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차라리 이사를 가지...

by 별사탕아빠

매일 퇴근길에 나는 아이가 다니는 공부방에 들러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으로 오면서 아이와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무척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얘기하던 중 아이가 한 친구의 이야기를 했다.


“아빠! 오늘 OO는 영어시간에 졸았어~”

“어이구, 왜 그랬데?”


“몰라, 그런데 OO는 원래 수업시간에 자주 졸아”

“그래~~ 에구 피곤 한가부네?”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하느라 밤늦게까지 잠을 못 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 ♣ ♣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도 수업시간마다 졸고 있었던 친구가 생각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같은 반이 된 그 친구는 아침부터 매 수업시간마다 졸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2학년 말에 은평구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매일 2시간씩 시간을 들여 통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우리 학교가 엄청나게 공부를 시키는 학교로 소문이 나있어서 부모가 전학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는 얘기가 돌았다.


결국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2시간을 들여 서울 동쪽에 있는 학교에 오면서 체력이 고갈된 그 친구는 수업시간이면 졸기 일쑤였고, 저녁에는 복습을 위해 ‘타이밍’이라는 당시 유명했던 각성제까지 복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부모의 욕심 때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공부는 공부대로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이사를 가는 게 좋을 텐데’


당시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이 그 친구를 보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전학을 가지 않았고, 우리와 같이 졸업을 했다.


물론 학력고사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 ♣ ♣



이런저런 생각 끝에 요즘 아이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기교육이니 뭐니 해서 영어유치원에 가거나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는 말에 걱정이 된 어머니들의 성화에 아이들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두세 군데 정도의 학원을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공교육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깊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자꾸 변경되는 정책으로 인해 공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고, 사교육이 그 틈새를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교육은 주도권을 장악한 후, 시장을 키우기 위해 학부모들을 상대로 불안감을 부추겼고, 그 영향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미치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정부에서 모든 사교육을 금지시켰던 1980년에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던 나로서는 요즘 아이들처럼 여러 군데 학원을 다니지 않고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쩌면 더 좋은 삶을 위한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학원으로 모든 것이 세상을 오직 경쟁의 장으로만 생각하는 부모들이 이기심과 불안감이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아이에게 공부를 이유로 다그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오래전 유행했던 광고가 떠올랐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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