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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Jul 04. 2019

국내 OTT사업자의 합종연횡, 어떻게 볼 것인가

방송영상 미디어 생태계의 총체적 개편을 상상하기

*이 글은 2019년 7월 2일, 한국언론학회 기획세미나 '글로벌 미디어 환경 변화와 국내 OTT 산업 생태계 활성화 방안'에서 발표한 '국내 OTT사업자의 합종연횡과 OTT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언'의 자료와 함께, 관련하여 작성한 원고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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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를 둘러싼 논의가 긴박해지고 있다. 특히 규제 논의가 빠르다. 문제는 OTT를 규제의 틀 안에 넣어야 한다는 입장만 있을 뿐, 현재 한국의 미디어 생태계의 성격에 대한 맥락적 이해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글은 한국적 맥락에서 OTT 논의를 재검토하고, 현재 나타나는 OTT중심의 미디어 생태계 변화를 이해하는 것을 통해 국내 OTT 산업의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의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OTT라는 용어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OTT라는 용어는 현재의 맥락에서 사실상 '넷플릭스'를 의미하는 표현에 가깝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이 용어가 포착하고자 하는 현실이 결국 무엇이었나를 뜯어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OTT 서비스란 무엇인가? 미국의 맥락에서는 실시간 중심의 고가의 유료 방송 서비스가 SVOD 기반의 저가의 유료 영상 서비스로 대체된 것이다. 셋톱을 넘어서서 스크린으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서비스, 즉 스크린의 ‘커넥티비티' 강화 과정에서 중간 매개로서의 셋톱의 역할을 줄여가면서, 그 관문을 지키고 있는 서비스의 영향력을 축소한 것이 넷플릭스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가 해결해준 것은 가격을 제외한다면, 빨라진 연결 속도를 기반으로 VOD를 제공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처음에는 영화 시장을 대체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대체하고 있는 것은 TV 스크린을 통한 시간의 점유, 즉 방송의 대체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모바일과 PC로의 유연한 연결을 핵심으로 했다. 이런 ‘N-스크린' 서비스라면 한국에서도 ‘호핀'이 이미 일찍이 시도한 바 있다. 물론 여러 규제와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말이다.

결국 OTT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현상'은 인터넷을 통한 동영상 서비스 시청을 내용으로 한 커넥티드 서비스, TV, PC, 태블릿, 모바일 등 다양한 멀티스크린, 주문형 비디오(VOD) 중심 서비스를 통한 비실시간 시청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에서 넷플릭스가 이룩한 변화들은 한국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파편화된 형태로 이루어졌다. 다만, ‘N스크린'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은 중요한 문제로 지적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N스크린 서비스는 반쪽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TV 스크린으로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활발해진 커넥티트 서비스인 IPTV 셋톱에 의해 막혔기 때문이다. TV로의 직접 서비스는 꽤 오랜 기간 활성화되지 못했고, IPTV를 통한 영향력 확대를 노렸던 통신사들과, 자신의 콘텐츠 가치를 극대화하고 싶었던 방송사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온전한 N스크린의 구성은 계속 지연되었다.


왜 한국에선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미국에서 넷플릭스가 판을 바꾸어가는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은 모바일과 TV 스크린의 분할 전략에 기초하여, 멀티스크린 현상을 제외한 나머지 OTT의 역할을 사실상 IPTV가 담당해왔다는 사실 말이다.


시간을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한국 유료방송 시장에서 IPTV는 새롭게 등장한 서비스였다. 지지부진했던 방송통신 융합 이슈를 겨우 거친 후, IPTV법 제정을 통해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유료방송의 인터넷 기반으로의 이동이 지연된 상황이었다. 그 뒤로 10년 만에, 다시 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 10년간 벌어진 일은 무엇이었나? IPTV가 본격적으로 힘을 받기 시작한 시기는 스마트폰, 그리고 스마트 TV의 시작과 겹친다. N스크린 서비스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 틀에서 호핀과 티빙이 출시되었다. 이때 티빙이 스마트 TV로 이미 진출했었다. 사실상 모바일-PC-TV를 연결하는 N스크린 VOD 서비스, 즉 'OTT'를 구현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큰 힘을 가졌던 지상파 콘텐츠가 티빙에서 빠지면서 그 길은 금세 막혔다. 크롬캐스트와 같이 TV 스크린에 올라타기 위한 기기들로의 전송도 실시간 서비스 단에서 막히기 시작했다. 대신 IPTV는 VOD 시장과 삼께 성장하기 시작했다. 대신 모바일 전용 영상 서비스로 우회하며, 모바일 스크린과 TV 스크린의 분할이 시작되었다.


안정적이었던 모바일-TV의 분리는, 유플러스가 셋톱에 넷플릭스를 올리면서 다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OTT 논의가 본격화된 것이 이 균열 이후라는 점은 그래서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IPTV의 성장을 되돌아보자. IPTV는 지난 10여 년 동안, 주로 케이블 방송을 대체하며 성장해왔다.

