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배려

스웨덴에서 살아남기 #4

by 조현서

배려의 핵심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모든 요소에 대해 의심해보는 것에서 배려는 시작한다. 예를 들어 대학생의 삶에서 배려의 근원을 찾아보자.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간단히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서 과제를 한다. 과제를 마치고 동아리방에 들러 동아리 부원들을 만난 뒤, 저녁을 먹고 다시 집에 간다고 가정하자. 이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의심하는 걸 시작으로 배려의 사회는 시작한다. 샤워기가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높지 않을까? 가스레인지는 초등학생들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버스의 계단 때문에 유모차를 끄는 가족이 이용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휠체어를 사용하는 학생은 어떻게 고층의 건물을 갈 수 있을까? 스웨덴의 높은 비율의 저층 트램과 버스의 비율이 높은 건 이러한 의심의 결과물일 것이다.

배려는 이러한 의심을 하찮게 여기지 않은 것으로 한층 더 강화된다. 아무리 하찮고 작은 것에 대한 질문이라도 그걸 무시하는 순간 배려는 성립하지 않는다. '뭔 그딴 말을 해? 가뜩이나 일 할거 많은데'라는 대답이 나오는 순간, 모든 측면에서의 배려는 기대하기 어렵다. 배려의 핵심은 다양한 말을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말을 듣고, 그 말 중에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는 거를 최대한 반영하는 게 바로 배려의 완성이다. 핵심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가 전제이다. 사회의 여러 면을 보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양한 사람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뱉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사람들의 발언이 억압받는다면, 다양한 사람이 있어도 그만큼 다양한 발언이 나올 수 없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유병재는 일명 'PC충, 프로 불편러'를 조롱하는 영상을 올렸다. 백인 남자 친구를 데려온 딸을 백인 우월주의자로 몰아가면서 과도한 PC를 풍자한다. 끝없이 영상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이슈를 끌고 와서 조롱하면서, 나이 많은 남성과 나이 어린 여성 커플이 젠더 권력의 일종이라는 주장을 비꼬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영상은 누군가의 의심을 무시하지 않고, 그 의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한 결과물일까?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없다. 하나은행에서 합격 비율을 정해놓고 성차별적으로 채용하거나, 최근까지도 성희롱과 성차별적인 언행을 일삼는 유머저장소 유튜브 구독자가 58만 명에 육박했단 것, 여자 친구를 주먹으로 수 차례 가격해 죽음에 이르게 한 남성이 집행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나는 사례가 유병재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나 보다.

나에게는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해봤는가. 우리는 모두 일개 작은 사람이기에, 자기가 아는 영역 혹은 안다고 생각하는 영역보다도 훨씬 더 광대한 알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타인의 의심을 과도하다고 말하며 조롱하는 것, 그것만큼 비겁하고 옹졸한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