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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Jul 03. 2019

넷플릭스에 올라타는 지상파

OTT, 생존을 위한 동반자가 되다 #신문과방송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월간 '신문과 방송' 2019년 7월호(583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신문과 방송 2019년 7월호 바로가기

신문과 방송 45~48쪽 지면 기사 보기


지난 5월,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 ‘봄밤’이 공개되었다. 넷플릭스에 한국 드라마가 올라오는 일은 익숙한 일이지만, ‘봄밤’이 특별했던 것은 이 작품이 지상파 방송사 MBC를 통해 동시에 방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국내 콘텐츠 및 미디어 산업 방어를 이유로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경계해왔다. 1년 전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제휴를 발표하자 이는 ‘미디어 산업 생태계 파괴의 시발점’이며, 한국이 넷플릭스의 ‘하청기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날카로운 반응을 내놓았다. 지난 1월에는 SKT의 옥수수와 지상파 3사의 콘텐츠연합플랫폼 푹(POOQ)의 합병을 발표하며 넷플릭스와 경쟁할 토종 OTT의 육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상파의 작품을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변화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지상파 콘텐츠의 넷플릭스 공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12월, SBS는 6부작 단막극 ‘사의 찬미'를 넷플릭스에 공급했다. SBS는 당시에 특집 드라마란 점에서 예외적인 사례라고 선을 그었지만, 기존의 강경한 입장과는 다른 움직임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MBC도 작년 8월 유통 경로 다각화 차원에서 넷플릭스에 1년 이상 구작의 공급을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를 통해 드러났다. 넷플릭스의 영향력과 가능성에 대해, 개별 방송사들의 고민이 깊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본격적인 변화는 지상파 3사가 SK텔레콤과 푹-옥수수 합병 법인 출범의 본 계약에서 각 사별로 1년에 2편의 작품을 글로벌 플랫폼에 공급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MBC의 ‘봄밤'은 물론, SBS의 ‘배가본드'가 넷플릭스를 통해 동시 방영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배가본드'는 넷플릭스의 편성을 고려하여 방영 스케줄을 3월에서 9월로 미룬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KBS 역시 하반기 선보일 대작 가운데 한 작품을 넷플릭스에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한 공동 전선을 펼치는 듯했던 지상파 방송사들이 입장을 바꾼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왜 지상파 방송은 넷플릭스에 올라타는 선택을 한 것일까? 이 글에선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시작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선택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해 검토하고, 이러한 선택이 앞으로 지상파 방송 및 미디어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왜 지상파 방송은 넷플릭스에 올라타기 시작했을까?

지상파 방송사들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그들이 처한 현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 생태계 안에서 지상파 방송사는 그 위상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미디어-플랫폼 사업자인가, 콘텐츠 사업자인가? 먼저 그들은 방송이라는 중요한 미디어-플랫폼을 운영하는 사업자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그들은 다양한 콘텐츠의 편성에 기초하여 이용자와의 접점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광고 수익을 획득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수용자의 일정한 시간을 점유할 수 있는 ‘채널’에 대한 충성도다. 미디어 사업자로서 방송사는 해당 채널을 통해 방송되는 콘텐츠 경험을 토대로 브랜드 가치를 구축하며, 이를 위해서 독점적인 콘텐츠의 수급을 필요로 한다. 반면 콘텐츠 사업자로서 방송사는 IPTV를 비롯한 미디어 사업자에게 콘텐츠를 공급함으로써 수익을 거둔다. 이때는 최대한 다양한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공급할수록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즉 미디어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 방송사는 스스로의 위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갖게 된다.

미디어 사업자의 입장에서 넷플릭스는 강력한 경쟁자이다. 넷플릭스가 성장할수록, 사람들은 기존의 미디어 서비스를 통하지 않고 직접 넷플릭스에 접속해서 시간을 소비한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점차 외부의 콘텐츠를 수급하여 제공하는 ‘플랫폼’이라기보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한 브랜딩에 집중하는 또 하나의 거대 채널 사업자로 성장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출범을 계기로 본격화하고 있는 글로벌 OTT 전쟁은 일종의 거대한 채널의 재구성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OTT 중심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월정액 VOD 서비스는 각각 일종의 채널로서 기능한다. 푹과 옥수수가 결합한 OTT 서비스도 이러한 글로벌 서비스와 경쟁하는 하나의 채널로서 자리를 잡아나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에 영상을 공급하는 건, 채널 차원에서 경쟁자에게 자신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콘텐츠 사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넷플릭스는 좋은 협력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을 원하는 사업자 입장에선 매우 유용하다. 방송사들은 국내 시장의 관점에선 미디어 사업자, 즉 ‘채널’의 위상을 갖지만, 해외 시장으로 나가는 순간 콘텐츠 사업자로 위상이 바뀌게 된다. 이 지점에서 고민이 발생한다. 선택의 기준은 해외 사업의 비중이 될 것이다. 콘텐츠 사업의 입장에서 해외에서의 성과가 더 중요해진다면,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효용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문제는 방송 콘텐츠에서 해외 시장의 성과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드라마 콘텐츠의 제작비 규모 증가는 해외 시장의 중요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최근 방영된 아스달 연대기는 총제작비가 540억 원에 달한다. SBS와 넷플릭스에서 공동 방영될 배가본드도 200억 원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별에서 온 그대(2013)가 132억 원, 태양의 후예(2016)가 130억 원 규모로 제작된 것에 비교해도 그 규모가 크게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국내 방송 광고비 규모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방송 광고비 규모는 점차 위축되는 추세다. 2018년 방송통신 광고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도 방송 광고비는 4조 514억 원으로 2016년 대비 2% 감소했으며, 지상파 광고비는 1조 5천517억 원으로 11.1% 감소했다. 방송사의 드라마 제작비 투입의 상한이 광고비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이를 뛰어넘는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이상의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기란 어렵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외 시장에서의 성과를 목표로 하는 제작사들은 기존의 방송사의 방영권료 이외의 추가적 투자를 확보해야 한다. 글로벌 서비스인 넷플릭스와의 협력은 현실적으로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넷플릭스 방영을 결정한 지상파 방송사의 작품들 역시 이러한 요소들을 중요하게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안판석 PD의 봄밤을 제작한 JS픽쳐스는 편성 논의 단계에서부터 넷플릭스 공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한 배가본드는 소니 픽처스와의 한미 동시 배급 추진이 불발되면서 제작비 확보를 위해 대안으로써 넷플릭스와 협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넷플릭스는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의 길이 제한된 상황에서 제작비 규모를 확대하여 글로벌 지향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배제하는 것은 콘텐츠 사업자 입장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밀어내는 결과를 낳게 된다. 최근 몇 년 간 지상파 방송사들이 드라마 장르에서의 영향력을 급속히 잃어간 것은 이러한 이유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콘텐츠 사업자로서 방송사는 좋은 작품을 수급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기반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핵심 기반인 광고에서 위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 방송사는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방송사의 매출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콘텐츠 사업자로서의 브랜드 가치에서 찾을 수 있다.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질 높은 콘텐츠의 수급을 위해선 더 큰 제작비를 요구하고,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는 제작사와 손잡아야 하며, 이는 기존의 경직된 비용 구조를 벗어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넷플릭스로의 동시 방영이란 선택은 고품질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고육지책인 것이다.


