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을 통해 본 임팩트 투자와 문화정책
“자본이 흐르는 곳에서, 변화가 일어난다(where capital flows, momentum follows)”
지난 2017년 10월 9일, 임팩트 투자 기업 ‘체인지 파이낸스(change Finance)’는 뉴욕증권거래소에 ‘화석연료 배출 제로(fossil-free)’를 전면에 내세운 ETF(exchange traded fund, 상장지수펀드) CHGX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CHGX(The Change Finance Diversified Impact U.S. Large Cap Fossil Fuel Free ETF)는 환경, 지속가능성, 거버넌스를 고려한 50가지 이상의 기준에 따라 상장 기업의 주식을 선별해 구성된 펀드다. 이들이 제시한 기준과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투자를 통해 경제적 수익과 가치의 실현을 동시에 추구해볼 수 있다.
CHGX 펀드를 운용하는 체인지 파이낸스는 자신들을 소개 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본이 흐르는 곳에, 변화도 따른다”. 투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자 관심의 표명이기도 하다. 투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후원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임팩트 투자는 이렇게 사회적 변화(impact)를 이끌어내려는 이들에게 자본을 흘려보내는 노력을 뜻한다. 다만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익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는다는 점에서 기부와 같은 기존의 방식들과 구분된다.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에 투자하여 수익도 거둘 수 있다는 것은 과거에는 꿈과 같은 일이었다. 임팩트 투자는 이를 현실로 만들어내려는 시도다.
임팩트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경제 조직이나 문화 활동의 오랜 고민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이때 지속가능성이란 단순히 재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해당 조직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의미 있는 사회적 기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직과 구성원으로 함께 커가는 것이야 말로 지속가능성의 중요한 토대다.
사회혁신의 방법론으로서 스타트업의 육성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러한 고민과 연결되어 있다. 혁신적 기업은 삶의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생활양식과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물론 많은 스타트업들이 창업을 하지만, 생존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때론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좀비 기업이란 오명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지는 못할지라도, 지속가능한 형태로 살아남아 사회적 혁신을 이룰 수 있다면 그 기업은 존재 이유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임팩트 투자는 이러한 사회 혁신 방법론의 중요한 하부구조를 구성한다.
임팩트 투자의 부상: 사회적 가치에 투자하는 사람들
지난 2015년 초, 가수 수지가 입국하며 들고 있던 스마트폰 케이스가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며 품절 대란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돕기 위해 고 심달연 할머니의 압화작품 ‘병화’를 모티브로 만든 스마트폰 케이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마리몬드는 2012년부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예 심리 치료’ 과정에서 꽃을 눌러 만든 미술 작품을 모티브로 패션 디자인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소셜 벤처다. ‘수지 폰 케이스’ 대란 이후 마리몬드는 매출이 급증하며 2015년 매출 16억원에 7천만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마리몬드는 임팩트 투자 전문기업 HGI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소비’를 통해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후원하길 원하는 소비자들과 영리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기업, 그리고 이들의 가능성을 보고 자금을 지원한 투자자가 합작한 결과일 것이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드러낸다. 본인이 의미를 두는 곳에 돈을 쓰는 ‘가치 소비’가 늘어나면서, 개인적인 가치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 역시 소비 행위의 고려 대상으로 자리 잡는다.
한편, 소셜 벤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사업적 가능성을 찾는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비용을 아끼지 않는 소비자와, 혁신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소셜 벤처의 결합은 그것이 재무적 성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임팩트 투자가 가치 소비, 소셜 벤처와 같은 개념들과 함께 부상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의 성장과 더불어 임팩트 투자의 ‘주류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드러냈던 밀레니얼 세대는 투자를 통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것이며, 이들이 향후 자본 시장의 주역으로 자리 잡을 때, 임팩트 투자의 자산 역시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팩트 투자 진흥 비영리기구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N)’에 따르면 전 세계 임팩트 투자 규모는 2014년 460억 달러(약 53조원)에서 2015년 600억 달러(약70조원)로 30% 이상 급증하여 2020년에는 3400억 달러(약4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임팩트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
최근 한국에서도 임팩트 투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7년 10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헤이그라운드’를 방문했다. 헤이그라운드, 그리고 성수동은 소셜 벤처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루트임팩트, 소풍 등 대표적인 벤처 액셀러레이터는 물론, 다양한 소셜 벤처들이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하며 소셜 벤처의 창업과 성장을 위한 집중 투자를 발표했다. 여기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 펀드’ 신설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2월, 정부는 총리 주재의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통해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여기서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e)은 “보조나 기부행위가 아닌 투자와 융자, 보증 등 회수를 전제로 사회적 경제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활동”을 뜻한다. 5년간 3천억원 규모의 ‘사회가치기금’을 조성하여 ‘도매금융’ 역할을 하게하고,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 인증제’를 도입하며,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사회적 금융 투자의 확대 등의 계획을 핵심으로 한다.
