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지나고 며칠이 지나고 나서 아이의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평소라면 12월쯤 시작했을 초등학교 방학이 해를 넘기고 시작한 이유는 시설개선을 위한 공사 때문이었다.
방학을 한 아이가 다니는 공부방의 쉬는 기간도 마침 겹쳐 있었던 차라 인근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에 있는 눈썰매장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다.
엄마와 아빠의 입에서 눈썰매장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신이 나서 마음이 들떠버린 아이는 평소와 달리 말이 많아졌다.
처음 아내는 생각보다 부쩍 추워진 날씨로 인해 아이가 감기에 걸릴 것이 염려되어 다음에 가자는 말을 꺼냈지만 이미 눈썰매장에 마음을 온통 뺏겨버린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
눈썰매장에 도착한 아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게다가 이미 작년에 공부방에서 친구들과 왔던 경험이 있어선지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튜브썰매들이 쌓인 곳을 향해 뛰어간 아이는 마음에 드는 썰매를 고르더니 튜브 끝에 묶인 밧줄을 손으로 잡아끌며 눈썰매장의 슬로프를 향해 달려갔다.
엉겁결에 나는 아이를 따라 정상까지 놓인 계단을 뛰어갔더니 직원이 묻는다.
“눈썰매 타실 거예요?”
“어~, 잠시만 요.”
혼자서 튜브썰매를 타고 내려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아이를 따라 눈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엄마도 같이 타~ 응응??”
아이와 내가 눈썰매를 타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느라 경황이 없던 아내도 아이가 조르자 결국 썰매 타기에 합류했다.
…
곧 우리 가족은 가장 높은 곳에서 나란히 슬로프에 자리를 잡고 동시에 내려오기 시작했다.
“와~~~~, 너무 재밌다~.”
아내도 나도 처음 타는 눈썰매의 재미에 흠뻑 빠져버렸다.
사실 나는 튜브썰매를 직접 타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어린 시절 다니던 초등학교가 산중턱에 있다 보니 눈이 오는 날이면 썰매를 대신해서 신주머니를 엉덩이에 깔고 내려왔던 기억이 많았기에 눈썰매에 대한 선망이나 그런 것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오만이었다. 경사도나 슬로프 길이 및 미끄럼 정도의 차이 때문인지 어린 시절 신주머니 썰매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4시가 넘어가며 날씨는 더더욱 추워졌다. 사람들이 한 둘씩 떠나기 시작했고, 슬로프까지도 더 미끄러워지자 눈썰매장을 떠나야 했다. 결국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아이를 달래고 나서야 그곳을 나설 수 있었다.
♣ ♣ ♣
돌아오는 길에 썰매장 안쪽의 낮은 언덕에서 웃고 떠들며 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추운 날이라 콧물을 흘리면서도 즐겁게 노는 아이들은 무심히 보고 있노라니 손에 들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썰매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눈에 많이 익었다는 생각이 든 나는 어디서 봤는지 기억을 더듬었고, 내방 안쪽에 있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쌓아두는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썰매의 모습이 떠올랐다.
…
아이가 세 살 무렵이었으니 5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어느 눈 오는 날이었다.
아내는 갑자기 눈썰매를 사야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날 낮 동네 토성에서 눈썰매를 타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본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사실 토성에서 썰매를 타는 것 자체를 좋게 보지 않았던 나는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에이, 아직 OO는 어리잖아!, 나중에 가서 사자~~.”
아이가 어리다거나 몇 번이나 사용할지도 모르는데 굳이 살 필요가 있냐는 식으로 얘기해 봤지만, 아이가 좋아할 것이라는 환상에 이미 빠져 있던 아내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의 반대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기대도 완전히 빗나가 버렸고, 아내의 고집으로 샀던 썰매는 구입한 이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채 집 한구석 자리만을 차지한 채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
“와 눈 온다, OO야 엄마랑 아빠랑 썰매 탈까?”
“아니 난 집에서 노는 게 더 좋아~”
눈이 올 때마다 아내는 썰매를 들고 아이를 꼬셔보지만 아이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이런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나는 밉살맞은 시누이처럼 행동한다.
“내가 뭐랬어, 사지 말자고 했지! ^____^:::”
이런 일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눈이 오는 날이면 우리 집에서 흔히 생기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좀 더 자라면 탈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아내에게 작년에 날벼락같은 소식이 들려왔는데, 토성에 올라 다니는 것 자체를 막겠다는 내용의 공고가 떡하니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런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원인은 문화재나 다름없었던 토성에서 눈썰매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TV의 공중파를 통해 뉴스로 전해진 때문이었던 것 같다.
…
대학에 진학한 후 거의 곧바로 지금 사는 마을로 이사를 왔으니 벌써 40년이나 지난 세월 토성은 나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일상의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규칙을 깨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굳이 토성에 올라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 동네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에게 토성은 소소한 일상에 대한 작은 발자취들이 남아 있는 그런 곳이다.
세상일이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 힘이 드러나했을 때,
토성에 올라와 가만히 앉아서 멀리까지 탁 트인 풍경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딱히 무엇인가를 덧붙이지 않더라도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운이 생겼던 것 같다, 말없이 옆에 있던 토성은 나에게는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았다.
아~!
혼자만이 아니라 아이와 처음 연날리기를 성공한 공동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도 토성이다.
어느 날 연을 날리자며 아빠의 소매 끝을 부여잡는 아이를 보며 속이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때까지 한 번도 연날리기를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그날 토성 위쪽으로 불어왔던 바람의 덕분에 연은 성공적으로 떴고, 깡충깡충 뛰며 좋아하던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