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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Mar 22. 2024

11화_밤샘 근무

대기업 외국계 공장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선배님 같이 나가요. 저도 준비 다 했어요."

수현은 5시 15분 시계를 보며 가방을 부랴부랴 꾸린다. 5시 반 회사 퇴근 셔틀버스를 타러 가기 위해 사무실 전체가 들썩거린다. 회사 정문 게이트에 다다르니 길게 늘어선 퇴근 줄이 보인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나왔을까? 5시 반도 안 됐는데 퇴근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나도 퇴근하지만 안 믿긴다."

"진짜 출퇴근 시간 하나는 최고의 회사 같아요. 공무원도 이렇게 정확하게 퇴근하지는 못할걸요?"

"그래, 그거 하나 믿고 여기 온 거지. 대기업 공무원."

환한 선배의 표정에 기쁨이 절로 묻어난다. 수현은 격하게 공감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최고의 회사다. 월급도 많고, 함께 일하는 사람도 나쁘지 않다. 일이 기복 없이 몰아닥쳐서 그렇지 비수기에는 정시 퇴근도 마음껏 할 수 있는 분위기다. 서울과 먼 지방이라는 것이 흠이지만, 칼퇴근이 가능해서 서울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도 있다.


수현의 직장은 공장이다.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좋아하지만 알고 보면 죄다 공장인 현실이다. 대학 시절, 졸업한 선배들로부터 굴뚝 있는 공장으로는 취업하지 말라고 많이 들었는데 공대를 나와 공장을 피해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다. 그나마 수현이 다니는 곳은 바다 근처의 멀고 먼 공장들은 아니고, 대기업이지만 외국계 회사 투자가 된 곳이라 근무 환경도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먼지는 물론 온도, 습도, 풍향조차 초정밀 하게 관리되는 곳으로 기계를 멈출 수 없어 24시간 사람이 지켜야 공장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8시부터 5시까지 출퇴근 시간이 명확했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요새도 계속 교대 돌아?"

모니터 화면 아래 메신저가 깜빡거려 확인하니 인사과 동기의 반가운 연락이다. 오전 열시의 사내 메신저는 업무 지시 및 보고라 귀찮음 가득이지만 밤 열시의 메신저는 상당히 반갑다.

"라인 일 생겨서 아직 퇴근 못 했지. 오늘 밤샐 것 같네."

"또? 너네 쪽은 왜 그러냐? 다른 애들은 일찍 일찍 퇴근도 잘 하던데. 너 올해도 동기들 중 야근 Top3에 뽑혔어. 작년엔 1등이더니. 힘들겠다."

"그래?... 올해도 순위에 들다니.. 뭐 하는 짓이지? 이제 진짜 일 안 해야지."

"올해 몇 달 안 남았으니 조금 더 해서 고과나 챙겨 받아. 조기 진급하려나?"

"몰라, 임마. 라인 연락 온다. 어서 퇴근해, 너라도."

이슈가 없으면 5시 정시 퇴근이 매우 합당하지만 담당 라인에 일이 생기면 해결할 때까지 퇴근 못하는 곳, 한 밤중이라도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에 수현은 다니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의 법은 예외 결재를 올리면 손쉽게 해결되는 곳이다. 공장 라인을 멈추는 손실이 너무 커서 사람이 멈추지 않게 관리 감독하는 것이라고 입사 초 선배들은 말해 주었다. 대기업 외국계라 좋았는데, 칼퇴근이라 좋았는데 장단이 있다. 연구원으로 취업하지 않고 공장으로 오니 머리를 쓰지 않고 몸을 쓰는 느낌이다. 어느 곳이든 득과 실이 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밤을 새우고 아침이 오니 근무하는 교대 조가 바뀐다. 대학 때 선배들이 굴뚝 있는 공장으로 취업하지 말라고 한 조언을 이제야 실감하는 수현이다.

'굴뚝처럼 회사를 지키고 있네.' 자조 섞인 모습으로 신세 한탄을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두드린다.

"밤새 애썼어, 수현 씨. 그래도 금세 이슈 해결해서 다행이다."

새벽까지 함께 땀 흘린 동료들이 퇴근하면서 잠 깨라고 수현에게 커피를 주고 간다.  

"밥 묵었나? 으이고, 욕봤다. 이거 먹어라."

출근하는 동료들이 아침 도시락을 건네주며 인사를 해 온다. 수현은 더없이 든든한 기분이다.

회사에서 일은 결국은 어떤 방향으로든 해결되게 되어있다.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람 관계가 아닐까? 일이 아무리 쉬워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문제가 많으면 시궁창이고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동료나 상사가 괜찮으면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수현은 줄곧 밤샘 근무가 많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 다행히 잘 지내고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한 번쯤 생각해 본다.

'내가 일을 못 하나? 왜 내 라인에만 자꾸 이슈가 터지지?

  에라이, 어서 팀장님께 보고하고 퇴근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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