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상대로 본인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뜻을 알아 와서 얘기해 보는 내용의 숙제를 냈다.
나는 아이의 이름이 뜻하는 바를 얘기해 주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야!, 너는 네 이름이 맘에 들어?”
“응! 나는 내 이름이 제일 좋아”
“근데 넌 왜 그 이름이 좋아?”
“내 이름은 흔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 같아~”
기분 좋게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사실 내가 걱정이 되었던 이유는 아이의 이름을 작명소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지 않고 내가 직접 지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아이의 이름을 만들기 위해 나는 몇 날 며칠 동안 고심을 했고, 지금 아이의 이름은 그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기를 쓰면서 내가 아이의 이름을 직접 지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요즘 아이들의 이름이 다 비슷비슷해 보였고, 그렇게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돌림자를 사용하는 것이 아이의 운이 나쁘게 작용하는 것은 막아준다는 속설 때문에 돌림자도 사용해야 했기에 개성이 있으면서도 예쁜 이름이 되기는 싶지 않았다.
그런 아빠의 노력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아이는 자기의 이름을 무척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 ♣ ♣
문득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일이 생각났다.
가슴에 하얀 가제 수건을 달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등교한 내가 자리에 앉은 후 아이들에게 자기에 대한 소개를 하고 난 선생님은 출석을 불렀다.
“김 OO”, “네”
“이 OO”, “네”
“이 OO”, “네”
“O OO”, “........”
“O OO”, “........”
“O OO”, “O OO 없니?”
선생님의 호명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누군지 궁금해서 두리번거리는 내 눈에 당황한 모습으로 손짓하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며칠 전 들었던 나의 또 다른 이름이 떠올라 내키지는 않았지만 급하게 대답했다.
♣ ♣ ♣
내 이름이 두 개가 된 것은 큰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좋은 팔자를 위해서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어서, 큰아버지에게 보냈는데 돌림자를 써야 한다며 마음대로 내 이름을 바꿔서 호적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지어온 이름이 더 마음에 들었던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친구들에게나 교회에서 그 이름을 사용했었지만 입학을 하면서는 바뀐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금 나의 이름은 처음엔 나에게 환대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지어주셨던 이름으로 친구들이 불러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나와 같이하게 된 이름은 흔하지 않아서인지 남다른 매력이 있었다. 어릴 적과는 달리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나는 내 새 이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그 이름이 나에게 왔을 때 반갑게 맞아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자,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좋아해 주는 것 자체가 고마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