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민 Jan 18. 2019

북경에서 만난 출판 산업의 변화

디지털 혁신의 파도 속에서 문자 문화를 지키는 방법

1. 들어가며: 인문 정신과 출판, 그리고 중국

우리는 말과 글을 통해 다른 이들의 생각을 접하고, 자신의 생각을 다듬는다. 말과 글을 담아내는 그릇의 변화는 이러한 생각의 창출과 공유의 방식과 이를 둘러싼 생태계의 변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전통적으로 인문 정신의 공유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온 미디어는 다름 아닌 책이다. 책은 공중에서 뚝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자를 발굴하고, 이들의 생각을 정제된 형태로  편집하며, 물리적이거나 디지털의 형태로 생산하여 유통하는 과정 전반에 관여하는 이들이 있다. 출판업은 바로 이러한 인문 정신의 사회적 공유를 담당하는 핵심 산업이다. 인문학의 미래를 논할 때, 출판산업의 변화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전세계적으로 출판 산업은 디지털 혁신이라는 기술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름의 새로운 입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종이책 시장 규모의 위축이란 현실 속에서 출판은 계속해서  인문 정신의 사회적 공유의 한 축으로서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변화된 환경 속에서 출판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인문 정신의 사회적 공유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문화 정책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계속되는 디지털 혁신의 파도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를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출판 산업을 사례로 검토하게 된 것도 이러한 고민에 답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중국은 국가의 사상적 근간에 있어서 문자 문화와 활자 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진흥하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빠르게 최근의 디지털 혁신을 수용하면서,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산업적 기회들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있다. 출판 문화와 시장이 성숙한 선진국에서의 디지털 대응과는 또 다른 방식의 중국의 대응을 살펴봄으로써, 아시아적 맥락에서 출판 산업의 미래 모습의 한 사례를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2. 북경에서 만나 본 중국 출판의 현재와 미래

중국 출판 산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북경에서 출판 분야의 전문가 및 실무자를 만났다. 연구기관과 출판전문잡지, 출판사의 디지털 혁신 담당자, 주요 출판사 대표 등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중국 출판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었다.

먼저 중국의 출판 산업은 2018년 도서 소매시장 규모가 880억 위안을 돌파하는 등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출판 산업과 아동 도서시장 확대와 더불어 글로벌 출판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출판 산업은 개혁개방 시대 이후 크게 발전해왔으며, 특히 2000년대 이후 경제발전, 교육수준의 향상, 문화적 수요 증대와 더불어 연 평균 10%이상 고속성장 해왔다.


견고한 종이책 시장의 성장, 디지털 혁신에 대한 적극적 대응

80후, 90후 등 개혁개방 이후 세대는 출판 소비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핵심 독서인구로 성장했다. 특히 최근 중국에서 아동서적 시장은 매년 20%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개혁개방 이후 세대가 부모가 됨에 따라 그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 및 도서구매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특히 획일적, 대량소비의 문화보다는 질적으로 우수한 도서에 대한 수요가 강하며, 아이들에 대한 책읽기 컨설팅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 또한 증가하고 있다. 높은 교육열로 인해 참고서, 수험서 등 교육출판 분야가 전체 출판시장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중국인의 열독 시간이 감소하고 있고, 중국의 종이 도서 시장은 최근 조금씩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지만, 매년 40~50만종 도서 생산 규모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책의 콘텐츠, 디자인, 포장 등 질적 면에서 최근 크게 향상되고 있으며, 좋은 품질의 고급 책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체 출판량의 증가세는 감소하고 있지만, 물가 상승, 책의 고급화에 따라서 중국 내에서 책 가격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현지의 전문가들은 현재 중국의 책 가격이 미국, 일본의 절반 수준이며, 앞으로 5~6년 내에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비록 성장세는 둔화되었지만 종이책의 품질 제고와 더불어 가격 상승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산업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인 편이다.

