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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Jan 10. 2024

13화 _ 사원증 반납

"언니, 힘내! 잘 가"

동기가 길 건너편에서 수현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한 여름 땡볕, 회사 정문까지 걸어 나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분명 열심히 걷고 있는데 속도가 많이 느려져서인지 걸음이 더디다. 날씨는 또 왜 이리 더운지 생전 안 나던 땀이 얼굴에서 떨어질 때 반대편에서 회사 입사동기 동생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수현도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인다.

오늘은 산부인과 검진이 있어 빨리 퇴근하는 날이다. 수현은 새로 옮긴 팀 업무가 끝날 때쯤 임신을 했다. 출산 예정일까지 2개월 정도 남은 여름이 되니 걷는 게 힘들어졌다. '뒤뚱뒤뚱 오리가 따로 없네.' 수현은 예전에 선배가 임신했을 때 왜 배를 내밀고 팔자로 느릿느릿 걸을까 생각했었는데 지금 자신의 모습이 딱 그렇다. 끝없이 나오는 배 때문에 배를 안 내밀고 싶어도 다리를 오므리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퇴근하러 걸어 나가는 길이 기분은 좋은데 몸은 무거워 영 속도가 안 난다.


오후 네 시만 되면 힘이 드는 수현이다. 하루 종일 앉아 근무하려다 보니 허리와 엉덩이, 아래 부분까지 아프고 전체적으로 피곤하다. 5분만 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데 쉴 곳이 없다. 다른 임산부들은 어떻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동료들이 얼굴이 하얘졌다고 한다. 이 시간만 되면 핏기 하나 없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어서 아이를 낳아서 몸이 홀가분해지면 좋겠는데, 주변 사람들이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 거라고들 말한다. 지금도 얼굴이 하얗게 질리도록 힘든데 그때는 얼마나 힘든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어서 빨리 출산휴직 쓰고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수현이다.


드디어 마지막 출근 날이다. 그동안의 짐들은 며칠 전부터 정리했고, 서류와 다이어리 등은 동료에게 맡겼다. 오늘은 컴퓨터를 반납하고 사원증을 반납하면 된다. 육아휴직 끝나고 복직할 것인데 왜 사원증을 반납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아이 낳으러 간다고 자리 빼는 기분이 뒤숭숭하다.

이제 퇴근하면 당분간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점은 조다.  다들 왜 이렇게 빨리 출산 휴가를 쓰냐고 첫째는 예정일보다 늦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더 출근하다가 휴직은 내도 된다고 한다. 예정일 3주 남고 출산 휴가를 쓰는데 빨리 들어가는 거라고? 100일로 정해진 출산 휴가를 최대한 예정일과 가깝게 쓰면 출산 이후 아이와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얼마나 휴직할 거예요? 출산 휴직 말고 육아 휴직 또 쓸 거예요?"

요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네, 아기 봐줄 사람이 없어서 육아 휴직 쓰려고요."

몇 년 전만 해도 출산 휴직 100일만 쓰고 출근하는 선배맘들도 많았던 것 같다.

"아기는 누가 봐줘요?"

"친정 엄마가 봐주셔요."

하던 대답들이 많았는데 요새는 또 다른 분위기다. 수현은 농사 일로 바쁜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아빠 혼자로는 농사일을 다 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최근 임신한 동료들이 육아 휴직을 많이 써서 다행이다.

'1년 후면 아이는 나와 떨어질 수 있을까? 다시 회사에 복직할 수 있을까? 다시, 출근할 수 있겠지?'

동료들의 배웅을 받고, 사원증을 반납하고 정문을 나가는 길에 수현은 원래 무거운 몸 위에 마음까지 무거워짐을 느낀다.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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