특히 투자 확대 측면에서는 다음 3가지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먼저 성장사다리 펀드 내에 우선 300억원 규모의 ‘사회투자펀드’를 1차로 조성하고, 향후 5년간 최대 1,000억원까지 단계적 확충을 추진한다. 다음으로는 모태펀드 내에 사회적기업 子펀드를 추가로 조성한다. 이미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모태펀드 내에 사회적기업 투자조합을 1~4호에 걸쳐 182억원 규모로 결성, 사회적 기업 및 관련 참가자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온 바 있다. 이번 계획은 여기에 예산 75억원과 민간출자금을 더하여 추가로 투자조합을 결성하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소셜벤처에 투자하는 임팩트펀드를 조성, 운용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 해 10월에 발표한 임팩트 투자 펀드 신설 계획을 구체화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회적 기업이 업력제한 없이 주식형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계획의 중요한 특징은 기존 사회적 금융의 투자 대상이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은 기업들로 다소 한정되었던 것을 넘어서, 보다 넓은 범위의 ‘소셜 벤처’를 대상으로 투자하는 펀드의 운용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국모태펀드가 발표한 2018년 출자사업 계획(2.21)을 살펴보는 것은 향후 임팩트 투자 펀드의 운용 방향을 가늠해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모태펀드 중진계정의 출자 계획 중 소셜임팩트 분야는 총 500억원 출자예정으로(결성 목표액 625억원), 재무적 성과와 사회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혁신성·성장성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인 소셜벤처기업에 약정총액의 70% 이상을 투자하도록 되어 있다. 소셜벤처기업에 대한 범위는 운용사가 Track 1, Track2 중 선택하여 제안하게 되어 있다. 특히 Track 1은 UN 지속가능개발(SDGs) 17개 목표 내에서 운용사가 자율적으로 제안하거나, 사회문제 해결을 주목적으로 영위하는 기업을 아래와 같은 예시를 고려하여 제안하도록 되어 있다.
문화 정책과 임팩트 투자의 만남에 대한 기대
흥미로운 것은 임팩트 투자 펀드의 경우 투자기업의 사회적 성과(공공성)을 측정할 수 있는 평가지표를 운용사가 제시하도록 한 것과 투자금 회수에 오랜 기간이 걸리는 소셜 벤처의 특성을 고려하여 펀드 존속기한을 장기로 설정한 것이다. 펀드 운용의 성과 지표로 ‘임팩트’의 측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향후 구체적인 방법론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특히 펀드 존속기간을 늘린 것은 자칫 수익성 중심의 평가로 회귀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임팩트 투자의 확산과 주류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과업의 하나로 이야기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임팩트의 ‘측정’이다. 특히 과거의 ‘수익율’과 같은 단일한 기준이 아닌 더 다양한 임팩트 측정의 기준들이 마련되고, 각각의 기준들이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 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 된다. 아직 임팩트 측정을 통한 성과 지표의 도입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무리하고 성급하게 단일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보다, 분야의 특성을 고려한 효과적인 지표들을 만들기 위한 유연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소셜 벤처의 사업 분야 안에 ‘문화’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문화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들은 기존의 사회적 경제나 사회적 기업의 프레임에는 잘 맞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출자계획을 통해 다양한 문화 분야의 스타트업들도 임팩트 투자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실질적으로 문화가 소셜 벤처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향후 공적 가치로서 문화적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평가 지표의 개발 등 임팩트 투자의 성과가 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다만, 문화 정책에 임팩트 투자를 적용할 때 유의해야 할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미 문화산업 분야에서는 모태펀드 제도를 도입하여 기존의 기금 중심의 지원 제도를 대폭 개편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문화산업 분야에서 모태펀드는 산업의 투자 생태계를 활성화 시키는 데 분명 도움을 주었지만, 수익성과 공공성이라는 이중의 목표를 충족시키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새로운 관점과 세계관을 가진 정책이 도입될 때, 그것이 만들어낼 편중의 문제를 항상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많은 모험가들이 사회 혁신의 이름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고, 자본 시장의 작동 원리도 단일한 기준이 아닌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화적 가치 증진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이 더 많이 나올 때, 활동가의 헌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지속가능한 문화 활동의 확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미 청년들의 문화 활동은 장르의 구분을 넘어 자유롭고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임팩트 투자에 대한 고민이 전통적인 보조금 방식의 후원을 넘어서, 다양한 새로운 정책적 시도들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이 글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관광웹진 5월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