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와 타이밍의 중요성
끝을 바라보며 시작할 때가 있다.
내게 축구가 그랬다.
딸아이가 먼저 못 버티든 내가 먼저 못 버티든 둘 중 하나가 나가떨어지는 순간 축구는 그만둬야지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배움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수요일은 딸과 함께 축구를 하는 날이다.
아이는 어른들 사이에서 귀여움과 관심을 독차지하며 신나 했고, 나는 그저 숨을 헉헉대며 운동을 겨우 따라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15분짜리 짧은 경기를 뛰고 나면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쟤는 어떻게 축구를 하루에 두 탕을 뛰는 건지 참 의문이다.
"한별님, 축구화 얼른 준비하셔야 해요. 여기 잔디는 푹신해서 운동화는 위험해요."
집에 남편과 딸아이의 축구화가 잔뜩 있었지만 정작 내가 신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로 사자니 내가 축구를 얼마나 오래 할지 모르겠고...
남편도 한 달은 더 해보고 사자고 했다.
그래, 아무리 예체능은 장비빨이라지만 천천히 사도 되겠지.
그땐 몰랐다.
이 안일한 마음 때문에 결국 한 달도 안 돼 축구를 멈추게 될 줄은.
축구를 시작한 지 네 번째 되던 날, 사고가 터졌다.
빠르게 상대편 진영으로 공을 몰고 가 슛을 하려던 순간, 땅이 푹 꺼지는 느낌과 함께 "뚜득" 소리가 들렸다.
디딤발이었던 왼발이 완전히 꺾여버린 것이다.
발목이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내 몸도 땅바닥을 향해 무너졌다.
"괜찮으세요? 발목 꺾이신 거죠?"
감독님이 가장 먼저 달려와 물었다.
"네,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강한 통증 속에서 나 때문에 중단된 경기가 신경 쓰여 괜찮은 척 절뚝이며 경기장 바깥으로 나왔다.
응급처치를 하고 발목 상태를 확인하니 큰일이었다.
빠르게 부풀어 오르고 작은 움직임에도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어린 시절 발목을 몇 번 삐어본 경험 덕에 이번에는 큰 부상이라는 걸 직감했다.
밤늦게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운전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남편을 호출했고, 예상대로 온갖 잔소리를 들으며 다음날 병원으로 향했다.
그놈의 운동화가 문제였다.
그날따라 유난히 발목이 불안정하다고 느꼈는데도 나는 운동화를 신고 신나게 능력을 뽐내려 했다가 큰 부상을 입었다.
푹신푹신한 카스테라 위에서 하이힐을 신은 듯 휘청거리는 느낌이 위험신호였다.
선수들이 왜 인조잔디에서는 풋살화를 신고, 천연잔디에서는 축구화를 신는지 이번에 제대로 깨달았다.
병원에서 부어오른 발목을 보여주자 의사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어떻게 하면 이렇게 심하게 꺾이죠?"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밤에 축구하다가 그랬어요."
"밤에요? 어두워서 안 보인 거예요?"
의사의 말이 농담처럼 들렸지만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나는 축구에 눈이 어두워 축구화의 중요성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작은 망설임이 이렇게 커다란 부상으로 돌아올 줄이야.
결국 한 달간 깁스를 하고 생활해야 했고 발목은 붓기와 멍도 쉽게 빠지지 않았다.
움직임의 범위가 회복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편과 딸의 축구화를 보며 늘 속으로 투덜댔었다.
'그놈의 축구화, 비싸기도 하지. 또 닳기는 왜 그렇게 빨리 닳는지...'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축구에서 축구화는 단지 장비가 아니라, 그라운드라는 전쟁터에서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안전장치였다는 것을.
지켜야 할 타이밍을 놓치면 삶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한다.
이것이 준비하지 않은 자가 부상으로 얻은 값비싼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