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의 마감, 고질병이 생겨버렸다
나와 K는 오랫동안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 주말에 쉬고 월요일에 출근이나 등교를 하는 이들이라면 대다수 가지고 있을 법한 고질병, 바로 월요병(月曜病)이다. 그로 인해 일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잠에 들지 못한다. 구태여 피곤하더라도 오전에 일어나려 애쓰고, 따듯한 물로 목욕을 하거나, 일찍이 누워 숙면을 위한 요가명상도 따라 해 본다. 허나 이러한 노력마저 무색한 때가 있다. 바로 매월 마지막 주, 마감을 앞둔 주말이다.
K는 월 단위로 목표한 업무 관련 지표들이 있고, 마지막 날이면 그에 해당하는 관련 데이터를 입력하고 정산하는 마감업무를 한다. 하여 월말이 되면 며칠간 연장근무를 한다. 일 년이면 총 열두 번의 마감을 하는 셈인데... 중간, 기말고사도 아니고 매월마다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받는 그런 기분일까. 아니 그보다 심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목표한 만큼 도달하지 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팀 성과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기에 압박감이 들 것이다.
말일이 가까워질수록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의 압박감은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을 방불케 했다. 10년 넘게 보험설계사로 일하셨던 나의 엄마 또한 그랬다. 중소기업 경리로 일하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된 엄마는, 둘째인 나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계를 위해 지인의 권유로 보험설계사가 되었다고 한다. 타고난 성정이 바지런하고, 활동적인 데다 타인의 고민해결에 적극 동참하는 오지라퍼이지만, 훗날 그 시절을 회상할 때면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얘기하곤 했다. 따로 돌봐주는 이가 없었기에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를 종종 데리고 다니셨는데, 사무실에 가면 큰 패널 같은 곳에 엄마 이름이 적혀있고 그 위로 동그라미 스티커가 붙어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월말이 되면 어떻게든 한 건이라도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종종거리던 엄마가 눈에 선하다.
모 인터넷 매체를 통해 누군가 고된 마감업무를 마치고 느끼는 희열감이 인생의 촉매제가 된다고 표현한 글을 읽었다. 긴장과 압박을 느끼는 환경에서 업무를 해낼수록 더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논지였는데, 과연 그럴까. 업무나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가족으로서 곁에서 지켜본 마감업무로 인한 두 사람의 감정은 그것과는 달랐다. 마감을 하며 한 달 또는 일 년 간의 업무를 정산하고 성과를 돌아보며 성취감을 느끼기도, 향후 업무를 해나가는 데 동력을 얻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잦은 마감으로 인한 피로와 이번 달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와닿았다. 수많은 직종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마감업무를 한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므로 어쩌면 우리 모두 마감기한에 맞춰 업무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 업무가 월 마감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불가결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K의 마감 불면증은 점차 고질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