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때면...

by 별사탕아빠

얼마 전 주말 우리 가족은 단체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그날 머리를 자르자고 얘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이였는데,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용실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가 가자고 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이의 목적자체가 머리를 자르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동안 좋아하는 포켓몬 게임을 하지 못했던 아이가 게임을 할 수 있는 마트가 있는 건물이 미용실 근처에 있다는 점과 머리를 자르면 엄마의 머리 손질을 하는 동안 게임을 게임을 하러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아이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이왕에 미용실에 간 우리 가족은 모두 머리를 했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아이와 내가 먼저 머리를 잘랐고, 아내가 머리 손질을 받기 시작하자 늘 그랬던 것처럼 미용실을 나와 쇼핑몰로 향했다.


어차피 아내의 머리를 손질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마냥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게임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포켓몬 게임을 했다. 머리 손질을 마친 아내가 왔을 때는 이미 5성 가오레 칩을 두 개나 획득했던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 엄마에게 자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 ♣ ♣



아이는 미용실에 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머리를 자르는 것 자체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미용실에 가지 않겠다는 의사는 훨씬 확고했는데, 아이는 미용실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싫다는 것을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아이의 머리를 멋지게 단장하고 싶었던 생각을 가졌던 아내는 아이를 미용실에 데려가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전용 미용실에 데려가기도 했고, 어렸을 때부터 친한 아이의 소꿉친구가 머리를 할 때 같이 가는 식으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아이의 머리를 자르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이 되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아이의 머리를 자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먼저 준비를 하는데 들여야 하는 시간 자체도 적지 않은 데다, 전문가들과는 다르게 머리를 자르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아이들은 꾸벅거리며 졸거나 가만있지 못하고 꼼지락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머리를 자르는 사람보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 아이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보조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머리를 자른 후에는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도 치워야 하지만 동시에 머리카락이 묻은 아이의 머리와 몸을 씻겨야 하다 보니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결국 아이의 머리를 자르는 일은 자연스럽게 가족들이 많이 모이는 본가에서 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본가에서는 아이의 머리를 자르면 이런저런 말이 나왔다, 물론 답답하게 기른 머리를 자른 것 자체에 대해 처음엔 그럴듯하다고 했지만, 조금 지나자 머리 스타일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결국 조카들의 머리를 자르며 약간이라도 실력이 나았던 고모에게 나는 가위를 넘겨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편하지는 않은 것이 날카로운 성격의 아이 고모는 머리를 자르고 있는 동안 할머니가 한 마디라도 할라치면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기에 아이의 머리를 실력 있는 미용사에게 맡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해결하고 미용실에서 아이가 머리를 자르게 만든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아내였다.


그동안도 방법을 계속 찾고 있었던 아내는 어느 날 자주 가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난 후, 머리를 하겠다며 근처에 있는 미용실로 데리고 갔다. 매번 집 근처에서 머리를 하던 아내가 다른 곳에서 머리를 한다는 사실이 의아했지만 검색을 해봤더니 평판이 좋았다는 아내의 말에 따라간 곳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일요일이라 손님이 많지 않아 한가해 보이던 미용실에서 우리 가족을 맞은 사람은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젊은 여자 미용사였고, 아내는 그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부탁했다.


머리를 다루는 중에 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내가 불쑥 물었다.


"그런데, 아이들 머리 손질도 해요?"


"그럼요.., 그리고 아이가 너무 궈여워요~"


젊은 미용사는 능숙하게 머리 손질을 하는 중에도 흔쾌히 대답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인상도 좋아 보이는 미용사는 한눈에 봐도 아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낯선 누나가 말을 걸자 쑥스러워 아빠의 뒤로 몸을 숨기고 있던 아이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엄마의 머리를 자르고 있는 미용사의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자, 나와 아내는 조심스레 아이를 구슬리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주춤거리는 아이를 슬며시 미용의자에 앉히자 미용사는 능숙하게 아이를 달래며 솜씨 좋게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표정을 보니, 자신도 머리모양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역시 전문가의 손은 다르다는 생각을 한 아내와 나는 내친김에 아이에게 확답을 받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다음에도 여기서 머리 할까?"


