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두려움

스웨덴에서 살아남기 #6

by 조현서

저번 주 토요일이었다. 첫 주말을 맞아 방 청소와 빨래를 하고, 마지막으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끝으로 장장 두 시간의 집안일을 드디어 마무리했다. 분리수거가 오늘 할 일의 끝이라는 안도감과 2시간째 집안일을 한다는 짜증이 뒤엉킨 채 기숙사 문으로 향했다. 그때, 문 앞에 몇 명의 교환학생들이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신경도 안 쓰고 방으로 향했겠지만 여기서는 인사를 나눌 수 있는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이 환경 속에서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잘 모르는 누군가라도 인사를 나누는 게 필요하다. 막상 문 근처로 가니 눈에 익은 얼굴이 몇몇 있었다.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들이었다. 지금 다 같이 뭐 하느냐 물으니, 파티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파티? 어디서? 파티를 할 만한 공용 주방은 분명히 불이 꺼진 채 잠겨있었다. 어디서 파티 중이라고 물으니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가 명의 방이라고 답하고, 그 방의 주인이 나보고 놀러 오라고 말했다. 기숙사 방에서 파티를 한다니, 내 뇌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신발에 묻은 눈을 털고 방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파티 중이었다. 방은 널브러진 맥주 캔과 보드카 병, 그리고 EDM 음악 소리로 가득 차있었다. 작은 클럽과 다를 바가 없었다. EDM 음악에 맞춰 다들 리듬을 타고 술을 마셨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 흥에 겨운 친구가 보드카를 원샷하고 다른 사람들을 하나둘씩 가리키자, 다들 술을 원샷하기 시작했다. 기숙사 방에서 이렇게나 흥겨운 분위기를 체험하는 건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어느새 나도 그들의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아비치의 노래를 떼창하고 논 뒤,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친구를 따라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It's only Saturday 9:00 pm."

토요일 아홉 시에 누가 자냐는 답변이었다. 토요일 저녁 아홉 시 밖에 되지 않았는 데 누가 방 안에 있겠느냐. 설령 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말일 테지만 다른 사람 신경 안 쓴다는 말이다. 기숙사 파티를 처음 봤을 때, 내가 처음 들었던 생각은 '다른 사람들이 항의하면 어떡하지?' '기숙사에서 쫓겨나는 거 아니야?'이었다. 두려움이었다. 사실 공식적인 루트로 항의가 접수돼서 파티에 참여했던 모두가 징계를 받을 확률은 매우 희미하다.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상상해서 그 상상 속에서 두려움이라는 우물에 제 발로 빠졌다. 나는 왜 이럴까? 저 친구들처럼 왜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할까? 왜 내 뇌 안에는 즐기기도 전에 무서워하는 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을까? 이유는 중요치 않다. 내게 온전히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는 것과 그걸 어떻게 지울 수 있을지 알아내는 게 핵심이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이 날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기숙사에서 파티를 연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꽤 먼 클럽까지 간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20년 간 학습된 내 우물 속 깊은 곳에 박힌 두려움이라는 돌을 빼내는 긴 여정을 교환학생 기간 중 끝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