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거주하고 있는 동네가 신도시라서 아이 키우기에 매우 좋다. 인도가 굉장히 넓어서 아이들 킥보드, 자전거 타기에 안전하고 아파트에서 연결되는 공원도 많고, 상가도 근처에 있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가까운 공원이다. 특히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공원 바로 앞이라서 단지를 벗어나면 쉽게 공원에 들어갈 수 있다. 처음 이사 와서 그 점이 제일 좋았다. 첫찌 자전거 유모차 태워서 공원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금요일 남편과 내가 둘 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날 아이와 함께 공원에 갔을 때 잔디에서 잔뜩 뛰어다니던 아이 모습이 사진과 함께 생생하다. 그 때는 미처 몰랐지만 뱃 속에 둘찌가 있었으므로 더 기억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 넓은 잔디에서 뛰어다니며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함께하는 시간이 적은 워킹맘의 미안함과 현실의 고단함이 씻겨져 내려가곤 했다.
이 곳에서 둘찌는 세상을 향한 첫번째 발걸음을 내딛었고, 형이 된 어린 첫찌는 자기보다 어린 둘찌의 손을 잡아주었다. 유모차에 태운 둘찌와 킥보드를 타는 첫찌와 산책을 무한히도 했던 곳이다. 아파트 단지가 굉장히 많은데도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공원 자체가 고독하게 느껴졌지만, 그 곳에서 우리 셋은 씩씩하게 자랐다. 봄이면 꽃 구경하러 여름이면 잠시 쉬어가고 가을이면 다시 단풍 구경 하러 자주 나갔다. 추운 겨울에도 꽁꽁 싸매고 눈 구경하러 다니고 길고 긴 코로나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어느새 유모차를 타던 둘찌가 형아와 같이 킥보드를 타고 온 힘들 다해 씽씽 달리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많이 컸음을 실감하게 된다. 더 이상 나는 아이를 밀고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뒤에서 안절부절 따라다니지 않아도 된다. 어느 덧 아이 둘이 놀 때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는 관찰자 입장이 되어간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 때부터 육아의 참여자에서 관찰자 입장이 되는 순간들이 많아진 것 같다.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이 때만 해도 엉덩이 대고 쉴 수 있는 반가움에 함박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커 감에 나의 역할이 바뀌어가는구나.
아이들은 이제 모두 자전거를 탄다. 킥보드보다 더 많은 시행착오와 연습 후에야 자연스러워지는 자전거 타기를 마스터 하니 부쩍 큰 아이들 같다. 자전거 앞에서 핸들을 끌어주고 뒤에서 의자를 잡아주는 교정 기간이 길 것만 같았는데,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젠 부모의 도움 없이 쌩쌩 빨리도 달린다. 천천히 달려라 아들들아. 이런 변화의 순간, 문득 세월이 훌쩍 지나갔음을 느낀다. 분명 하루하루가 길고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큰 것인지 의문이다. 나의 나이 들음은 인식하지 못하고 아이들만 컸음을 느낀다.
내 체력과 아이들의 체력이 괜찮다면 되도록 자주 공원으로 나간다. 놀이터보다 넓어서 좋고 놀이터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서 좋다. 틀에 매여서 노는 것보다 자유롭게 노는 것을 선호한다. 집에서 TV, 동영상을 보여주면 쉽게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그것보다는 애써 마음 먹고 힘겹게 나와 공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내 체력만 좋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다. 자연에서 땅에서 하늘에서 나무에서 받는 에너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에너지들이 아이가 흔들릴 때 단단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체력이든 마음이든 추억이든. 그래서 나의 육아가 단단해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