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하나만 들어줘>, 캐릭터 설정이 신의 한 수

by 조현서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굉장히 영리하게 캐릭터를 설정하는 것을 통해서 차후 캐릭터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설득시킨다. 스테파니(애나 켄드릭 분)는 굉장히 명랑한 한 아이의 어머니로, '미안하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말하는, 과하게 명량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평범한 캐릭터이다. 오히려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범상치 않은 캐릭터이다. 매력적인 수트핏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에밀리는 행동하는 데 거침없고, 말하는 방식 역시나 상대방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녔다. 특히, 처음 스테파니가 에밀리를 만났을 때, 에밀리가 자신의 아들에게 거침없이 소리를 지르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방식에 압도되는 모습에서 그렇다. 에밀리의 집에서 스테파니와 대화를 할 때, 대화를 주도하는 건 대부분 에밀리인 지점도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에밀리와 비밀을 하나씩 나눌 때, 스테파니는 brother-fucker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즉, 이복오빠와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걸 고백한다. 이 설정 하나로 인하여, 명랑하고 활동적인, 평범한 스테파니가 에밀리와 나중에 두뇌 싸움을 벌일 때, 스테파니의 아우라가 에밀리에 전혀 밀리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brother-fucker라는 사실은, 이전에 서술된 오빠와 남편의 갈등과 죽음도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평범해 보이는 스테파니가 에밀리의 판 안에서 본인만의 판을 짜는 능력을 지닌, 비범한 캐릭터라는 걸 brother-fucker라는 설정으로 은유한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서는 이러한 캐릭터 구성을 바탕으로, 굉장히 흥미롭게 스토리를 구성한다. 초반부는 에밀리의 실종 이후 스테파니와 숀(헨리 골딩 분)이 가까워지면서 일종의 불륜 관계를 맺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이후 에밀리가 죽은 게 아니라는 증거가 하나둘 등장하면서 스테파니가 에밀리의 생존에 관한 증거를 찾는 과정과 에밀리-숀-스테파니의 관계의 반전 및 전복이 주를 이룬다. 스토리 구성에 있어서 흥미로운 지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숀과 에밀리는 스테파니에게 서로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서로의 정보는 완전히 대척점에 위치해있다. 여기서 관객은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각자의 주장이 모두 일종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밀리는 숀, 비서, 그리고 자기 셋이서 동시에 성관계(쓰리썸)를 가졌다고 말하는데, 학교에서 숀과 비서(조교) 사이라고 보기 어려운 친밀한 스킨십 장면을 보면 에밀리의 말에 신빙성이 더 가지만, 숀 어머니가 굉장히 소중하게 여긴 반지를 아무렇지 않게 훔치는 에밀리의 모습을 보면 숀의 말이 좀 더 신뢰가 간다.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불완전한 정보가 나열되면서 어느 쪽의 의견도 믿을 수 없게 하는 스토리 전개는 굉장히 긴박감이 있다.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은 에밀리의 부활의 긴박감을 더 부여하는 요소로서 작용하는, 굉장히 영리한 설정이다. 또한, 후반부에 스테파니가 에밀리에 대한 비밀을 다 파악하고, 에밀리도 숀과 스테파니를 만나면서 조금이나마 서로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데, 관계 설정 방식이 굉장히 신선하다. 보통의 영화라면 둘 다 숀과의 연대를 추진하거나 혹은, 숀을 배제하는 선택만 보여줬겠지만,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선택지와 대화를 보여주면서, 끝까지 누가 연대해서 누구를 범인으로 몰지 알 수 없다. 어느 정도 이러한 관계로 흘러가겠다는 확신이 들 때쯤 스토리 전개의 방향을 틀면서, 계속해서 서스펜스를 부여한다. 숀이 체포될 때까지만 해도 에밀리-스테파니의 연대로 끝나는 듯싶지만, 이후 몇 차례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단순히 도식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걸 떠나 에밀리-스테파니, 스테파니-숀, 에밀리-숀 사이의 대화를 모두 보여주고, 각자의 대화가 차후의 대화에 영향을 미치고, 좀 더 유리한 판을 짜기 위해서 각자의 대화를 치밀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굉장히 밀도 있게 선사한다. 스릴러 영화로서의 강점이 아닐 수 없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서 엄청난 수트핏을 자랑하는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모습은 최근 할리우드의 어떤 여자 배우들의 모습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로도 엄청난 매력을 선사한다. 화려하지만 절제된 수트를 입고 숀과 스테파니를 압도하는 에밀리의 모습은 관객을 카리스마로 압도하기 충분하다. 다른 여자 캐릭터에 비해 더 인상적인 이유는, 남성을 매혹하는 카리스마와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모두 지닌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흔히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캐릭터를 떠올리면,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 헤이스(프랜시스 맥도먼드)같이 카리스마로 타인을 압도해버리는 캐릭터가 있고, <박쥐>의 태주(김옥빈 분)처럼 분위기로 완전히 자신에게 매혹당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캐릭터가 있는데,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서의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약간 다른 장르이기는 하지만 위 두 캐릭터의 카리스마와 분위기를 일정 부분 모두 지닌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굉장히 영리한 캐릭터 설정을 통해서 이후의 치밀한 스토리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근래 보기 드물게 단점이 적은 스릴러 영화이다. 영리한 캐릭터 설정과 흥미롭고 치밀하게 직조된 스토리는 영화에 몰입하게 하기 충분하다. 각자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단점을 꼽기는 어려운, 웰메이드 스릴러 영화이다.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인상적인 카리스마 하나만을 위해서도 관람할 가치가 있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여러모로 추천한다.


부탁 하나만.jpg 부탁 하나만 들어줘, 12.12 개봉.

2018.11.29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브런치무비패스로 관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