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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Dec 31. 2019

074. 60,000원의 행복한 2019년 마무리

12월 31일 난 부산으로 향한다.

  2019년은 참 내게 변화무쌍한 한 해였다. 1월부터 6월 말까지 스웨덴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한국에 있었으면 하지 못했을 일을 여러 차례 겪었다. 칸 영화제에 방문하고, 예테보리 영화제에서 메즈 미켈슨을 만나 셀카를 찍었다. 아일랜드에서 <Once> 영화 촬영지를 갔다. 내가 단순히 생각만 하던 행동이 현실로 벌어졌다. 서울에 돌아와서 두 편의 단편 영화를 찍었다. 영화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악하고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맡은 적은 처음이었기에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일 정도로 중요했다. 극회(연극 동아리)에서 배우로 신입생 연극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처참한 연기 실력에 미안할 따름이었다. 연말에는 처음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기분을 처음 느꼈다. 내가 어딘가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 전혀 막을 수 없었다. 담배로 자기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2019년이 세 시간이 채 남지 않은 지금 나는 ktx 안에 있다. 불과 1시간 전에도 내가 부산행 기차를 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안 했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무런 생각을 거치지 않았지만 어느새 나는 서울역이었다. 표를 예매할 때도 영화처럼 '지금 제일 빨리 있는 열차로 주세요'라고 말했다. 부산행 ktx였다. 60,000원은 아무렇지 않게 사라졌다. 신기했다. 60,000원을 벌기 위한 노력과 이 돈이 쓰이는 데 드는 비용은 전혀 비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60,000원은 국밥을 열 그릇 살 수 있을 정도로 정말 큰돈이지만, 내가 아예 벌지 못할 정도의 어마 무시한 금액은 아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사실은 난 부산행 열차에 올랐다는 점이다.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였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고 하면 먼 그런 친구였다. 하지만 여러 일이 겹치면서 만날 수 없었다. 안타깝지만 삶은 이런 방식으로 흘러간다. 간절히 원하면 오히려 이뤄지지 않지만 별 생각하지 않으면 오히려 어느새 내가 그곳에 가깝게 닿아있다. 이 삶의 방식이 너무 혐오스러워 잊고 싶은 마음에 담배를 연거푸 피워도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그 사실은 더 분명하게 나타났다. 왜 나는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건 내 한계일까?


  고통스러운 사실을 직면할 때 도피를 하면 굉장히 편하다. 쉬는다는 말로 대신하는 도피. 사실 '내가 소모되는 기분'이라는 현학적인 수식어는 '능력 부족'의 유의어다. 능력이 부족하다. 이것만큼 상투적이지만 마음속 깊이 응어리지는 말도 드물다. 그 거대한 마음속 응어리를 마주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때마다 다는 쉰다는 명목 하에 침착 맨 유튜브와 트위치에 들어가서 인터넷 방송을 보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삶이 마치 내의 삶인 양 웃다 보면 어느새 하루는 이미 지나가 있다. 웃다 보면 어느새 난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잊고 일에 몰두할 힘을 얻는다. 이상하고 슬프지만 감사한 위로다.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거대했던 2019년을 혼자 보내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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