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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Feb 26. 2020

'서연수학교습소는 코로나 때문에 이번 주에 쉽니다'

어머니의 뜻하지 않은 휴원이자 휴가

  최근 어머니는 뜻하지 않게 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몇 일간의 장고 끝에 어머니가 운영하는 서연수학교습소를 일주일간 휴원 하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코로나 때문이었다. 모든 학생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 불가능했고, 이는 아주 적은 가능성으로 교습소가 코로나를 퍼트리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가능성이 크지 않았지만 현재의 사태도 적절한 초기 대응과 신천지라는 변수가 없었으면 벌어질 리가 없었다. 교습소 휴원은 내 생각보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코로나라는 큰 위험에 비해서는 굉장히 작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휴원 하는 기간 동안 하지 못한 수업을 보충하거나 환불해야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천재지변 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사태로 인한 교습소 따위의 휴원, 그리고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세상은 크게 관심 있지 않았다. 혹은 모든 사교육은 본질적으로 과도하게 경제적으로 수익을 얻는 '부정적인 무언가'라는 인식 탓인지도 모른다. 물론 거대 기업이나 강남에 성행한다는 고액 과외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실체를 보거나 경험한 적은 없지만. 서연수학교습소는 안타깝게도 한 수업에 고액을 벌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


  어머니의 부담은 상당했다. 경제적인 측면도 물론 부담이었지만, 교육자로서의 책무 측면에서의 부담이 훨씬 더 컸다.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 어머니는 그 딱 하루 동안 나에게 계속 1시간에 한 번씩 코로나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어머니는 ytn 실시간 뉴스를 시청하면서 끊임없이 교육자로서 어떤 선택이 옳은 지 고민했다. 이러한 사태에도 계속 학원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수학 실력 향상에 기인하는 것이 옳은 지, 혹은 조금이라도 지역사회로부터 코로나가 퍼지는 걸 막아서 학생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이 옳은 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다른 학원에 전화해서 휴원 계획이 있는지 묻고, 교육청으로의 상담 전화에도 꽤 많은 시간을 투여했다. 하지만 정보의 질은 낮았고 양이 쌓일수록 선택의 무게만 무거워질 뿐이었다. 결정해야만 했다. 그 결정의 크기는 비록 작더라도 중요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한 인간이 어떤 가치를 지켜나가야 하는가라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볼법한 선택의 무거움을 어머니는 직접 경험하고 있었다. 나는 몇 가지 행정적 절차를 알아보는 것 이외에는 그 선택의 무거움을 경감시킬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내가 강요한다고 교습소를 휴원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도 어머니가 바로 교육자이자 교습소의 운영자니까.


  어머니는 얼굴이 시뻘게질 때까지 고민했다. 결국 월요일 10시 반에 휴원 문자를 보냈다. 휴원 문자를 내게 보여주며 혹시 표현은 괜찮은지 물어보면서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끝까지 머리를 싸맸다. 이 고민은 어머니가 학원 및 교습소의 운영자이자 하나의 교육자로서 내리는, 여태까지 교육자로서의 인생 중 어쩌면 가장 컸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휴원 결정을 나에게 알리고 거짓말처럼 바로 잠에 빠졌다. 하지만 여전히 새빨간 얼굴과 불편한 표정을 한 채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무려 6시간 동안 잠들었다. 여섯 시간이라는 낮잠 속에서 나는 교육자로서의 책임감의 크기를 다시금 짐작할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는 순간 교육자로서 어머니는 정말 위대한 삶을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별거 아닌 삶이라지만, 이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면서 15년 동안 서연수학교습소에서 최선을 다했다. 역시 세상은 별거 아닌 사람들이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굴러가는, 굉장히 역설적인 공간이었다.


  엄마가 자신의 책임감을 6시간 동안 잠으로 해소하는 동안 나는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머니는 항상 6시에 일어나서 우리 가족의 밥을 챙겼다. 방학 때 혹은 공강 때 내가 아침에 식사를 하지 않을 때는 나를 위해서 한 번 더 식사를 차려줬다. '엄마도 안 먹어서 같이 먹게'라는 말과 함께. 그러면서 나중에 먹겠다고 하면서 내게 가장 맛있는 반찬을 넘겼다. 나는 괜찮으니 같이 먹자고 하면서도 엄마한테 자주 메뉴를 물어봤다. 그러고 어머니는 몇 시간 쉬지도 못하고 교습소에 나가 저녁 9시~10시까지 일했다. 토요일도 마찬가지였다. 일요일에 엄마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물론 그런 날도 항상 잠에서 깨 가족의 밥을 차려줬다. 그러면서 나는 엄마의 가장 소중한 취미인 성당 미사를 논리적인 무신론과 대한민국 종교의 부정부패를 예로 들어 비아냥댔다. 돌이켜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장보기, 쓰레기 분리수거, 집 청소, 화장실 청소, 주말 식사 준비를 담당하면서 집안일을 분담하는 남편에 비해서 한심하기 짝이 없이 돈만 축내는 아들이었다. 


엄마는 호텔에서 메이드 일을 했다. '너희 엄마는 일당백이야.' 엄마의 직장 동료들은 엄마를 그렇게 칭찬했다. 키가 크고 힘이 좋아서 둘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도 잘하고 웬만해서는 지치지도 않는다는 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말은 반만 맞았다. 엄마는 휴일이 되면 죽은 사람처럼 내리 잠만 잤으니까. 저녁마다 술을 마신 것도 엄마 나름대로 고단함을 씻는 방법이었을 거라고 윤희는 생각했다.
지나가는 밤, 최은영

 

  '학원 하면서 이렇게 쉬어보는 건 처음이다.'라는 말을 하며 엄마는 오늘도 누나와 내 아침밥을 차렸다. 빨리 코로나가 잦아들어서 엄마가 마음고생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코로나가 아니어도 자주 쉬었으면 좋겠다. 나도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엄마 몰래 설거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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