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대에 우리의 주군은 돈

스웨덴에서 살아남기 #7 + 안희정 전 지사 항소심 이야기

by 조현서

최근 Nordic Wellness 피트니스 센터 6 개월 멤버십을 거금 이십만 원을 주고 등록했다. 운동을 하는 데 이렇게 큰돈을 한 번에 쓴 건 처음이었다. 타지에 이방인으로 있을수록 더 건강에 신경 써야 했기에, 20만 원은 굉장히 큰돈이었지만 내 건강은 적어도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카드를 긁은 뒤, 꽤 넓은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 십 개의 러닝머신과 덤벨, 바벨이 한껏 모여있는 헬스장에는 군데군데 사람들이 꽤 보였다. 다들 굉장히 능숙하게 운동 기구를 이용하는 모습에 괜스레 주눅 든 채로 운동을 시작했다. 함께 동호회에서 <렌트>를 올렸던 하주영 형의 도움으로 몇 가지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법을 배운 덕분에 몇 가지 아는 기구가 있어서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금 하주영 형님께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내가 사는 서울의 아파트에는 거주자들을 위한 작은 헬스장이 있는데, 가는 데 3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운동을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운동하고 난 다음날이었다. 운동 부족인 나는 조금만 운동해도 뻐근함을 느꼈고, 근육이 조금의 뻐근함을 느끼자마자 근육은 내 뇌로 '귀찮음'이라는 감정을 전달했다. 내 뇌는 근육의 귀찮음을 받아들이자마자 나에게 당장 침대에 누울 것을 명령했다. 이미 침대와 귀찮음이라는 마약에 점령당한 내 뇌는 고작 3분밖에 걸리지 않아도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했다. 하루 운동하고, 며칠 쉬고, 건강에 대한 죄책감이 극에 달할 때 너무 가기 싫은데 터덜터덜 운동을 가는 일상의 반복되었다.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직 2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스웨덴에서는 달랐다. 등록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 아직 헬스장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물론 작심삼일, 작심한달로 끝날 수 있지만 나에겐 이렇게 작은 성취 조차 운동에서는 이뤄낸 적이 없었다. 스스로 신기했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보다 발전한 건가? 그럴 리 없다. 적어도 내 경험상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나는 특히나 더더욱 그렇다. 도대체 어떤 차이일까?

답은 자본주의다. 한국에서의 헬스장은 경제적으로 나에게 거의 부담이 없었다. 아파트 거주자를 위한 작은 헬스장의 이용료는 고작 한 달에 1 만원이었다. 싼 가격이라고 볼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큰 부담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는 5개월에 20만 원이었다. 게다가 교환학생으로 다른 나라에서 더 한정된 예산으로 살아가다 보니, 20만 원이 평소보다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몇 주간의 생필품을 살 수 있는 돈을 헬스장에 투자했다는 생각은 '귀찮음'이라는 감정을 꽤나 손쉽게 밀어냈다. 적어도 20만 원 이상의 효용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귀찮음'을 밀어내고 현재 내 뇌를 지배 중이다. 돈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나는 전혀 변하지 않았고, 내 삶과 내가 할 수 있는 운동도 (물론 더 다양한 운동을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하지만, 내 행동 방식은 백 프로 바뀌었다. 단순히 평소보다 5배의 돈을 투자했다는 생각이 내 행동을 결정한 것이다. 마치 삼국지에서 유비 혹은 조조 같은 주군을 섬기고 주군이 내가 해야 할 일을 정해주는 것처럼, 돈이 내 행동을 정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주군은 돈 아닐까.

김지은 씨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인한 소송에서 안희정 전 지사에게 승소했다. 법원은 안희정 지사의 업무상 위력 행사를 인정했다. 특히 1심에서 수행비서로서 안희정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집을 찾아다닌 행위를 피해자의 모습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걸 항소심에서 정반대로 뒤집었다. 피해자의 성격이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피해자의 대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합리적인 지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로서 순두부집을 찾아다닌 게 왜 도대체 피해자의 행동이라 볼 수 없는가. 자본주의 시대에서 사람들 모두의 주군은 돈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행위는 피해자/가해자의 행위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해야만 하는, 싫어도 무조건 해야 하는 행위이다. 우리의 주군은 돈이니까. 호구지책을 위한 행위를 '피해자'라는 편협한 범주에서 분석하지 않은 항소심의 결정이 반가운 와중 씁쓸함이 목까지 차오른다. 안희정 전 지사의 위력도 돈에서 나온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