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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Sep 11. 2020

구독의 시대, 레퍼토리의 재구성과 뉴스의 위치

사람들은 여전히 뉴스를 원한다 #신문과방송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하는 '신문과 방송' 2020년 9월호(no.597)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해당 원문은 다음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구독'을 하는 영역들을 생각해보자.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고, 전자책을 읽고, 강연을 보는 등 월정액 구독 모델이 적용되지 않은 콘텐츠 분야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업무를 위한 클라우드 스토리지나 쇼핑의 편의를 돕는 멤버십 서비스, 면도기, 샐러드, 꽃과 같은 일상 생활에 필요한 재화의 구독까지 확대하면 소위 ‘구독 경제’가 침투한 범위는 일상의 전 영역에 해당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뉴스는 어떨까. 뉴스는 구독 경제의 맏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종이에 인쇄된 뉴스는 구독료를 중요한 수익의 기반으로 삼아 근대 미디어의 주류로 성장해왔다. 인쇄술의 발전과 독자적인 유통망의 구축을 통해 다른 콘텐츠가 흉내 내기 어려운 구독경제의 물적 토대를 오랫동안 구축해왔다. 비록 그 수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신문이란 형태에 구독료를 지불하는 유료 가입자의 규모는 약 7백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지금의 구독 경제의 논의에서 뉴스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듯 하다. 더 고민스러운 부분은 너무나 다양한 콘텐츠 비즈니스가 '구독'을 비즈니스 모델로 내세우면서 ‘구독 피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개인이 콘텐츠 소비에 쓸 수 있는 시간과 비용에는 제약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제한된 개인의 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도태된 콘텐츠가 새로운 구독 시대의 승자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핵심은 ‘디지털’이라고 하는 변화의 속에서 뉴스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오프라인에서 확보했던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경쟁력이 디지털 영역으로 온전히 전이되지 않는다. 윤전기라는 대량의 텍스트 생산 기반과 전국 단위의 신문 배달 체계라는 물적 토대는 디지털 콘텐츠 구독 서비스 경쟁력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뉴스의 집합체로서 ‘신문’이란 ‘묶음’도 디지털 환경에서 해체되고 재조립된다. 스트레이트-기획-사설 등의 유형과 정치-사회-경제 같은 영역에 따른 뉴스 묶음을 주기성을 가지고 공급하던 미디어인 ‘신문’은 보다 세밀한 취향으로 분화되어 자신이 원하는 뉴스를 주문형으로 선택해서 보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묶음’으로의 해체와 재조립을 요구받고 있다.


새로운 뉴스의 ‘묶음(bunling)’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과연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에서 이러한 ‘묶음’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미디어 연구자들은 과거의 대중적인 미디어 및 콘텐츠의 이용을 벗어나 다양한 미디어와 콘텐츠로 분화되는 이용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레퍼토리’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이때 주목해야 할 점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발전은 기존에 미디어 단위로 구성되어 있던 이용자 집단을 동일한 디지털 환경 하에서 콘텐츠에 대한 선호의 차이로 분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모든 콘텐츠를 단일한(혹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스크린을 통해 소비하는 환경에서, 뉴스는 콘텐츠 구독의 ‘레퍼토리’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글은 새롭게 부상하는 콘텐츠 구독 서비스 속에서 뉴스의 위치를 살펴보고, 뉴스 서비스가 새롭게 구성되는 콘텐츠 구독 레퍼토리의 일부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콘텐츠 구독 서비스의 분화와 뉴스의 위치


