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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Nov 16. 2023

3화 - 서울 시내

 

 "어서 내려, 이제 내려야 해" 등산객으로 보이는 아저씨, 아주머니 무리가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주말 아침 학교로 올라오는 버스는 언제나 등산객들로 인산인해의 모습이다. 처음에는 굉장히 놀랐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수현은 마지막 정류장까지 느긋하게 앉아서 창 밖에 내다본다. 수현이 다니고 있는 서한대는 규모부터 압도적으로 크다. 지하철 역에서 탄 마을버스가 학교 정문을 통과해 캠퍼스 전체를 운행한다. 학교 셔틀버스도 별도로 운행한다. 규모도 크지만, 높이가 어마어마하다. 흔히들 높은 언덕에 학교가 있으면, 등산해야 해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여긴 진짜다. 학교 정문은 등산로의 초입으로 연결되어 캠퍼스를 따라 산 정상으로 쭉 이어진다.

 버스를 타고 위로 갈수록 캠퍼스 건물이 줄어든다. 산의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올라간다, 올라간다, 계속 올라가는 버스에서 수현은 이제 곧 내릴 준비를 한다. 수현이 전공하고 있는 학부는 캠퍼스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있다. 농담으로 가장 위험해서 외따로 꼭대기에 두었나 싶은 이야기도 있다. 수현은 버스에서 내려 이윽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높은 전망대를 갈 필요가 없다. 서울 시내가 발아래 쫙 펼쳐져 있다. 높고 낮은 캠퍼스 건물을 지나  도심의 빌딩들이 레고로 만든 미니어처 같이 보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세상이 작아 보인다. 차가운 공기가 코 끝을 스치지만 춥지 않다. 오히려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이다. 수현은 산 정상에 도착이라도 한 것처럼  함성이라도 부르짖고 싶은 기분이었다 '야호!!!  서한대 다닌다. 내서한대를 다니게 될 줄이야, 야호. 이제 내 인생은 지금 내려다보 풍경처럼 쫙 펼쳐진 거야. 이 비단길로만 쭉 걸어 나가면 되는 거야' 환호를 지르고 싶다. 작아진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이래서 사람들이 높은 빌딩의 고층에 살며 세상을 발아래 두고 싶은 욕을 지니는 건가 궁금해진다. 높이 올라갈수록 넓은 세상을 가질 수 있는 일정의 정복욕의 또 다른 표출이라고 최근에 읽은 책에서 본 글귀가 떠오른다. 어쨌든 수현은 수많은 서한대생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자연스러운 척 속으로만 함성을 지르며 옷깃을 여민다.

 

 수현은 어느덧 연구실 생활이 익숙해졌다. 아침 8시 반 전에 출근해서 밤 10시~ 11시에 퇴근하는 생활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되지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어떤 연구실은 출퇴근이 9 to 9 이라는데 수현의 연구실은 어림도 없다. 특히 이제 입학한 수현 같은 석사 1년 차들에게 자유로운 퇴근은 어불성설이다.

 "난, 버스 막차 시간이 11 시인 걸로도 감사해. 12시 전엔 퇴근할 수 있잖아." 처음 1년 차 선배의 말을 들을 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다. 선배가 얼마나 인간적인 말을 한 건지. 도대체 하루 종일 뭐 한다고 밤 12시가 되도록 퇴근을 못 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수현의 일상이 그러했다. 선배는 학교 밖 원룸에 살아 그나마 11시 막차 버스를 타야 한다는 당당한 핑계라도 있었지만, 수현은 캠퍼스 내 기숙사에 살아서 어림도 없었다. 망친 실험을 엎어두고 일찍 퇴근해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 날 가방이라도 챙길라 하면,

 "가려고?" "네, 버스 시간 다 돼서요." "너, 기숙사까지 걸어 내려가면 되잖아." 선배들의 말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은 어리바리한 신입생을 걱정한 따뜻한 선배가 말을 건네온다.

 "편하게 해, 내가 내려갈 때 태워줄게." "네" 속으로 계속 '네'를 반복한다. 휴. 그래서 수현은 떳떳하게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밤 9시 정도의 연구실 술모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7시의 모임은 식사로 가볍게 시작해서 한 밤중 회식까지 이어지는 교수님 호출이니, 적당히 편하게 쉴 수 있는 밤 9시 모임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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