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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Jan 10. 2020

075. 친절한 편견과 나쁜 배려

대상 그룹 E&T Film Festival 베트남 촬영

  배려는 미묘하다. 남을 위해서 기꺼이 무언가를 하는 친절하고 좋은 마음이지만 그 마음이 아주 조금 엇나가도 배려라는 뜻을 잃는다. 배려의 지위를 잃는 가장 손쉽고 간단한 사례는 모두 선민의식에서 기인한다.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잠재의식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배려라는 이름으로 치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더 나으니 도와줘야지. 대한민국을 포함한 수많은 국가를 치욕의 역사로 안내한 제국주의 시대의 기본 사상 역시 배려였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민족의 수많은 사람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배려의 역사가 친절한 편견을 생성했다. 너희가 열등해서 도와주는 거야. 어? 얘 내는 항상 배려해줘야 하는구나. 그런 존재구나. 얘 내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이야. 어느새 특정 나라, 특정 민족, 특정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편견으로 둘러싸인다. 뒤틀린 배려는 아주 친절하게 편견을 생성한다.

 

  '여기는 물이 좀 더러워요.' '이 나라 노점상은 위생이 별로 안 좋아요.' 패키지여행을 갈 때 항상 듣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굉장히 친절한 편견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노점상은 상대적으로 위생이 좋지 않고 물 마시는 건 항상 조심해야 할 문제다. 한국에서도 페트병이 열린 흔적이 있는 물은 마시지 않는다. 미리 개봉된 적이 있는 물을 마시고 식중독에 걸린 경우는 한국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뭍 여행사는 이 문제를 단순히 한 국가의 상대적으로 위생에 덜 엄격한 문화로 교묘하게 치환한다. 전형적인 나쁜 배려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여행에 설레는 마음에 저런 주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상대적으로 사람이 붐비는 강남과 홍대 정도를 제외하고 밤에 쏘다니는 것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왜 '베트남은 밤에 위험해요'라는 말을 당연하게 베트남의 문제로 여기는 걸까? 대한민국은 여러 경제적으로 덜 발전된 국가보다 경제 이외의 여러 면에서 낫다는 잠재의식. 그걸 깨부수는 게 어쩌면 대한민국 내 여타 다른 편견을 깨트리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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