녁’이라고 적혀 있는 거.”
“네.. 감사합니다.”
그는 약봉지를 뜯어 페트병에 담긴 얼마 남지 않은 물과 함께 약을 입 안으로 들이부었다.
“감사하면 푹 쉬고 내일은 꼭 나와. 수업은 째도 되니까 동아리는 빠지지 마.”
“그게 학교 선배가 후배한테 할 소립니까…”
그가 헛웃음을 뱉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쨌든 얼른 나아. 내일은 일정 끝나고 엠티 회의할 것 같으니까. 회장이 회의 참석 안 하면 엠티 리스트에서도 빼버린다고 으름장을 놓더라.”
그녀가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이었다.
“저 엠티 빠질…”
“응, 기각이야. 돈이 그렇게 많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고 일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왜 그래? 그럼 난 이제 갈게. 벌써 어두워지려고 그래.”
그는 자신의 의견이 철저히 무시되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쓸 틈이 없었고 그의 지끈거리는 머릿속엔 가뜩이나 어두운 골목길이 떠올랐다.
“…아, 앞에까진 데려다 드려야 되는데 죄송해요…”
그는 상체를 틀어 현관문 쪽으로 이동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아냐, 그런 것 때문은… 내가 불쑥 찾아오기도 했고, 그냥 어서 보름달을 보고 싶어서.”
그녀는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든 표정이었다. 아마 저 작은 가방 속에 상황에 따라 필요한 가면들을 갖고 다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은혁이의 머릿속에 스쳤다. 지금은 평소의 포커페이스 가면일 것이다.
“그럼 난 이만…”
그녀가 구두를 신으며 말하다 무엇이 생각난 듯 멈칫했다.
“아, 맞다. 아까 그 고양이 얘기 있잖아? 그거 거짓말이야. 사실 그 고양이는 아무것도 물고 있지 않았어.”
구두를 마저 신고 거울 앞에서 옷가지와 자신의 외모를 다듬으며 그녀는 말했다.
“그래요? 그거 참 다행이네요. 애초에 웬만하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그는 대답했다.
“그래? 근데 글쎄?
세상엔 더한 부모도 있다는 걸, 넌 잘 모르는구나.”
“…네?”
그녀가 뱉은 마지막 말의 의도를 파악하기엔 아직 정신이 덜 깬 듯했다.
“으응, 아니야. 푹 쉬고 내일 보자.”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금세 정적에 물든 방과 함께 그는 처음으로 그녀의 인간다운 미소를 작게나마 목격한 듯싶었다. 늘 건조하거나 의식적이던 그녀의 다른 미소들과는 매우 차이가 나는,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의 가슴 한 곳이 이유도 모른 채 먹먹히 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