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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Nov 24. 2019

071.<쌉니다 천리마마트>와 켄 로치, 그리고 이마트

자본주의의 추악한 민낯에 관하여. 그리고 그 해답에 관하여.

  켄 로치 감독의 신작 <미안해요, 리키>(영어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이다. 그대로 제목을 하지 않은 것이 참 아쉽다)은 점점 사회에서 밀려나는 택배 배달원을 다룬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용해서 노동자를 점점 스스로를 파괴하게 만드는 역설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회사는 택배 배달부와 '고용 관계'가 아니라 '협력 관계'라는 관계를 형성해서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마땅히 지켜야 하는 노동 권리를 지키지 않을 법적 근거를 야비하게 형성한다. 결국 <미안해요, 리키>에서 주인공은 강도에게 택배를 전부 털리고,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가 부서지고, 코 뼈가 함몰돼서 병원에 온 날 회사로부터 '안타깝지만 특정 부분은 당신이 부담해야 한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말과 '혹시 내일 대타는 구했나?'라는 말을 듣는다. 회사 소속 관리인이 특별히 악독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악독한 민낯이다. 결국 주인공은 그다음 날 온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주인공과 심각한 반목을 겪는 아들의 뉘우침과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울면서 택배 회사에 나갈 수밖에 없다. 노동권이라는 개념이 생겼지만 자본주의에선 이러한 피해자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페인트를 칠해도 어느새 조그만 빈틈이 생겨나는 벽과 같다.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 정복동 사장은 자동차에 털이 나게 하는 왁스의 열풍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그룹 본사에서 천리마마트로 좌천당한다.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과 정반대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하에서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는다. 지난해 천 명이 넘는 인원을 구조 조정하는 것을 진두지휘 한 그는 본인이 한 사람, 한 가족의 구성원, 한 가족의 가장의 밥벌이를 끊어버렸다는, 벼랑에서 그 사람을 밀어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미안해요, 리키>에서는 노동자가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을 손쉽게 정당화하는 자본주의의 참혹한 면을 다룬다면,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그 소외의 과정 속에서 자본가 역시 자본주의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한다. 얼핏 <쌉니다 천리마마트>가 이러한 감정적 트라우마를 통해서 자본가의 횡포를 정당화한다고 오독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복동 사장은 천리마마트에 와서 회사 재정을 무리하게 활용해서 알바를 대거 채용하고, 원한다면 모두 정직원으로 전환시키고, 협력업체에 단가를 오히려 올려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허용될 수 없는 정책을 대거 시행한다. 겉으로는 이 정책이 좌천당한 정복동 사장이 여전히 건재한 본인의 지위를 이용해 복수를 기획하는 것이라고 드라마는 설명하지만, 사실 정복동 사장의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극복해 보려는 시도로도 읽을 수 있다.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 정복동 사장이 시행하는 정책은 알 수 없는 요소로 인하여 항상 대형 흥행을 거둔다. 사실상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현실에서는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실현하려고 하지도 않을 정책을 통해서 천리마마트가 점점 본사의 핵심 사업으로 올라가는 과정은 얼핏 실소를 자아낸다. 하지만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 놓치지 않는 단 하나의 리얼리즘, 즉 현실은 대부분의 근로자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마트에 돈을 뜯으려고 억지를 부리는 조폭이 마트 정직원으로 채용이 되었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장면은 얼핏 보면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이지만 다시 한번 바라보면 의미심장하다. 신체적으로 누구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는 사람 조차 '노동' 혹은 '근로'의 범주로 들어가면,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의 시스템에는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드라마와 만화는 넌지시 제시한다. 결국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누군가를 반드시 소외시키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너른 비판과 항상 사회에서 문제의 원인으로 제시되는 '근로자의 노동이 비효율적이다'라는 명제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굉장히 독특하지만 보편적인 결과를 낳는다. <미안해요, 리키>가 자본주의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손을 가리켜서 보여줬다면,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그 그림자에 관한 신기한 우화를 선사한다.


  이마트가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 중이라는 뉴스가 최근에 굉장한 화제였다. 유통업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각계의 분석과 블루 오션을 놓쳤다는 대다수의 의견은 이마트의 패착을 연이어 비판했다. 최근에 이사진 교체를 단행하면서 혁신을 다짐하는 모양새다. 과연 그 혁신의 방향은 무엇일까? 유통업의 한계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배달을 그렇게 많이 하는 시대라지만 나는 올해 배달을 시킨 적이 두 번 밖에 없다. 요즘 시대의 혁신은 내가 잘 이용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더 이상 협력업체의 단가를 후려치고 과도한 업무와 과잉 친절을 요구하는 식이 혁신의 방향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의 이마트의 행보는 어떨까. 고통스러운 현실 <미안해요, 리키>와 비현실적인 우화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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