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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Sep 15. 2019

070. 기리보이 뒤에 숨은 쇼미더머니 제작진

기리보이 방패막이

  기리보이가 인맥 힙합에 대해서 인스타에 글을 남겼다. 최근 쇼미더머니 8 인맥 힙합 논란에 대한 심경의 토로다. '내가 잘한다고 느껴서 함께 크루하는 사람들 좋다고 뽑는 게 무슨 문제인가?'라는 문장으로 요약 가능한 그의 심정은 언듯 보면 타당해 보인다. 자신의 기준에서 잘한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함께 크루 활동을 하면서 예술 활동을 계속했고, 그 기준이 쇼미더머니에도 예외는 아니다는 말은 두 가지를 시사한다. 첫 번째로 기리보이 자신이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하는 기준은 자신이 평소 힙합 아티스트를 판단하는 기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즉, 쇼미더머니만을 위한 판단 기준은 없다는 점이다. 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프로듀서'라는 점에서 누군가의 랩 호불호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견해가 적용되는 건 당연하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자신이 레이블이나 크루에 영입하는 건 오히려 그가 쇼미더머니 '프로듀서'로서 활동할 일종의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문제가 되는 건 바로 두 번째 시사점이다.

  두 번째 시사점은 바로, 프로듀서의 선택이 프로그램의 진행과 상충될 수 있다는 점이다. 1:1 배틀, 절반 탈락 배틀로 대표되는 쇼미더머니의 가혹한 룰은 그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크루 혹은 레이블 멤버를 떨어트릴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작은 실수가 있다면 그가 더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이기고 올라갈 수 있다. 기리보이의 입장에는 이것이 오히려 불합리로 느껴졌을 수 있다. 여태까지 힙합신에서 증명을 더 많이 하고 보여준 것이 더 많은 사람이 단순 몇 가지 실수(혹은 잘못된 선택)때문에 경연에서 떨어지는 건 사람들의 가능성을 100% 담아내지 못할 수 있다. 김승민이 1:1 배틀에서 탈락했지만 패자부활전을 통해서 다시 부활한 건 이러한 지점을 프로그램이 반영하려고 한 시도일 수 있다. 

  다만 이는 시청자의 '합리성'과 분명하게 상충한다. 시청자들의 합리성은 바로 '당시 배틀에서의 승리자가 다음 라운드로 올라가야 한다'에 가깝다. 여태까지 힙합신에서 증명한 것과 그의 커리어 혹은 선호도와 상관없이 당장 그 라운드에서 대중적으로 탁월한 성취를 보인 사람을 올리기를 원한다. 윤훼이가 2차 경연에서 붙었을 때 윤훼이에게 쏟아졌던 비판이 이를 시사한다. 김승민이 떨어졌다가 붙었지만 그를 떨어트린 래퍼가 단순히 인원수 맞추기로 떨어진 것을 대중들이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기리보이 입장에서는 떨어트릴 사람을 정할 때 그 경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었을 텐데, 대중은 그의 다른 정보를 용납치 않는다. 그 경연에서 김승민보다 상대 래퍼가 더 나은 성취를 보였기에 그가 그 라운드에서 떨어졌으면, 김승민이 상대 래퍼를 제치고 상위 라운드에 올라갈 수 없다. 명백한 입장의 차이다.

  예전 더콰이엇과 박재범은 비슷한 종류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여줬다. 그때는 '쇼미더머니' 프로그램도 대중의 공정성에 대한 기준을 최대한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JK가 디기리를 합격시켰을 때도 자신의 만용이었다고 솔직하게 사과하는 모습을 방송으로 보여줬고, 진정성 있는 사과에 대중은 수긍했다. 하지만 지금은 '쇼미더머니' 제작진이 어느 부분에 방점을 두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기리보이의 입장을 온전히 대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건지, 혹은 대중들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건지 파악할 수가 없다. 후자의 경우를 추구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패자부활전 혹은 경연 없이 탈락시키는 과정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 이 경우 기리보이가 본인의 공정성을 부여할 과정 자체가 없기 때문에 시스템적으로 대중들의 공정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번 쇼미더머니의 과정은 그렇지 않았다. 이전 쇼미더머니에 비해서 프로듀서의 주관적인 선택을 여러 번 더 많이 부여했다. 따라서 기리보이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쇼미더머니 시스템 혹은 입장의 문제라 보는 것이 옳다. 기리보이는 현재 쇼미더머니 시스템에서 자신만의 주관적인 공정성을 따랐고, 쇼미더머니 8은 그것을 온전히 반영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따라서 이렇게 공정성 논란이 있는 데도 가만히 있는 쇼미더머니 제작진이 비겁한 것이지, 기리보이가 비겁하다고 할 수 없다. 기리보이는 본인이 더 잘한다고 생각하는 래퍼를 시스템이 보장하는 가운데 뽑았을 뿐이다. 이 선택이 대중의 공정성과 맞지 않는 다면 기리보이 개인이 아닌 그것을 반영하지 못한 시스템을 탓해야 한다. 기리보이 뒤에 숨어버린 쇼미더머니 제작진은 비겁하고 졸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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