선택 이후, 한국의 미디어-콘텐츠 산업은?

넷플릭스의 한국 시장 장악에 대한 우려가 가득했던 1년 전과 달리, 이제 우리는 넷플릭스와 지상파가 협력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러한 선택은 앞으로 우리의 미디어-콘텐츠 산업을 어떻게 바꾸어갈까?

먼저 콘텐츠 제작 역량과 경쟁력의 관점에서 볼 때, 지상파와 넷플릭스의 협력은 긍정적 신호로 볼 수 있다. 먼저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콘텐츠 제작 방식의 유연한 확장이다. 일률적인 제작 비용 산정, 독립제작사와의 위계적 관계와 같은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으로는 향후 치열한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의 콘텐츠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계기로 지상파 방송사들은 콘텐츠 투자의 방법과 방향을 다양화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방영권 중심의 투자 구조를 확장하여 더 큰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는 형태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선택들을 통해 더 유연한 투자의 경험이 확대되면 지상파 방송들은 콘텐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들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방송사는 대형 콘텐츠 수급을 통해 채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콘텐츠에 대한 투자 전략도 다변화할 수 있다. 이는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고 스스로의 제작 역량을 복원해야 하는 방송사 입장에선 시급한 일이다.

또한 방송사들은 해외 시장을 고려한 더 큰 사업의 기회들을 만들어볼 수 있다.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고려한 프로젝트는 근본적으로 글로벌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방송국은 방영권 비용을 토대로 이 작품에 투자하면서, 향후 IP 비즈니스 등의 사업의 기회에서 일정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된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나눌지에 대해서 보다 열린 태도로 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는 글로벌 비즈니스로의 지향점의 확장에 긍정적인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결국 해외 시장에서의 반응으로 이어질 것이고,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반응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향후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수급에서의 경쟁력과 협상력의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음으로 넷플릭스가 열어 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의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플랫폼과 채널의 존재 양상을 보여준다. OTT 서비스는 앱의 형태로 서비스되는 구독형 VOD 묶음 중심의 채널 재구성을 일으키고 있다. 즉 사람들이 푹, 티빙,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등의 서비스를 동시에 구독하면서, 이를 과거에 채널을 재핑(zapping)하던 방식으로 이용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재편 과정에서 글로벌 대형 사업자들의 서비스와 국내 서비스 간의 경쟁이 기존의 규제를 넘어서 보다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콘텐츠 제작사 기반의 콘텐츠 서비스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제 방송사들은 넷플릭스를 일종의 채널로 보고, 해외 채널의 구축과 다변화의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넷플릭스는 국내 미디어 사업의 관점에서 위협적인 경쟁자이지만, 해외 서비스의 관점에선 가장 유용한 협력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국 시장에서의 채널-서비스의 재구성과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의 가치사슬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과정이다. 디즈니 조차도 이러한 전환의 과정에서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헐값'에 제공하면서 넷플릭스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지만, 이를 통해 디즈니 플러스로의 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이러한 선택은 필연적이다. 협력과 견제가 공존하는 더 유연하고 적극적인 모험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앞으로의 방송 환경 변화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점차 요구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미디어 스케이프가 확대된 환경에서 방송의 공익성을 어느 수준에서 요구하고, 방송의 상업성을 어떤 상황에서 용인할 것인가. 방송사는 거대화된 조직을 어떻게 효율화하면서도 기존의 공익적 콘텐츠의 제작 기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그저 딜레마적인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는 찾을 수 없다. 지상파 방송사는 넷플릭스라는 딜레마를 어떻게든 활용하며, 다음 단계로 한 걸음 나아가려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이러한 선택은 분명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변화에 대한 의미 있는 대응의 시작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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