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뿐만은 아닙니다.
MBC의 예능 프로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한국을 관광하는 외국인들에게 빠지지 않는 장소가 있다. 그 장소는 바로 '동물 카페'이다. 홍대 등 서울 번화가에 항상 있는 동물 카페는 강아지, 고양이부터 최근에는 라쿤까지 잘 찾아보기 어려운 동물들까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방송에서 비치는 동물 카페는 귀여운 동물들과 마음껏 교감할 수 있는 천국 같은 공간이다. 쉽사리 볼 수 없는 모습에 놀라고 동물들과의 교감을 즐기는 외국인 관광객의 표정은 아주 좋은 클로즈업의 먹잇감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지나치게 좁은 공간에 수많은 동물들이 사는 데에서 기인하는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아예 배제된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공간이 없다'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인터뷰도 동물 카페의 즐거움을 증폭시키는 요소로 활용할 뿐이다.
<언더독>은 반려동물이 늘어나고 심지어는 동물 카페까지 생겨나는 추세에 은근히 뒤통수를 가격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인간에게 버려지는 동물들이, 인간의 이기심과 불합리함을 깨닫고, 본인들만의 세상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그리는데, 반려동물이었지만 인간의 이기심 탓에 버려지는 동물들이 주인공이 점에서부터 그렇다. 이러한 인간들의 이기심에 대한 비판은 사실 다양한 매체에서 이미 다뤄진 적이 있지만, <언더독>은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반려동물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 반인륜적인 방식으로 생산되는 것, 과연 이러한 반인륜적인 동물 생산을 애써 '반려동물'에 대한 수요로 무시할 수 지 여부, 진정 반려동물이라면, 짖을 때마다 목에 전기가 통하는 목걸이를 걸어놓는 걸 '반려동물'에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간이 그동안 애써 회피했던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언더독>이 더 훌륭한 지점은 '동물권'을 한국의 부조리한 사회상과 잘 버무렸다는 점이다. 한국의 부조리한 사회상이 한국의 뒤틀린 동물권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설득한다. 한국의 재개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하대, 환경 파괴, 분단 상황이 대한민국의 동물권을 얼마나 뒤틀리게 했는지 설명한다. 왜 한국의 국민은 단순히 반려동물을 소유물로서만 소비하게 되었는지가 우리나라의 성장 방향성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소수자를 고려하지 않은 성장이 결과적으로 가장 권력구조의 하부에 존재하는 반려동물에게 결국 돌아간다는 점을 재개발지역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재개발의 효용으로 인하여 미처 몰랐던, 혹은 애써 모른 척하는 피해자를 <언더독>은 바로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언더독>에서 내가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다수의 주인공이 다 같이 한 걸음을 걸으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서사라는 점이다. 기존 상업영화에서 주인공이 한두 명의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본인의 위기를 극복하는 서사가 아닌, 모두의 문제를 모두가 합심해서 다 함께 헤쳐나가는 구조는 기존 한국 상업영화와 궤를 달리한다. 세월호 사건과 대한민국 국정농단 사태 이후, 혹은 현재 미투 운동까지 한 능력 있는 자의 열 발걸음보다 열 명의 평범한 사람의 한 발걸음이 더 나은 방향의 결과를 낳는다는 걸 <언더독>은 넌지시 건넨다. 한 사람보다 여러 사람, 능력 있는 자보다 평범한 자의 움직임을 응원하는 이 영화를 나는 결코 싫어할 수 없을 것 같다.
2019년 1 월 9일
신도림 시네Q에서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