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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May 05. 2020

첫 등산

자기 혐오에서 벗어나다.

  내 인생 첫 등산을 결심한 이유는 아는 형이 지나가듯이 내뱉은 한 마디의 말이었다.

  '하이 타트라를 못 갔는데 그게 좀 아쉽더라. 진짜 괜찮다던데.'

  그 한마디에 나는 하이 타트라에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비교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나 자신의 존재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항상 나는 누군가에 비해 무언가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에 비해서는 글솜씨가, 저 사람에 비해서는 지식이, 또 다른 사람보다는 결단력이 부족했다. 비교는 나를 끊임없는 자기혐오의 늪으로 끌어당겼다. '난 왜 그 사람처럼 성공하지 못할까.' 몇 년을 이 생각으로 침전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성공을 온전히 축하하지 못했고 항상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매일 술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던 어느 날 우연히 친한 형을 학교에서 마주쳤다. 마침 저녁 먹을 시간이라 같이 쌀국수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컵라면 아닌 다른 식사를 혼자가 아닌 누군가 함께 하는 게 오랜만이었다. 나는 쌀국수를 먹으면서 형의 유럽 카우치서핑에 대해서 물어봤지만 대답을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나보다 더 빛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 큰 자기혐오에 빠질 것이라고 스스로 단언했다. 물어본 사람이 대답을 듣지 않는 이상한 대화를 하고 있던 와중 형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해서 짧게 말을 꺼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이 타트라였다.

  하이 타트라를 간다면 그 형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생긴다는 마음에 나는 여행을 결심했다.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가득 찬 결심이었다. 그럼에도 무언가 해야겠다고 느낀 것은 몇 년만이었다. 나는 군 적금을 탈탈 털어서 비행기 좌석을 예약했다. 늦은 밤에 출발하는 가장 싼 러시아 비행기였다. 이후 슬로바키아 하이 타트라로 향하는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고 여행 책자를 샀다. 여행을 계확허면서 자연스럽게 술로부터 멀어졌다. 뭔가를 준비하고 행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술과의 만남을 끊은 지 이 주후, 나는 체코행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열등감이 가득 찬 결심이 낳은 결과였다.

  마침내 도착한 하이 타트라는 거대했다.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발이 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가야만 했다. 포기한다면 나는 그 형에 비해서 나은 성취를 해낸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장엄한 자연 앞에서 스스로를 비교의 대상으로 만들 바로 그 때 내 옆으로 한 커플이 지도를 확인하러 다가왔다. 절박한 마음으로 커플에게 말을 걸었다. 동행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커플이 사이좋게 걸어가는 뒤를 쫓아서 등산을 시작했다. 내 인생 첫 등산이었다.

   등산하면서 나는 산 이외에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앞 커플과 경로에 대해서 나눈 대화를 제외하고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산을 올랐다. 하이 타트라와 나만이 존재했고, 산은 그만큼의 집중을 요했다. 가끔 순간 다른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거나 발을 헛디뎠다. 등산에 있어서 다른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산과 나, 둘 뿐이었다. 산은 아주 단순하지만 그만큼의 노력을 요했다. 한 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면 바로 다음 걸음에 최대한 집중해야 했다. 하이라이트는 암벽 등반 코스였다. 잡고 올라가는 철 손잡이와 줄이 있었지만 만약에 놓친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높이였다. 등산 자체가 처음인 나는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식은땀을 청바지에 닦고 나는 천천히 암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만큼 집중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내 발과 손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다음에는 어디를 디딜지, 어느 손잡이를 잡은 지 최선을 다해서 판단했다. 만약에 그 판단이 잘못되었을 시 어디를 잡아야 할지까지 최선을 다해서 생각했다. 다른 생각이 침범할 틈이 없었다. 바위를 하나씩 천천히 딛고 오르니 어느새 탁 트인 풍경이 나를 반겼다. 2000m 높이에서 산맥이 눈앞에 펼쳐진 절경은 내가 나에게 오롯이 집중했다는 것을 보상하는 선물 같았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깊은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내가 처음으로 비교의 늪에서 탈출한 순간이자,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부족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등산과 인생은 본질적으로 같다. 인생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과정이다. 집중하는 데 방해하는 요소들을 하나 둘 찾아 옆으로 밀쳐내야 한다. 그 과정은 등산처럼, 하이 타트라 등반처럼 고통스럽게도 많은 에너지를 요한다. 하지만 에너지를 쏟아부어 목표를 이뤄냈을 때, 예전과는 다른 누군가로 성장한다. 실패 또한 그만의 교훈을 지닌다. 하이 타트라를 통해서 나는 정확하게 이 과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하이 타트라와의 온전한 교감은 자기혐오를 이겨내고 진정한 내 인생으로 더 깊게 들어가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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