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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Dec 17. 2019

미디어-콘텐츠기업 인수합병 소식이 보여주는 변화의 신호

콘텐츠IP 중심의 가치 사슬 재편의 시작 #신문과방송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월간 '신문과 방송' 2019년 12월호(588호)에 게재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글을 작성한 이후, 통신사의 콘텐츠 산업에서의 위치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면서, 직접적인 콘텐츠 투자/활용의 측면에서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플랫폼이 인터넷 망 중심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그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보긴 어렵다는 점을 잘 담아내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콘텐츠IP 중심의 가치사슬 재편이란 방향성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고려하여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문과 방송 2019년 12월호 41-44쪽 지면 기사 보기



들어가며

2019년 한 해 동안 미디어 콘텐츠 업계에서 인수합병과 전략적 제휴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넷플릭스가 촉발한 OTT 중심의 플랫폼 전쟁은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SK텔레콤과 지상파3사가 힘을 합쳐 출범시킨 ‘웨이브'는 넷플릭스의 대항마를 자처했다. 이에질세라 지난 9월에는 CJ ENM과 JTBC가 OTT 합작법인 출범을 위한 MOU를 지난 9월 체결했다[1]. 기업 간 합종연횡은 산업의 경계를 가리지 않았다. IT기업인 카카오는 지난 9월 영화사 월광과 사나이픽쳐스를 인수하며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의 진화를 알렸다. 네이버는 새롭게 출범한 스튜디오N을 통해 자사의 웹툰IP를 활용한 ‘천리마마트’ 드라마를 제작, TVN 채널을 통해 방영하며 입소문을 모았다. 영상 콘텐츠 소비의 핵심 플랫폼인 유료방송은 지난 11월 LG유플러스와 CJ헬로가, 또 SK와 티브로드의 인수 합병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이 이루어지면서, 케이블TV와 IPTV의 합병을 통한 통신3사 주도의 시장 재편이 가시화되고 있다.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지각 변동은 국내로만 한정된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디즈니와 21세기폭스, 그리고 CBS-비아콤의 인수합병 등 거대 미디어 플레이어들의 합종연횡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업계의 움직임은 콘텐츠-미디어 산업의 가치사슬이 근본에서부터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영상 콘텐츠 산업의 디지털 전환의 폭이 확대되면서, 기존에 안정되게 유지되던 가치사슬의 균형이 깨어지고, 새로운 균형을 향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글은 최근 나타나고 있는 콘텐츠-미디어 업계의 인수합병 소식들을 검토하면서, 이들이 드러내는 향후 산업 생태계 재편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최근의 인수합병 사례들을 플랫폼 생태계 변화와 콘텐츠 생태계 변화의 2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방송-영상 산업 생태계의 ‘디지털화’가 가치사슬 단계별로 가져오는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플랫폼 생태계의 변화: 통신 주도의 유료방송 시장 재편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통신사 주도의 유료방송 시장의 재편이다. 이는 3년 전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 시도에서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이미 그 방향성이 예고된 바 있다. 이번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승인한 인수합병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유료방송 시장은 KT와 스카이라이프 계열이 31.1%, LG유플러스와 CJ헬로가 24.5%,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가 23.9%의 점유율을 갖는 구조로 재편된다[2]. 사실상 통신3사 중심으로 유료방송 시장이 재편되는 것이다. 


IPTV 중심의 유료방송 시장 재편은 최근 OTT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보면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느꺼질 수 있다. 이미 시장의 재편이 규제로 인래 3년이나 지체된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기억해야 할 것은, IPTV 전성기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빠르게 부수고 다시 짓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생태계 내부의 구성원들을 고려한다면, 장기적 로드맵을 토대로 레거시를 충분히 성숙시키며 다음 경로를 열어주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될수 있다. 


