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체육시간이었다.
아이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싶었던 체육선생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기회를 제공하는데 인색함이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청소년월드컵 경기다.
지금이야 성인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 진출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 염원이었다.
그러던 차에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1983년 청소년 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진출했다.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유명했던 박종환 감독이 이끝던 팀에는 하얀 지코라고 불리는 신연호와 대포알 슈터 김종부가 있었다.
가까스로 우루과이를 이기고 올라간 대표팀의 상대는 브라질이었는데, 우리들의 마음을 읽었던 체육선생님은 아이들을 체육실로 불렀고, 그날 우리는 TV로 대표팀의 4강 경기를 볼 수 있었다.
경기는 브라질에게 패했지만 보고 싶었던 경기를 체육시간에 봤다는 사실에 모두가 기뻤다.
그런 체육선생님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첫 시간의 일이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자 칠판에 이름을 한자로 적고 나서 뿌리를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요즘 아이들은 족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한 아이를 지목하더니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넌 이름이 뭐냐?”
“XOO입니다.”
“너 무슨 X 씨냐?”
“나라이름 X 씨요”
(와 하하하하~~~, 까르르르~~~~)
아이들은 요절복통을 했지만 당시 그 친구는 정확한 연유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러자 선생님의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아니 그런 거 말고, 김해 김 씨, 전주 이 씨, 밀양 박 씨 하는 그런 거 말이다.”
“아 OO X 씨요”
“그럼 시조가 누군지는 아냐?”
“X판서요”
(와 하하하하~~~, 까르르르~~~~)
그 순간 다시 한번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영문을 몰랐던 그 친구는 어리둥절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