그러나 중국의 출판 역시 디지털 혁신이란 변화의 파도를 직면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미디어 보급이 확대되면서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문화 콘텐츠 소비가 급격히 증가했고, 전통적인 출판 분야는 디지털 IT 분야와 경쟁하는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최근 조사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하여 동영상 감상, 게임 등을 하는 데 매일 3~5시간 이상 보내는 사람들이 40%이상으로 조사되어, 중국의 디지털 콘텐츠 소비가 상당히 늘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출판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출판 영역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방출판사에서는 최근 상호작용이 가능한 음성, 영상화된 책 출판을 준비 중이며, 대표적 IT 기업인 바이두와 합작하여 책을 활용한 음성서비스 및 강의자료 등의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오디오북의 경우 다른 일 하면서 듣기에 용이하다는 점에서 빠르게 소비층이 늘고 있다.

이러한 적극적 대응에 힘입어 중국 전체 출판산업에서 디지털 출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머지않아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뉴미디어, 신기술 도입에 따라서 전통적인 종이책은 점차 이북(e-book), 오디오북, 영상강의 등 멀티미디어화 되는 방식으로 확장될 것이고, 지식의 전파 방식 또한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문예, 역사 분야에서 오디오북 시장과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며, AI, VR, 음성식별 기술 등을 활용한 도서출판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콘텐츠IP 중심의 접근과 적극적인 인력 정책

최근 중국 정부에서도 출판 산업 분야의 디지털 기술 수용에 대한 고민과 함께, 전통 출판사와 뉴미디어 기업 간의 협력과 융합을 모색하는 정책적 고민을 하고 있다. 특히 중국 출판산업 정책은 디지털 경제 규모 확대 및 게임, 애니메이션 등을 포함하는 콘텐츠 산업 진흥 정책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문화산업 융성이라는 맥락 속에서 함께 논의된다는 특징이 있다.

중국 출판업계도 기존의 종이책 중심의 매체성에서 탈피하여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도서 인쇄 중심의 중국 출판은 이제 콘텐츠 및 아이디어 생산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으며, 그 기술적 구현을 위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도서 관련 굿즈(goods)를 제작하여 판매하거나,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IP를 활용하여 영화제작하는 사례, 대학에서 뉴미디어 기술 및 플랫폼 연구진이 출판사의 콘텐츠를 활용하여 다양한 협업과 연구를 진행하는 사례 등이 발견된다. 최근 웹소설 등 디지털 출판 분야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인터넷 기반 소설이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등으로 만들어지면서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독자들과 작가들을 온라인 웹사이트에서 소통할 수 있도록 하거나, QR 코드를 활용하여 플랫폼 연결을 용이하게 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 및 참여의 네트워크를 구성해가고 있다. 혁신하는 출판업계는 독창적 IP와 콘텐츠를 통해 민영 문화산업 회사들과 다양한 방식의 합작사업 등 협업을 수행한다.

흥미로운 것은 국영 출판사와 민영 기업의 합작 형태의 협력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영 기업은 공산당의 가이드를 받으며, 그 활동에 제약이 있다. 민영 기업은 출판권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출판을 할 수는 없지만, 민영 기업 특유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기존 기업이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시도들로 확장할 수 있다. 또한 출판 기업이 아니란 점에서 굿즈 등 다양한 수익 사업과의 연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들이 국영 기업과 합자하여 출판을 전개하는 덕에, 중국 출판계는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출판 산업이 가질 수 있는 경직성이란 한계를 산업적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출판 업계 인재 양성을 위한 정책들이 시행 중이다. 예컨대 출판사 편집인들이 매년 72시간 뉴미디어, 마케팅, 디지털 출판 등에 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거나, 각종 학술회의나 포럼 등을 조직하여 출판업계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도록 하고 있다. 출판인들의 디지털 신기술 습득을 장려하고, IT 기업이나 문화콘텐츠 제작자들과의 적극적인 교류 협력을 진행하는 등 변화한 미디어 기술 환경이 가져온 가능성을 적극 활용하려는 전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문정신 및 미디어 콘텐츠 산업 생태계와의 유기적 연결

