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 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하 May 21. 2024

15화 _ 육아에 갇힌 장마에 묶인 그 여름  

장마와 육아

"택배 왔습니다." 띵동

'아이가 있으니 벨을 누르지 말아 주세요.' 공손하게 적힌 문 앞 문구는 소용이 없었다. 벨 소리와 함께 방에서 자고 있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에라.. 그래, 깰 시간이 되긴 했다 애써 스스로 다독여보는 수현은 아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아기 잘 잤어요? 띵동 소리에 깼어요? 택배 아저씨가 와서 그랬어. 엄마가 다음부턴 초인종 벨 소리 안 나게 종이로 가려볼게. 우리 아기 푹 잘 수 있겠다."

아이 자는 동안 고요했던 집이 말소리로 가득해진다. 그래봤자 혼자만의 독백이다. 소리가 울린다.


사실 택배 아저씨는 4일 만에 들어 본 사람의 인기척이었다. 수현 옆에서 24시간 존재를 나타내는 아기가 있긴 했지만 하루 종일 수현 혼자 말하고 있었다.


수현의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벌써 남편이 출장 간 지 4주가 지났고 다음 주가 입국 예정이었다. 4주를 홀로 아기를 봤으니 수현의 육아 피로도는 상당했다. 평일은 일주일에 두 번 마트 문화센터를 가니 시간이 제법 잘 가는 느낌인데 주말이 문제다.

지난 주말은 아기 낮잠 시간에 맞춰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낮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기는 자기는커녕 날이 서서 울기만 했다. 진땀을 흘리며 결국 유모차에서 아기를 꺼내 아기띠를 했다. 습하고 무더운 날 잔뜩 성난 아이를 안고 있자니 양 쪽 모두 땀이 한가득이었다. 여러모로 지쳐가는 순간 수현의 눈에 시원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겨우 잠이 든 아기를 안고 카페에 들어갈까 살펴봤다. 어떤 아빠가 자고 있는 아이를 유모차로 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옆 테이블에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을 하는 모습 옆으로 쇼윈도에 비친 수현이 눈에 들어왔다. 헝클어진 머리로 곯아떨어진 아이를 안고 비어 있는 유모차를 반복적으로 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진다. 날이 더워도 너무 덥다.

  

이번 주는 내내 장마라서 도통 밖에 나갈 수 조차 없다. 수현은 초보 운전이라 장대비가 내리는 날씨에 좀처럼 운전대를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최근 트럭과 접촉 사고가 있어서 더욱 운전이 두려웠다. 버스와 택시는 잘 없는 동네라서 운전하지 않는 한 이동이 어려웠다. 여러모로 장마 비를 뚫고 아기를 데리고 나가기 쉽지 않았다. 사실 수현과 아기가 갈 곳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마 전 후로 5일 동안 수현의 집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도 없고 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그 문을 바라본 채 집에만 있었다. 수현은 진심으로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고 싶었다.

'지하 주차장만이라도 아이와 나가볼까?'

혼자라면 우산을 쓰고 어디든 갈 텐데, 어린 아가와 함께 장대비를 피하며 나갈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비 오는 내내 집에 갇혀 있었다. 짙은 먹구름이 걷히는 오후 바로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탈출했다, 집으로부터.


  비가 멈추고 해님이 나오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질 때가 되니 누워만 있던 아기는 걸어 다닐 정도의 아이가 되었다. 이제 아이와 서로의 느낌이 통하고 행동으로 대화를 하는 수준이 되었다. 더 이상 새벽에 분유를 타지 않아도 되고, 외출할 때마다 분유와 이유식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 쪽쪽이 없이도 낮잠을 잘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한 사람이 함께하는 느낌이다. 학창 시절 12년, 회사 생활 10여 년에 비하면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1년은. 아기가 태어나고 1년만 있으면 육아가 훨씬 수월해진다고 누군가 알려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조금은 더 희망적으로 그 시간을 보냈을까 수현은 생각해 본다.


홀로 겪는 육아의 세계가 암흑 같아서,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서, 영원히 계속되는 줄만 알아서 커 가는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불평만 했다. 수현은 이제야 복직을 앞두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과연 이 어린아이를 두고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복직할 수 있을까? 내 삶을 찾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14화 _ 처음 만난 엄마의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