다만, 이 전략이 가능하려면 해당 경쟁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종 기업의 침투와 해외 기업의 침투라는 이중의 압박 하에서는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 OTT 주도의 플랫폼 전쟁은 유료방송 시장 재편의 시계를 앞당겼을 뿐 아니라, 그 종결도 함께 예고하고 있다. 즉 앞으로의 유료방송 시장 재편은 단순히 3사 과점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통신이라는 인프라 위에서 영상 콘텐츠 서비스가 어떠한 방식으로 재편될 것인지, 그 과정에서 기존의 통신기업들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과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통신사 중심의 방송 시장 재편은 사실상 디지털 케이블과 IPTV의 본질적 차이가 사라진 상황에서 미디어 기업의 경쟁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콘텐츠 유통 플랫폼의 인프라에서의 차별점은 점차 약화되고, 기본 방송 서비스 윗단에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서비스 중심으로의 재편으로 IPTV에서 일종의 소프트웨어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홈쇼핑과 같은 특수한 수익 구조의 문제를 제외하면, 사실상 IPTV는 인터넷 기반의 OTT를 셋톱박스와 결합 판매하는 구조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이러한 전략을 통해 아직 스마트TV 보급율이 포화에 도달하지 못한 기간 동안 IPTV는 TV스크린 앞의 관문의 지위, 즉 퍼스트 리모컨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는 결국 이용자의 락인을 위한 구조들이 OTT 서비스를 중심으로 깨어져가는 상황에서 기존의 통신사 중심의 안정적 과점 구조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다. 이때 전략은 각자의 경쟁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통신사 입장에선 5G 시대의 인프라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콘텐츠에 한정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오히려 가정과 개인의 연결의 중심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에서 콘텐츠 플랫폼의 경쟁력을 어느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보다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이미 넷플릭스 시대에 대한 대응의 양상은 통신 3사가 다르게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OTT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통해 콘텐츠 영역으로 한발 더 들어가려는 시도도 있지만, 그 역할을 넷플릭스와 같은 외부 서비스에 맡기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략의 다변화에서 포착할 수 있는 것은, 미디어-콘텐츠 산업에서 통신사가 가치사슬 전반에서 갖는 위치와 영향력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한편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콘텐츠IP 중심의 산업 재편과 연결해서 볼 때 보다 분명해진다.


콘텐츠IP 중심의 가치 사슬 재편과 OTT의 변화


콘텐츠 부문에서 지난 수년간 가장 거침없는 행보를 보인 곳은 바로 카카오다. 2016년 1월 로엔 엔터테인먼트 인수를 통해 설립한 카카오M은 2017년 숏폼 영상을 서비스하는 크리스피스튜디오를 설립하고 같은 해 드라마 제작사 메가몬스터를 인수하며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서의 변화를 예고했다. 2019년에는 그 범위를 영화와 매니지먼트로 확장했다[3]. BH엔터테인먼트, 제이와이드컴퍼니, 숲엔터테인먼트(이상 1월), 어썸이엔티(8월) 등의 매니지먼트 회사 인수하는 한편, 같은 해 9월에는 영화제작사 영화사월광과 사아이픽쳐스의 지분을 각각 41%와 81%를 인수했다. 2019년 1월부터는 김성수 CJ ENM 전 대표를 영입하여 영상 콘텐츠 분야에서의 본격적인 행보를 예고했다.


이러한 카카오의 행보와 비교할 때 네이버의 선택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네이버는 지난 8월 영상 제작 전문 자회사 ‘스튜디오N’을 세우고 권미경 전 CJ E&M(현 CJ ENM) 영화사업부문 한국영화사업본부장을 대표로 영입했다[4]. 큰 틀에서의 방향성은 두 회사가 동일하다. 웹툰과 웹소설 플랫폼을 통해 확보한 자사의 우수한 콘텐츠IP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영상화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변화의 중심에 콘텐츠IP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영화-방송 영상의 경계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모두 방송 영상(드라마)는 물론 영화로의 확장을 고려한 기업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과거에 소비 공간의 차원에서 구분되던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는 디지털 유통과 소비가 활발해지면서 흐려진지 오래다. 한국 영화 시장에서 IPTV는 이미 중요한 후속 시장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넷플릭스에서는 영화와 규모면에서 뒤지지 않는 대작 드라마들을 시청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극장에 가는 이유와 영화를 보는 이유는 점차 분리되고 있다. 극장에 가야 할 명확한 이유가 있는 작품들을 제외한 영상들은 TV나 다른 스크린 들로 그 소비가 이동하고 있다. 유료 관객을 2-3주의 짧은 개봉 기간 안에 오프라인의 극장으로 모으는 일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일정 규모 이상의 팬덤을 가진 콘텐츠IP의 중요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 제작도 점차 콘텐츠IP를 확보하고 있는 기업 주도의 생태계로 편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디어 산업에서 디지털 혁신의 확산이 보다 광범위하게 나타나면서 장르별로 구분되어 있던 콘텐츠 수용자 집단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도 특기할만한 점이다. 기존에는 영화, 드라마, 만화와 같이 장르에 따라 분명한 수용자 집단이 형성되어 있었고, 각각의 장르의 법칙과 코드가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만화, 드라마, 영화와 같은 콘텐츠 소비가 점차 단일한 스크린에서 끊김없이(seamless) 이어지고 있다. 하나의 IP로 제작된 다양한 콘텐츠를 하나의 미디어로 연속적으로 같은 집단이 소비하는 것이다. 이때 콘텐츠 수용 집단을 구분하는 기준은 더 이상 미디어가 아니라 콘텐츠IP가 된다. 


