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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Dec 24. 2019

073. 다인 일역의 활용

창작집단 작당 김중엽 작 <김군과김군들> 이야기 

  창작집단 작당의 새로운 연극 <김군과김군들>은 청년 시대가 겪는 부조리를 말하지만 그 방향과 형식이 여타 다른 창작물과는 궤를 달리한다. 김 군 1인을 다섯 명이 맡는 방식을 취하는 이 공연에서 단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연출이다. 다섯 명이 한 캐릭터를 맡는 것을 통해서 주인공 '김 군'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청년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분명 '김 군'이라는 캐릭터는 본인만의 특정 서사를 지닌 인물이다. 나름 여유로운 집안에서 자랐고 어머니로부터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인서울 대학교를 무난하게 졸업하는 설정 역시 '김 군'만의 서사다. 하지만 성별이 다른 다섯 명의 배우가 이 한 인물을 연기하는 데서 이러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김 군'의 서사가 남녀, 대학생/비-대학생의 경계를 넘어 청년 전체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는 <김군과김군들>에서 이후 김 군에게 벌어지는 이야기와 시너지를 이룬다. 뒤에 김 군에게 벌어지는 일은 특별히 인서울 대학교를 나오지 않더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인 일역을 통해서 다양한 방향에서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다양한 계층과 소속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이야기로 여기고 이해할 수 있는 극이 된다. <김군과김군들>이 다인 일역 형식을 영리하게 차용한 대표적인 증거다.


  <김군과김군들>에서 눈에 띄는 점은 배우들의 움직임이다. 어떤 때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몸짓으로 연극을 이어가다가 다른 때는 완전히 그 상황에 전형적인 움직임이 나온다. 실험적인 움직임과 완전히 전형적인 움직임이 적절한 배분이 극을 계속 몰입해서 볼 수 있도록 이끈다. 약간은 과장된 동작과 행동이 오히려 그 상황의 본질을 더 꿰뚫어 보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데, 이는 명백히 연출의 공이다. 특히 상담사와 통화할 때 혹은 의사와 대화할 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전형적인 동작을 과장해서 행해도 관객은 '에이, 저게 뭐야.'라고 반응하기보다는 '아...' 하면서 그간 자신이 겪었던 사회적인 소외를 떠올린다. 처음 다섯 명의 배우가 대사를 시작하면서 분위기를 완전히 압도하기 때문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과감한 표현, 즉 과감한 가요 활용,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약간 이질적인 밝은 음악 사용 등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이 극만의 독특한 흐름을 형성한다. 이는 김중엽 연출이 참여한 작품에서 꽤나 자주 보이는 흐름이다. 중간에 군무를 넣은 <딮 SEA 베이비> 혹은 <월간소년>이나 아예 이러한 특징을 극의 주요한 표현으로 끌고 온 <5교주쇼>를 본 관객이라면 김중엽 연출이 추구한 연출이 이전의 배우, 연출, 혹은 공동창작으로 참여한 작품과 일정 부분 궤를 같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전 작품보다는 훨씬 더 표현 방식이 자연스럽고 매끄럽다. <딮 SEA 베이비>는 극의 흐름과 지나치게 이질적이었고(물론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이지만), <월간소년>은 단순히 관객에게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주는 용도에 가까웠지만 <김군과김군들>은 그 표현 방식이 주제를 드러내는 데 확실하게 기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진일보를 보인다. 본인이 연기를 하지 않고 작/연출을 맡은 작품이 본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주제 의식을 표출하는 건 분명 주목할 점이다. 

  

  다만 <김군과김군들>에서 배우들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가끔씩 배우가 몰입을 잃는 순간이 가끔 눈에 띄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동선이 복잡하고 움직임이 많은 장면에서 특히 한 배우가 다른 배우의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마주할 때 순간적으로 놀라는 표정이 순간 지나가는 경우가 한 두 차례 있었다. 극의 집중을 방해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지만 분명 다음에 또 선보일 기회가 있다면(꼭 그랬으면 좋겠다. 다시 가서 보고 싶다) 개선해야 할 지점임은 분명하다. 


  김중엽 연출이 배우 혹은 연출로 참여한 대부분의 작품을 본 일종의 팬으로서 <김군과김군들>은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가 추구하는 방식의 연출과 그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를 가장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하지만 전혀 전형적이지 않게 보여준 작품이 바로 <김군과김군들>이 아닐까 싶다. 일 년에 새로운 연극을 네 편 넘게 올리는 그의 왕성한 창작력과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각각의 연극이 그만의 특징과 완성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더 대단하다. 그의 다음 작품이 더욱더 궁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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