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배려

스웨덴에서 살아남기 #3

by 조현서

스웨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혹은 교환학생을 갔다 왔거나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온 사람들이 스웨덴에서의 삶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친절한 배려이다. 세븐일레븐에서 심카드(유심)를 살 때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해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 친절하게 대하는 배려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뒷사람을 미처 못 보고 5분 넘게 캐시어에게 질문을 계속하는 이방인을 웃으면서 기다릴 수 있는 여유의 근원은 무엇일까. 분명 내가 서울 편의점에서 나 같은 외국인을 마주했다면 분명히 짜증 나는 표정으로 뒤에서 기다렸을 것이고, 내가 편의점 점원이었다면 3분이 넘어가는 지점에서 짜증이 났을 것이 분명하다. 그걸 숨기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어쨌건 드러나기 마련이다.

내가 겪은 이방인을 향한 친절한 배려를 가능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 상대적으로 대한민국보다 스웨덴에서 겪을 확률이 더 높은 이유는 뭘까? 답은 '느림'이다. 배려는 본질적으로 느려야 가능하다. 자기의 일을 처리하는 데 여유로워야 타인의 일에 관대해질 수 있다. 삶이 빠르다면 남을 배려할 수 없다. 목적을 향해 달리는 데 치중한다면 반대로 주변 환경을 살피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우사인 볼트처럼 100m를 9초 50에 돌파해야 한다면 트랙 주변에 어떤 물품이 있는지, 어떤 식물이 심어져 있는지, 관중석에는 사람이 얼마나 찼는지 살필 여유가 없다. 하지만 동호회 마라톤 모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중간에 속도를 늦추거나 물을 마셔도 결코 비난하지 않는다. 주변에 어떤 나무가 만개했는지 살피면서 뛸 수도 있고, 듣고 있는 음악을 바꾸기에도 충분한 여유가 있다. 물론 우사인볼트에 익숙해졌다면 동호회 마라톤은 참을 수 없이 답답할 것이다.

택배를 부쳤을 때 단 하루 만에 총알처럼 배송이 되는, 그리고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사과 문자를 보내는 택배 기사의 삶에서 우리는 어떤 여유를 기대할 수 있을까? 혹시나 그분이 삶에 지쳐 소주를 마시고 걷다가 마주 오던 사람과 어깨를 부딪혔을 때, 사과하는 게 아닌 욕을 하는 걸 온전히 택배 기사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택배가 오는 데 3주가 걸려도 느긋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나라는 어떨까? 자기 스스로가 사는 데 조급하지 않으니, 자기 삶의 여유가 충족이 되니 다른 사람의 삶을 배려하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이미 총알 배송 택배에 중독된 우리나라에서, 북유럽의 여유란 너무 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