콘텐츠가 유형과 관계없이 디지털을 통한 생산-소비 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기존의 미디어 단위로 규정되어 있던 콘텐츠의 묶음이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특히 구독서비스는 이러한 묶음의 단위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를 통해 월 단위의 비용의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라는 전략적 선택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런 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에서 '뉴스'를 다루는 방식일 것이다. 뉴스는 디지털 환경에서 어떻게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는 구독서비스들은 뉴스를 어떤 가치 창출의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최근 콘텐츠 구독 서비스의 유형은 크게 나누어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지식 콘텐츠 분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는 OTT로 대표되는 영상 콘텐츠 구독 서비스가 주류를 이룬다.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등 다수의 영상 구독 서비스가 기존의 유료방송 산업의 구독자 기반을 흔들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지식 콘텐츠 분야가 있다. 본래 출판에서 출발한 전자책 구독 서비스(리디셀렉트, 밀리의 서재 등)는 물론 신문과 유사성을 갖는 구독형 콘텐츠 서비스(퍼블리, 북저널리즘, 폴인 등)가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가는 가운데, 강연 중심의 구독 서비스(윌라 등) 들이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


이때 주목할 부분은 지식 콘텐츠 분야다. 기존에는 개별 미디어의 단위로 여겨졌던 단행본, 잡지, 신문, 강의 등이 하나의 구독의 단위로 활발히 재구성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서비스에서 ‘뉴스’라는 콘텐츠 형식이 구독의 가치를 높이는 하나의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독형 지식 콘텐츠 서비스 리디셀렉트는 기존에 전자책을 중심으로 월정액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아티클’이란 형태로 다수의 뉴스 형태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디’는 유료 월정액 서비스를 제공하던 IT 전문 미디어 스타트업미디어 ‘아웃스탠딩’을 인수한 바 있으며, 해당 서비스를 리디 셀렉트 ‘아티클’에서 구독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단행본 단위의 심층 정보 서비스를 표방한 북저널리즘 역시 ‘뉴스’ 서비스를 추가하며 뉴스 전용 구독상품을 출시한 바 있다.


이들은 왜 ‘뉴스’라는 형식의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을까? 콘텐츠 구독 서비스에서 이용자 이탈을 막기 위해선, 구독 기간 중 지불한 금액을 상회하는 만족감을 이용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문제는 기존의 전자책, 혹은 전문 기사 형태의 콘텐츠가 업데이트의 주기나 이용 시간 등의 측면에서 약점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개별 출판사의 신간 수급에 의존해야 하는 공급 측면의 리스크를 해소하는 동시에, 장문의 글을 읽기 어려운 독자에게 단기간에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최신의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콘텐츠 형식으로서 ‘뉴스’를 선택했다. 초기 이용자 확보 단계에는 단행본 수준의 깊이 있는 콘텐츠의 묶음을 바탕으로 구독의 가치를 역설하고, 실제 월 단위 구독을 지속하게 하는 가치의 지속을 위한 전략으로 뉴스 큐레이션이나 외신 번역 서비스 등을 활용하고 있다.


즉, 이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형의 프리미엄 콘텐츠를 아카이브에 확보하고 이들을 지속적으로 큐레이션하는 한편, 구독 서비스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전략으로서 주기성을 갖는 최신형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 영상 기반의 서비스 역시 팬덤 기반의 비즈니스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뉴스'라는 형식을 활용하여 지속적인 접속을 만들어내며, 그렇게 확보한 팬덤-구독자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콘텐츠 아카이브를 지속적으로 구축해나간다.


이러한 사례들은 뉴스라는 형식이 구독 서비스에서 소외되고 있기 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그 묶음의 방식은 달라지고 있다. 기존 언론사의 뉴스 서비스도 사실 다양한 뉴스 콘텐츠 단위의 묶음이란 점을 생각해본다면, 결국 어떤 묶음의 형태가 월 단위의 구독을 모으기에 충분히 매력적인가의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이용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새로운 뉴스의 '번들링' 전략이 무엇인지, 이러한 번들링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의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콘텐츠 레퍼토리로서 '뉴스'의 재구성