내성적인 아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 부부의 고민은 끝났다. 이후 우리 가족은 머리를 할 때마다 서글서글하고 인상이 좋았던 젊은 미용사에게 가게 되었다.



♣ ♣ ♣



아이가 미용실에 가기 싫어하는 것은 나를 닮은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머리를 자르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발소에 가면 어른들이 앉는 이발의자에 빨래판을 올려놓고 앉힌 채 머리를 자르는데 이발을 하는 시간은 유독 더디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다 보니 졸음을 참을 수 없어 순간적으로 머리가 뚝 떨어지기 일쑤였는데, 그때마다 이발사 아저씨의 야속한 잔소리를 듣는 것이 싫었다.


이발을 싫어하는 것은 그나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어느 정도 완화됐지만 고지식한 성격 탓에 이발소만을 고집하며 미용실에 가기를 거부하던 나를 어머니는 답답해했는데, 내가 미용실에 가지 않았던 이유는 미용실은 여자들만 가는 곳이라는 고루한 생각을 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용실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꾼 사람은 같은 동아리 생활을 했던 후배였다.


공학을 전공했음에도 가끔씩 미용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남자 미용사가 많지 않았던 시기였음에도 거리낌 없이 자기의 꿈을 말하던 후배가 회사생활을 한지도 6년쯤 지난 어느 날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꽤나 친했지만 전공이 다르다 보니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서로 간에 연락조차 소원했기에 전화를 받으면서도 무슨 일인지 싶었다.


더구나 그 시절 나의 머릿속은 아주 복잡했는데, 내가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지 어쩔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인데, 97년에 발생한 금융위기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해 매일 같이 졸업 후 직장을 못 들어간 실직자에 대한 얘기나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쫓겨났다는 식의 심각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 시기에 사표를 낸다는 말을 하면서도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 결정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고민을 나는 오랜만에 만난 후배 앞에서 털어놨다.


잠자코 나의 말을 듣고 있던 후배는 갑자기 아무 말없이 일어나더니 자신이 자주 가는 단골미용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후배의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놀란 나를 보며 후배가 한마디를 했다.


"형 저는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머리를 잘라요,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하면 의외로 잘돼요. 한 번 해봐요!"


처음엔 주저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던 나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후배의 말을 따라보기로 했다.


그날 나의 머리를 손질했던 아가씨는 처음 봤음에도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줬다. 이발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가위질하는 방식도 달랐고, 머리를 자른 후 제자리에서 누운 상태로 머리를 감는 것은 새롭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나자 후배는 나에게 연락한 이유를 말했는데, 너무나 예상밖이라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건축일을 하고 있던 후배는 SI 회사를 설립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자신도 곧 사표를 제출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 함께 일을 하자는 제안을 건넸다.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 적도 없었던 나에게는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당시 유행처럼 번지고 있던 벤처 열풍을 생각할 때, 후배의 계획은 일리가 있어 보였다.


이후 우리는 자주 만났고, 결국 그 만남이 나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후배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프로그램 개발자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바라는 바가 달랐던 후배와의 동행은 오래도록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된 귀결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원래 내가 퇴사를 생각했던 이유는 후배가 바라는 바와는 완전히 달랐기에 선택을 하기 전 오래 갈등을 했다.


어쩌면 그때 후배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내가 원하는 분야로 방향을 틀었거나 어쩌면 다니던 직장에서 나오지 않았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있을 때면, 가끔 개발자로 일하던 시절에 대한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 며칠을 밤을 지새우던, 프로그램을 짜다가 피곤하면 사무실에 있는 야전침대에서 잠깐씩 눈을 붙이다가 좋은 로직이 생각나면 다시 벌떡 일어나 키보드를 두드리고는 했던 바로 그 시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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