콘텐츠IP의 성장은 콘텐츠 발견성(discoverability)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콘텐츠는 양적으로 크게 늘어났지만, 콘텐츠로 사람들을 일정하게 모아 줄 수 있는 미디어의 권력은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 이용자의 자발적인 선택이 점점 더 중요해진 상황에서, 이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일정규모의 팬덤을 가진 콘텐츠IP의 중요성은 점차 높아지게 된다. 콘텐츠IP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네이버, 카카오 등 콘텐츠IP 기반을 가진 기업들에게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IP를 중심으로 구성된 ‘취향 공동체’, 즉 IP팬덤이 새로운 미디어 수용 집단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때 미디어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최근 OTT 산업의 변화 양상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 OTT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이들을 살펴보면 콘텐츠의 ‘색깔’을 가진 HBO, 디즈니와 같은 기업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웨이브는 지상파 방송국의 컬러를, 티빙은 스튜디오드래곤으로 대표되는 CJ ENM의 컬러를 갖는다. 이들이 가진 브랜드는 이들이 생산하거나 수급하는 콘텐츠의 레퍼토리를 통해 구성된다. 넷플릭스도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을 취하면서 ‘모든 영상을 월정액으로 볼 수 있는 올인올(all-in-all) 플랫폼’에서 ‘넷플릭스가 큐레이션하고 제작한 취향의 작품을 보는 채널’로서의 브랜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오리지널 전략의 확산으로 다수의 OTT의 구독의 필요성이 높아진 상황은 이러한 취향-브랜드로서의 OTT 서비스 간 차별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1) 콘텐츠IP 중심의 팬덤 집단의 구성, 그리고 2) 취향의 레퍼토리로서 OTT의 채널화는 역설적으로 3) OTT 서비스를 큐레이션 하는 플랫폼-미디어의 수요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매번 변화하는 오리지널 작품에 따라 다수의 OTT 구독하는 일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며, 복수의 유료 구독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집단의 외부에 머무르는 수용층도 상당부분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불편을 해결하고, OTT 중심의 시장 재편에서 소외된 수용자를 포용하는 것에서 비즈니스의 기회를 찾으려는 노력이 나타나는 일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취향에 맞는 OTT를 적절히 큐레이션하며 광고 등의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구독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앞으로 점점 더 높아질 수 있다. 


생태계 변화 속 새로운 자리찾기: 새로운 균형을 향하여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미래의 콘텐츠 가치 사슬 변화의 방향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가정에서의 방송-영상 시청의 플랫폼은 통신사 기반의 IPTV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2) 가정과 개인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OTT 서비스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콘텐츠-레퍼토리의 경험을 형성하고 있다. 3) 콘텐츠 선택의 주도권이 시청자에게 이동하면서 그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IP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콘텐츠의 차이는 채널을 통해 가시화되고, 플랫폼은 점차 비가시화 되며 배후의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 


콘텐츠(IP) – 채널(OTT) – 플랫폼(셋톱+기기)으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힘의 균형이 미디어에서 콘텐츠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은 향후 기업들의 선택에 있어서 일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넷플릭스는 콘텐츠와 채널이 결합된 형태이며, 애플TV+를 제공하는 애플은 채널과 플랫폼의 연결을 강화하면서 콘텐츠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 국내 기업으로 살펴보면, SKT는 플랫폼의 힘을 기반으로 채널로 영향력을 확장하면서, 콘텐츠 단계에서는 지상파 방송국과 카카오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CJ는 JTBC와 협력하여 콘텐츠 단계의 영향력을 강화하며 이를 채널로 연계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기업간 합종연횡은 결국 새로운 생태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생태계 재편의 방향은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자리를 어떤 전략으로 차지할 수 있을지의 그림은 아직 충분히 그려지지 않았다. 인수합병과 합종연횡이 일종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실제 채색을 하며 그림을 완성시켜 나가는 실험의 과정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1] 김인경(2019.9.17). 국내 OTT ‘들썩’…CJ ENM-JTBC 합작법인 만든다. 블로터

[2] 정해용(2019.11.10). 조성욱號 공정위, SKB-티브로드·LG유플-CJ헬로 합병 승인, 조선일보.

[3] 김인구(2019.10.2). 거침없는 인수 합병 카카오엠 ‘넌 누구냐’, 문화일보

[4] 네이버 카카오, 한국 콘텐츠 산업의 ‘메기’ 될까: 자체영상 콘텐츠로 국내외 동시 공략..기존 업계 촉각, 이코노미조선 2019년 2월 18일, 2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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