중요한 건, IPTV의 성장 시기가 TV 스크린에서의 VOD 시청의 확대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VOD 시장의 성장에서 주목할 부분은, 30대와 40대, 즉 TV 스크린 앞에 앉는 관습이 가장 강력하고, 지불능력이 있는 세대에게서 VOD 중심의 시청 관습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VOD 시장의 수혜는 다름 아닌 IPTV가 누렸다. TV 스크린에서 구독 방식의 VOD 서비스는 방송사 묶음 별 ‘월정액' 서비스를 통해 활성화되었다. IPTV의 VOD 판매의 성장은 2010년대 이후 활성화되었는데, 방송-통신 사들은 이를 월정액 서비스 구독 확대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이로 인해 IPTV의 월정액 서비스와 TV 스크린을 제외한 모바일 미디어 기반의 N스크린 월정액 서비스는 분리되어 판매되었다. 문제는 기존의 ‘방송 영상 콘텐츠'의 주된 시청 층은 여전히 TV 스크린 앞에 앉고 있었다는 점이다. 수익화의 관점에서 별도의 서비스를 위해 공을 들이는 것에 비해, IPTV 월정액을 판매하는 것은 훨씬 수월하고 편안했다. 반면 별도의 OTT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은 들이는 노력에 비해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변화,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변화에서 한국은 언제나 늦은 것의 문제라기보다, 너무 빨라서의 문제가 더 많았다. 미리 변화한 덕에 이후에 발전된 개념으로의 전환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OTT 서비스의 성장보다 빨랐던 건, IPTV의 성장이었다. 한국에서 IPTV는 OTT 서비스가 했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변화들을 주도적으로 담당해왔다. VOD 서비스의 성장의 가장 큰 수혜를 IPTV가 누렸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반면, 호핀이라는 N스크린 서비스의 좌절은 IPTV가 만들어낸 장벽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수익화할 수 있는 TV 스크린에 셋톱이라는 장벽을 치고, 모바일 영역은 버려두기를 선택했다. 이후에도 모바일 서비스는 사실상 광고 기반의 무료 서비스 영역으로 구분해두었다. 여기까지가 2017년까지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 기간의 차이만큼이, 한국에서 OTT 개념의 뒤틀림의 기간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약 5년의 시간 동안, 한국에서 IPTV는 OTT가 했어야 할 변화를 TV 스크린 영역으로 제한하며 성취했다. 다만 이들이 모바일로 진출하려던 시도는 여러 이유에서 실패했다.

모바일 미디어 주력 세대와 TV 스크린 주력 세대가 세대적으로 분리되면서, 돈이 되는 TV 스크린 시장과 돈이 안 되는 모바일 스크린 시장으로의 양분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변화는 넷플릭스가 셋톱에 '올라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났다. 오버 더 탑이 아닌, ‘온 더 탑'을 통해, TV스크린으로의 본격적인 진출을 이룬 것이다. 진정한 N스크린 서비스가 드디어 셋톱의 관문을 넘으면서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비로소 현실화되었다.

TV와 모바일은 사실상 스크린의 크기일 뿐, 여기에 공급되는 서비스의 구획이 강하게 존재해야 할 이유는 이미 기술적으로 희미해졌다. 다만 사업자의 전략적 목표 하에 그 문이 인위적으로 막혀 있었을 뿐이다. 넷플릭스의 성과는 이러한 인위적 장벽의 유효기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55인치 이상의 프리미엄 TV 스크린의 판매 역시 중요한 티핑 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 넷플릭스 서비스에 익숙한 세대는 드디어 코드 컷팅을 실현하는 상황들을 마주하고 있다. 티빙이 삼성 TV에 다시 앱을 출시한 2019년의 변화는 드디어 영상 사업자들이 ‘셋톱'이라는 장벽을 넘어설 계기가 한국에 마련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리모컨' 전쟁은 한국에서 이제야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디즈니 플러스의 출범으로 야기된 '플랫폼 전쟁'이 결국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냐에 대한 해석이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으며, 디즈니 플러스는 대부분 자사의 콘텐츠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가득 채울 전망이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점차 외부의 콘텐츠를 수급하여 제공하는 ‘플랫폼’이라기보다,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한 브랜딩에 집중하는 또 하나의 거대 채널 사업자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가 예고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결국 OTT 서비스의 '채널화'로 요약할 수 있다. OTT 서비스는 앱의 형태로 서비스되는 구독형 VOD 묶음을 중심으로 한 채널의 재구성을 일으키고 있다. 즉 사람들이 푹, 티빙,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의 서비스를 동시에 구독하면서, 이를 과거에 채널을 재핑(zapping)하던 방식으로 이용하는 양상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스크린이라는 최종적인 소비자와의 접점을 제외하면, 점차 OS 혹은 셋톱과 같은 중간 플랫폼을 중심으로 기존의 채널과 서비스가 재구성되고 있다. 과거에는 방송국의 채널의 형태로 존재하던 콘텐츠 레퍼토리가 개별 서비스의 아카이브 형태로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즉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는 결과적으로 과거의 방송사 ‘채널’이 담당하던 레퍼토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5G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스크린 중심의 콘텐츠 경험의 통합을 보다 과감한 방식으로 가능하게 한다. 과거에 영상과 게임의 플랫폼이 콘솔과 PC, 모바일의 형태로 구분되었다면, 구글 스테디아와 같은 형태의 새로운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이러한 구분이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는 사용자의 ‘시간’ 점유를 목표로 하는 콘텐츠 간의 장르에 따른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제작-유통 생태계 전반의 재구성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재편 과정에서 글로벌 대형 사업자들의 서비스와 국내 서비스 간의 경쟁이 기존의 규제를 넘어서 보다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린 무엇이 주목해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넷플릭스의 ‘온 더 탑' 이후 기존의 ‘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제 그 문지기로서 지위를 누리던 3대 사업자들은 서로 다른 전략들을 취하고 있다. 유플러스는 스스로 그 문을 허물며 기존 질서를 교란시킨 성과를 누리고 싶어 한다. 둑을 무너뜨린 대신, 여전히 자신의 플랫폼 위에서 서비스들을 운영하게 함으로써 리모컨의 우선순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업자가 공통적으로 취하려고 하는 전략일 것이다. 그러면, 넷플릭스에 대응할만한 진정한 ‘N스크린'에 해당되는 서비스들을 ‘온 더 탑'하게 하는 전략들이 나타날 수 있다. KT가 왓챠 플레이와 협력하는 것도 이러한 그림에서 보아야 한다.

