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살아남기 #5
저번 주 목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갑자기 오른쪽 아래 어금니 옆 잇몸에 통증이 느껴졌다. 서울이었으면 바로 치과로 달려갔겠지만, 스웨덴에서는 그럴 수 없다. 할 수 없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가서 칫솔에 치약을 짜서 입 안에 넣고 왜 이가 아플까 고민했다. 스웨덴에서의 일주일을 돌이켜보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콜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이를 너무 대충 닦았나? 도무지 따져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스웨덴에서의 일주일은 술도 안 마시고 매일 11시 전에 잠드는 굉장히 규칙적인 삶이었다. 결국 통증을 안고 학교 수업과 교환 학생 미팅, 그리고 헬스장에서 운동까지 마쳤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내 잇몸은 저렸다. 의문을 알 수 없는 불쾌한 고통이 있지만 살기 위해서 장은 봐야 했다.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들어가 바구니를 집어 든 순간 눈 앞에 샐러드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지난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도 야채를 먹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이 아픈 게 야채를 안 먹어서 그런가? 눈 앞에 싱싱한 야채를 본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난 계산대에 있었고, 한 가득 채소와 드레싱을 담은 후였다. 약간 비싼 가격이 내 눈을 계속 괴롭혔지만, 일주일 동안 스웨덴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여기고 애써 가격을 외면했다.
집에 와서 파스타 물이 끓는 동안 샐러드를 한 입 먹는 순간, 나는 시저 샐러드와 아보카도가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과장 보태지 않고 야채를 한 가득 포크로 집어 입 안에 넣고 1초 후 진심으로 탄성이 나왔다. 잎채소의 청량함과 아삭한 식감이 혀를 타고 온몸으로 타고 흐를 때, 나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아보카도의 부드러움과 리코타 치즈의 고소함, 채소의 아삭함과 이를 모두 아우르는 시저 드레싱의 조화는 호흡이 잘 맞는 오케스트라였다. 양상추의 청량함과 시저 드레싱의 고소함을 음미하면서, 나는 소확행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체험했다. 비싸다고 하지만 한국 돈으로 5000원에 불과했다. 5000원으로 얻을 수 있는, 내게는 단연코 가장 큰 행복이었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 나는 이 단어를 정말 싫어한다. 거대한 꿈과 야망을 허락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를 애써 외면하는 단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소확행이 설령 앞에 있는 절망을 인지하고도 못 본 척하는 피난이라도, 자신만에 소확행을 갖고 있는 건 나쁘지 않다. 취업도 안되고 불법 야근에 찌든 삶에서의 한 입의 샐러드로 인한 행복조차 외면이라고 비난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이 세상을 극복할 힘은 없더라도, 적어도 이 세상에서 샐러드는 먹을 수 있다. 정말 사소한 무언가 이지만, 행복은 그 사소한 무언가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공평한 세상이다. 또 세상일은 모른다. 샐러드가 쌓이고 쌓여서 기울어진 세상을 조금이라도 평평하게 만들 수 있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