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는 비밀이 아무도 모르는 균열을 일으킬 때

아쉬가드 파라하디의 진가이자 최고의 장점을 유감없이 드러내다.

by 조현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본 리뷰가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쉬가르 파라하디 감독은 항상 인물 사이의 정보력 격차를 이용한 대화의 차이을 통해서 스토리 내 서스펜스를 조성하는데 탁월함을 보인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도 별거를 하기로 한 부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차이로 의한 대화, 그리고 그 대화가 빚는 오해가 점점 파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굉장히 세심한 터치로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대화는 너무나 현실성이 있어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이 아닌가 착각을 할 정도이다. <세일즈맨>도 마찬가지로 아내와 남편 사이에서의 정보 차이가 서로 간의 대화를 하는 데 있어 같은 말도 다른 뉘앙스를 지니게 한다. 아내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의 원인은 바로 아내가 겪었던 일을 아내만 알고 남편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굉장히 유사하다.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할 때 하는 가장 큰 착각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당연히 상대방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까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와 <세일즈맨>보다 더 가벼운 층위의 비밀이자 공유되지 않은 정보를 다루지만 그 비밀이 불러일으키는 파국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크다.

결국 '누구나 아는 비밀'은 바로 라우라 딸의 실제 아버지가 라우라의 남편인 알레한드로가 아닌 파코라는 사실이다. 이 '비밀'은 가족이 아닌 마을 사람들도 짐작하고, 가족들은 거의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아쉬가드 파라하디 감독은 이 비밀을 능숙한 연출력을 통해 관객들이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알레한드로가 거금을 기부했지만 현재 돈이 없다는 사실 같은 부차적인 정보를 하나 둘 풀어 관객을 현혹시킨다. 부차적인 정보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모두를 의심하게 만들지만 결국 딸의 실종 사건을 꿰뚫는 정보는 실제 아버지가 파코라는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아쉬가드 파라하디의 놀라운 연출이 돋보이는데, 부차적인 정보를 통해서 사건을 점점 진전시키면서 이야기를 단선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부차적인 정보가 특정 인물을 딸의 유괴범인 것처럼 의심하게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그 범죄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로도 기능한다. 효과적으로 정보를 활용하기에 가족 영화임에도 서스펜스가 엄청나다.

아쉬가르 파라하디 감독이 이 스토리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혹은 <세일즈맨>처럼 먹먹한 감정이 영화가 끝나면 바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관객은 멍하게 사건의 진상을 관조하는 태도를 유지하다 보면 영화가 끝나 있다. 가족 사이의 단단히 엉킨 실타래를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 아쉬가드 파라하디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내 추측으로는 바로 '균열' 그 자체이다. 균열은 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작품은 균열로 인한 파국 혹은 결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 작품은 누군가와 관계하는 데 있어서 균열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 균열을 얼마나 감내하고, 어떻게 견디는지가 바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핵심이라는 것 자체를 보여주려고 한 것 아닐까. 균열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 지를 파코의 마지막을 통해서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아내와도 견딜 수 없는 균열이 생기고 자신의 딸도 결국 잃을 수밖에 없는 파코의 공허한 표정이 <모두가 아는 비밀>의 목표이다. 이 목표 하나만 봐도 이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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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4

CGV 압구정에서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