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없는 교회

스웨덴에서 살아남기 #19, 오로라 보기 프로젝트 #3

by 조현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북부 스웨덴의 작은 도시 키루나에는 오로라만큼 신기한 건물이 있다. 바로 교회다. 한국인에게 교회는 굉장히 익숙하다. 체코의 성 비투스 대성당이나 오스트리아의 슈테판 대성당같이 거대한 명동 성당이 서울 한복판에 있고, 작은 교회들은 빌딩 숲 속에도 붉은 십자가로 그들의 존재감을 알린다. 밤에 빌딩 숲 속 이리저리 보이는 붉게 빛나는 십자가는 서울을 사이버펑크 도시처럼 보이게 한다. 십자가가 너무 많아 가끔 기괴하게 느껴지지만, 다섯 명 중 한 명이 기독교 신자인 걸 고려하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현상일 수 있다. 기독교는 조선시대 흥선대원군 시기에 평민 사이에서 유행한 불법 종교였지만 어느새 기독교를 믿는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안타깝게 탈모 및 여타 질병으로 지금은 교도소에서 보석되었지만).


목이 베이는 걸 감수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시궁창같이 썩어빠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지 않을까. 사회적으로 사이비 혹은 극단주의라고 지탄받는 수많은 종교들의 (물론 난 사이비와 사이비가 아닌 종교의 본질적인 차이를 잘 모르겠다) 광신도에게 자신의 종교의 교주 혹은 교리가 세상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 싸워나간다는 믿음이 바로 원동력일 것이다. 다만 병폐를 없애는 방식의 사회적인 합리성 여부가 일반적인 종교와 극단주의의 차이 아닐까. 거목처럼 굳건한 유교 신분제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기독교의 교리는 조선시대 수많은 평민의 희망이었다는 걸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키루나에 있는 Kiruna Pastorat이라는 교회에는 십자가가 없다. 십자가는 곧 교회 그 자체를 상징하는 거대한 상징물인데, 이 교회에서는 찾기 어렵다. 실내 예배당에 들어가야 아주 작은 십자가가 눈에 띌 뿐이다. 빌딩 숲 속에서도 빨간 십자가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우리나라의 교회와는 사뭇 다르다. 심지어 교회 바깥에 있는 황금색 동상도 성인(聖人)의 동상이 아닌 일반인의 동상이다. 운 좋게 유럽을 여행할 기회에서 꽤 다양한 성당과 교회를 방문했는데, 십자가와 성인의 동상이 없는 교회는 처음이었다.


Kiruna Pastorat의 외관은 성인과 십자가의 부재를 배제해도 특이하다. 다른 고딕 혹은 바로크 시대의 성당과 완전히 다르다. 삼각뿔 모양을 띄는 이 교회는 유럽 교회의 화려함 혹은 곧 높게 솟은 모습과 거리가 멀다. 왜 그럴까? 이 교회는 원래 여기서 살고 있는 Sami라는 토착민의 집 모양을 본떠서 지었다. 토착민들의 거주지와 비슷하게 만들어서 토착민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하고 교류를 최대화했다. 교류가 늘어나고 교회 내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면서 역설적으로 십자가 없이 교회의 목적을 더 잘 수행한 것이다. 십자가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건물에 십자가가 없어도 교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관행적으로 무언가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무언가가, 예를 들어 학생에 과 단정한 머리스타일과 교복처럼, 사실은 원래 필수적이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바라볼 때 한 번쯤은 다르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나에게 키루나가 새로웠던 것처럼, 키루나는 나에게 모든 걸 새롭게 바라볼 필요성을 깨우쳤다.


새로운 교회 앞에서 새로운 눈을 지니고 오로라를 기다렸다. 오로라는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