그렇다면, 다시 '레퍼토리'의 문제로 돌아와보자. 구독 서비스의 확대 속에서 뉴스라는 콘텐츠는 '레퍼토리'로서의 입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뉴스가 구독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들어갈 수 있으려면, '뉴스 중심의 레퍼토리'를 구성하는 이들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레퍼토리 논의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가정은, 사람들은 제한된 시간과 인지라는 자원을 활용하여, 각자의 취향과 문화자본, 습관의 한계 안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며, 이들은 일종의 군집으로 묶일 수 있는 유형을 갖는다는 것이다. 과거의 레퍼토리가 일정한 '구독'의 범위 '내에서' 사람들의 행위 유형을 나누어 본 것이라면, 지금은 그러한 번들링이 해체된 상황에서 새로운 번들을 구성하는 힘으로서 이들의 '묶음'을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의 신문 구독으로 돌아가 보자. 신문 구독이란 형태가 작동하던 시점에서도, 사람들은 신문 내에서 영역별 분화를 경험했다. 신문은 정보의 주기와 심층성, 영역과 표현양식(텍스트, 사진)의 조합을 통해 사람들에게 복합적인 가치를 전달했던 구독의 형태였다. 번들링의 단위는 '신문'이란 매체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존의 번들링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현재, '뉴스 레퍼토리'란 이미 단일하지 않다. 지금의 번들링은 '매체'가 중심이 되지 않고, 취향과 관심이 중심이 된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형성한다. 미디어 단위로 수용자를 모아서 광고주에게 판매하던 전통적인 광고 모델은 약화되고 있고, 개별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자체가 IP가 되고 팬덤을 만들어내며 이를 기반으로 광고를 모으고 있는 것은 상징적인 변화다. 콘텐츠 레퍼토리 자체가 사람들을 구분하는 단위가 되는 것이다.


스티븐슨은 '비욘드 뉴스'에서 저널리즘을 "일부 사람들을 위해 뉴스를 수집, 제시, 해석 혹은 논평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다양한 정보를 신문이란 형태로 묶어서 제공하며 뉴스 수용자를 구독의 형태로 묶어냈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 뉴스는 신문을 떠나 다른 정보의 묶음의 일부로 포함되고 있다. 스티븐슨의 말에서 주목할 단어는 오히려 '일부 사람'이란 표현일지 모른다. 뉴스는 기존에도 구독자라는 '일부 사람'을 묶어내는 단위였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다양한 뉴스(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 보다 복잡한 독자들의 집단을 이해하고, 이들에게서 뉴스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작업일 것이다. 모든 콘텐츠 레퍼토리에 뉴스가 포함되는 버티컬한 수용자 단위를 상상하고, 이 수용자들이 구성하는 정보의 레퍼토리를 파악하고, 이러한 단위를 중심으로 다시 다양한 정보-형태의 구성을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구독 시대. 뉴스의 변화를 기대하며


과거의 언론기업들은 당대로선 유일무이한 콘텐츠 정기 생산-배송의 시스템을 바탕으로, 개별 언론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OO일보 보는 사람'이라는 일종의 정체성의 단위를 만들어냈다. 지금의 표현으로는 ‘팬덤’을 구축한 것이다. 지금 새롭게 부상하는 콘텐츠 구독 서비스들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보의 ‘묶음’을 통해 이러한 ‘팬덤’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다양한 콘텐츠 유형을 결합하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뉴스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색의 결과로서 시대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언제나 새로운 구독-팬덤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였다.


뉴스는 시대의 필요에 맞는 정보의 묶음을 구성하며, 초기 구독 경제의 부흥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콘텐츠의 형식이었다. 지금도, 뉴스라는 형식은 콘텐츠 구독 서비스 가치 창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수용자가 원하는 묶음의 방식이 디지털 환경에서 변화하고 있고, 뉴스의 위치와 역할이 그 과정에서 조정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뉴스가 구독 레퍼토리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인식은, 오직 뉴스를 '대중'를 대상으로 한 단순 정보 제공으로 바라볼 때만 가능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정확한 정보를 얻고, 올바른 판단을 하며, 지적으로 더 성장하길 원한다. 그리고 뉴스는 여전히, 이들을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콘텐츠다. 새로운 구독의 시대가 만들어낼 뉴스의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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