특히 중국에서 출판 산업은 독립되고 파편화된 인쇄출판 중심의 한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미디어 콘텐츠 산업의 생태계 지형도 속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본다면, 중국 출판 산업은 유기적으로 인접 산업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식문화의 원천으로서 그 중심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출판 산업 관련 연구 및 정책이 중국의 정치체제 특성상 지속성·일관성을 갖추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앞으로의 산업 전망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영화, 게임, 공연 등 문화산업 전반이 융성하고 있고, 국가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출판 또한 젊은 세대의 활약 증가 및 시장 확대를 통해서 계속 성장의 기회를 맞이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이들은 단지 인쇄매체로서가 아니라 멀티미디어, 뉴미디어 차원에서 출판 산업을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인류 지식의 핵심은 책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 출판 산업의 구조는 한국과는 달리, 국영 출판사를 중심으로 조직화 되어 있다. 개별 출판 그룹의 규모는 한국보다 크고, 미디어 그룹의 형태이기 때문에 경영 측면에서 더욱 안정적이다. 무엇보다 텍스트, 글이 중국 문화에서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기 때문에 큰 우려와 불안 없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3. 인문정신의 관점에서 본 한국 출판의 현실과 대안

중국 출판의 사례를 검토하며 한국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인문정신의 미래란 관점에서, 한국의 출판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한국은 인구 구조 변화와 글로벌 외교 환경 변화, 기술 혁신이라는 삼중의 거시적 변화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거시적 변화 속에서 한국은 인력의 질, 글로벌 위상 변화, 미디어 환경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인문정신에 대한 사회적 수요와 역할도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함께 변화해 나갈 것이다.

4차산업혁명이라고 불리우는 변화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이 미래 사회에서도 지금과 같은 지위를 여전히 누릴 수 있을까. 우리가 기계보다 나은 것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기계보다 낫기 위해서, 이 사회를 지속하기 위해 우리 인간은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할까. 중차대한 질문임에도,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인문 정신의 진흥을 위해 인문 정신의 생산과 유통을 담지하고 있는 산업적 영역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지금 한국의 인문정신 재생산 생태계에 대한 위기의식이 강화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인문학 분야의 인재 유입을 가능하게 할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관련 지식 시장은 인기 있는 대중적 지식의 전파에 집중되어 있을 뿐, 다양한 인문 정신의 창출의 충분한 기반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정말 인문정신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기존의 연관 산업에서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상업적 영역에서의 시장 질서의 수립이란 이중의 과제를 어렵더라도 고민하고 시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 출판 정책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산업적 진흥과 문화적 목표의 긴밀한 결합이다. 공적 역할은 국영 기업의 형태로 철저히 제한하되,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방식으로 재생산의 토대를 닦는다. 산업적 역동성은 민간 기업들과의 합작을 용인함으로써 시장 기능이 작동하게 한다. 이러한 구조는 문자 문화가 중국이란 국가의 장기 지속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정책적 판단과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 인문 정신에 대한 분명한 정책적 인식과 산업 진흥에 있어서의 분명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출판을 미디어 정책으로 한정하여 접근하는 시각은 인문정신과 산업 생태계에서 출판의 역할을 과소 평가하게 만든다. 출판은 사람들의 사유를 글, 텍스트의 형태로 정제하여 기록, 보관, 유통하는 사회적 실천이다. 종이책이라는 제한된 미디어가 아니라, 지식의 공공화 자체가 출판의 본질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출판은 총체적 인문 정신의 근간이란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이들 정책의 수립 및 집행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로 고려되어야 한다.

최근 발표된 포용국가 비전은 국가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가는 데 있어서 사회적 갈등의 완화와 창의적 혁신의 조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문정신은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과 창의성, 포용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기반이란 점에서 이를 진흥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점차 더 중요해질 것이다. 막연한 구호가 아닌 실질적 인문정신의 생산과 공유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을 위해, 그 기반이 되는 출판을 비롯한 인문정신 생태계 전반에 대한 정책적 고민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작성자: 이상규, 이성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

*이 글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관광 웹진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