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 보면 난 그다지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고 학과공부를 위해 도서관에 가자는 친구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책을 빌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도서관에 간 적이 별로 없었다.
대학생이 된 후 처음 학교 중앙도서관에 간 것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짝이었던 친구를 따라간 것이었다. 그나마 책 읽기를 좋아하다 보니 책을 빌리기 위한 목적으로는 가더라도 면학을 위한 목적으로는 갈 일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중간고사 일정이 발표되었다. 대학에 들어온 후 처음 맞는 시험을 앞둔 어느 날 동아리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한 선배가 중간고사 기간 도서관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인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려면 새벽에 나와야 겨우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배의 말을 당연히 과장 섞인 너스레라고 생각하면서도 서클 친구들과의 약속에 못 이겨 새벽 첫 버스로 학교에 온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비벼야 했다. 도서관에 들어가기 위해 선 줄은 도서관으로 가는 언덕을 지나 정문을 나와서 지하철 역 둘레를 따라 돌다가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서 상원정류장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결국 자리를 잡기 위해서 아침 6시에 나왔음에도 자리 잡기를 실패한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자리에서 책을 보는 것이었는데, 세칭 ‘메뚜기’라고 불렸다. 부지런했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늘 메뚜기였다. 사실 딱히 공부를 위해 도서관에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메뚜기를 뛰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한 번은 모든 수고를 뒤로하고 정말 억울하게 메뚜기가 되어야 했던 적이 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시험기간 반드시 도서관에 내 자리를 잡아 메뚜기의 설움을 당하지 않겠노라 작심한 나는 서클룸에서 밤을 보내고 꿈에도 그리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추운 바람을 맞으며 줄을 섰던 탓인지 따뜻한 도서관에 앉자 잠이 쏟아졌다. 한참을 자다 일어난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찬물로 씻고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자리로 돌아오던 중 바로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간호학과에 다니던 같은 서클의 친했던 1년 후배라고 생각한 나머지 눈을 가리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누구~게?”
(내 손을 더듬어 만져보더니...) “OO~~?”
“(아니 내 목소리를 못 알아보다니 서운한데 ㅠ.ㅠ) 아니 과나 동문회 말고, 서클~”
“OO?, OO?......”
그러나 내가 후배라고 생각한 여학생의 입에서는 결코 내가 아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서운하게 생각하면서 눈을 가렸던 손을 푸는 순간.....
(_._;;) 헉, (이어지는 정적.......)
“죄송합니다 ~~” (후다다닥)
사실 상대방 여학생도 나도 서로 간에 모르는 사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재빨리 사과를 하고 나서 번개처럼 자리를 피했다. 결국 나는 그날 다시 그 자리로 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밤늦게 여학생이 사라진 뒤에야 가방을 정리할 수 있었다.
결국 새벽부터 줄 서서 자리를 잡아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나는 여전히 메뚜기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신입생 때와는 달리 학년이 올라가면서 도서관은 점점 우리의 터전이 되었다. 시험기간을 제외하면 자리를 잡기 위해서 크게 노력할 필요도 없는 데다 그 당시는 열람실을 제외한 도서관의 대부분 장소는 자유로웠기에 도서관에 있는 것이 편했다. 휴게실에서는 담배도 피울 수 있었고, 식사 후에는 자판기 커피 한잔을 마신 후 컵을 이용한 놀이(우리가 처음 시작한 그 놀이를 우리는 ‘컵차기’라고 불렀는데, 이후 다른 학교에서는 우유팩차기가 더 유행했다고 한다)를 통해 배를 꺼뜨렸는데, 가끔은 공부보다 노는데 더 빠지기 일쑤였다. 한창 대학원이나 과학원 입학을 위해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던 4학년 때에도 노는 시간은 여전했다.
시험기간에는 도리어 학교를 벗어나 종로에 있는 정독도서관이나 대학로에 있던 학산도서관, 또는 시험기간이 아닌 다른 학교 도서관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말이야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얼마 못 가서 인사동이나 대학로 또는 다른 학교 구경에 빠져 버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공부를 지지리도 안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