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리 어게인>, 단연 세 번째 이야기가 최고다.

대다수가 별 감흥 없이 느꼈을 수도 있는 바로 그 에피소드.

by 조현서

'내 강아지의 속마음은 어떨까?'라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품었을 생각을 풀어낸 <베일리 어게인>은 (인간의 기준에서) 말을 못 하는 강아지가 어떻게 인간보다 인간의 마음을 더 잘 아는지에 대한 인간이 품은 가장 이상적인 대답이다. 우리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푹 파여있을 때, 강아지가 마치 그걸 아는 듯 꼬리를 흔들며 우리에게 다가와 얼굴을 비비는 상황, 반려동물을 키우는 자라면 누구든 한 번쯤 만나는 상황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 바로 <베일리 어게인>이다. 영화의 설정은 이를 더 극대화한다. '강아지는 다음 생에에도 강아지로 태어난다'라는 설정 위에, 첫 생애 때의 주인을 우연히 찾게 된다는 설정을 얹고, 그 주인을 계속해서 그리워하고 그때의 삶의 궤적이 차후 생의 기준이 되는 걸 설정을 더하면서 관객은 첫 번째 주인공(이든)에게 마음을 완전히 이입하게 만든다.

이든의 캐릭터 설정도 베일리-이든과의 관계에 더 이입할 수 있도록 영리하게 이뤄졌다. 전도유망한 풋볼 선수였고,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입학하는 걸 며칠 앞두고 사고를 당하는 이든은 한 때 빛났지만, 개인적인 사정 혹은 현실적인 여건으로 그 빛을 잃거나, 혹은 그 빛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한 채 타협하고 살아가지만, 반려동물에게 일종의 위로를 얻는 현대 사람들을 은유한다. 즉, 이든은 현대 사회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 자신이라고 느낄 수 있는 인물이다. 가장 감정 이입하기 쉬운 인간형을 형성하고, 인간의 입장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의 전형을 설정하면서, 영화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무장 해체시키기 충분한 매력을 지닌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베일리 어게인>의 거대한 이야기 구조, 즉 이든-베일리의 기나긴 관계에는 오히려 사랑스러운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너무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몸으로 태어나지만 첫 번째 주인과의 관계를 잊지 못하고 그 주인을 찾는다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지나치게 극적으로 느껴지는 데다가 과연 강아지와 인간의 관계가 그 정도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즉,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과 기르지 않는 입장이 몰입하는 정도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베일리가 겪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삶은 하지만, 이 영화의 균형을 굉장히 잘 잡는 구성 요소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전형적이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전형적인 서사구조를 잘 활용했다면, 세 번째 에피소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만큼 행복한 이야기이다. 세 번째 이야기가 특히나 <베일리 어게인>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이유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강아지의 삶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인간의 주관이 가장 덜 개입된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서로에게 충분히 의미부여를 하고, 때로는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이지만 인생 전반에 걸쳐 항상 그렇지 않은 모든 관계의 핵심을 굉장히 유려하게 선사한다. 반려동물이 인생의 전부인 한 대학생이 반려동물을 통해서 다른 사람, 다른 세계와 교류하고, 그 교류를 통해서 반려동물도 다른 강아지와 관계를 맺는 과정은 한 소중한 관계가 여러 다른 소중한 관계를 파생하는 긍정성의 소중함을 문득 떠오르게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든과 베일리의 관계를 응원하면서 영화를 봤겠지만, 그 사이에 있는 평범한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갔고, 영화를 본지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문뜩 대학생과 베일리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 평범한 장면이 떠오른다. <베일리 어게인>은 나에게 한 평범한 대학생과 반려동물, 그리고 아이스크림으로 기억되는 영화이다.


베일리어게인.jpg <베일리 어게인>, 오히려 서브 플롯이 더 매력적인 영화.

2018. 11. 8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