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의 행복한 고생 시작 #1
한국을 뜨는 비행기에 탔을 때는 불안감이 온몸을 감쌌다. 공항 안의 카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인 녹차라테를 마셔도 불안감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나 홀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 이 사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속 불안감은 점점 더 옅어졌다. 어차피 한국을 벗어난 거, 어떻게든 6개월 동안 살아남자는 생각이 더 강하게 자리 잡았다.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스웨덴을 와서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Arrival-day에 맞춰 가니 현지 대학생들과 버스 기사분의 안내로 손쉽게 방 키와 유심 카드 등 물품을 손쉽게 받을 수 있었다. 기숙사 방안은 너무나도 정리가 깔끔했고, 짐을 푸는 것도 일사천리로 잘 흘러갔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발생했다. 와이파이가 안 되는 것이었다. 한국에 연락은커녕 대학교로부터의 연락을 받을 수 없었기에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었다. 기숙사 내 방이라는 무인도에 홀로 표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절망감에 아무 생각도 없이 기숙사 현관문 앞에 나와있을 때, 일본인 기숙사생 두 분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어떤 자신감인지 그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하루가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내 소심함을 넘을 만큼 인터넷 이용이 절실했다. 한국이 아니라 스웨덴이라는 것도 내 이상한 용기를 북돋는 데 한몫했다. 나는 어차피 이방인이니까, 물어보는 게 당연한 거라고 나도 모르게 내 뇌를 부추겼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으니 노트북을 좀 빌려달라는 무례한 부탁에도, 일본인 기숙사생 두 분은 너무나도 친절하게 하는 법을 정확하게 알려주셨고, 심지어 안되면 자기의 라우터를 쓰라고 말하며 와이파이 장비까지 주셨다. 너무나 감사했다. 덕분에 나는 오늘 아침, 브런치에 스웨덴 생존신고를 지금 쓰고 있다. 내 생활이 하나하나 불안 불안하지만 설렐 수 있는 건 어쨌든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잘 흘러가서 그런 것 아닐까. 결과가 좋지 않다면 과연 설렘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감사함으로 귀결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