다만, 이러한 리모컨 쟁탈전이 언제까지 유효할까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한국에선 워낙 IPTV의 서비스가 저렴하기 때문에, 통신사와의 결합 상품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진정한 N스크린을 기대하는 사용자의 수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존 ‘월정액 VOD’ 상품 판매의 감소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콘텐츠 공급자의 대응이다. 넷플릭스가 열어준 또 하나의 변화는, 영상 서비스의 대중화, 콘텐츠 사업자의 플랫폼 사업자로의 전환 가능성의 확대라는 것이다. 즉 이러한 영상 서비스들은 좀 더 다양하게 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콘텐츠 사업자는, 수용자와의 직접 연결을 고려한 대응들을 좀 더 잘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이후의 경쟁에서 밀려날 위기가 있다. 다만, 이러한 서비스의 ‘재원 구조'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는 문제로 남는다. VOD 월정액이 지금처럼 저렴할 수 있는 건, 실시간 방송과 광고, 재전송이라는 레짐이 여전히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깨어질 때도 지금과 같은 비용 구조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따라서 이러한 거대한 전환을 고려한 로드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결국 OTT 경쟁력에 대한 고민은 넷플릭스의 흥행으로 드러난, 홈스크린 연결성 중심의 시장 재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다. 푹+수수와 티빙의 공통점은, 홈 스크린과의 연결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콘텐츠 D2C를 고민하는 서비스라는 점이다. 옥수수는 푹과 결합을 하면서 D2C를 가능하게 했다. 티빙은 헬로비전으로부터 ENM으로 옮겨오면서 이러한 D2C 그림을 완성하게 되었다. D2C의 그림을 그리는 사업자들만이, 스스로의 플랫폼 경험과 콘텐츠 경험의 연결을 고민하게 된다. 또한 홈 스크린과의 연결성을 고민해야만, 홈 스크린 재편에 대응할 수 있다.  D2C 중심의 ‘채널' 재편이 이루어진다면, 이에 대응하기 위한 자원과 역량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투자와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오늘날의 ‘증발’ 경제는 기존의 레짐들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고 있다. 방송영상의 경쟁자는 영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TV 스크린을 둘러싼 시간 점유 경쟁의 핵심에는 게임이 점차 그 비중을 높이고 있다. 구글 스테디아를 시작으로 한 게임 스트리밍 시장의 성장은, 장르와 형식을 구분하지 않는 진정한 ‘앱'으로의 전환을 스크린 단위로 가능하게 할 것이다. 방송 서비스는 이러한 거대한 전환 속에서 어떤 위치를 지켜내고, 그 시장의 활력을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다 거대한 합종연횡이 중요하다.

국내 OTT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해당 부분에만 적용되는 새로운 규제를 고민하기에 앞서, 한국 OTT 산업이 거쳐 온 역사적 맥락을 감안해 기존 방송 시장 전반을 어떻게 재조직화할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넷플릭스가 열어준 논의의 장이 자칫 부디 과거의 모바일-TV분할 전략으로 적당히 되돌아가며 안주하는 것이 아닌, 큰 틀에서의 국내 미디어 산업 재구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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