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서 Jul 12. 2020

달걀 프라이 만들기

실패란 바로 달걀 프라이 만들기.

  실패는 달걀 프라이를 만드는 것과 같다. 달걀 프라이는 가장 간단한 음식이다. 프라이팬을 약간 달구고 식용유를 조금 두른다. 손을 대서 열기가 느껴지면 계란을 깨 넣는다. 투명한 달걀흰자가 흰색으로 변하면 뒤집개로 프라이 아랫면을 살살 긁어서 프라이를 뒤집는다. 반대 면까지 익으면 접시에 담는다. 특별한 조리 방식이나 불 조절을 요하지 않는다. 달걀 프라이는 라면과 더불어 가장 먼저 해보는 음식이다. 흔히 음식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도 '달걀 프라이는 내가 전문가야.'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먹는 음식이 국민 음식이라면 달걀 프라이는 가장 유력한 국민 음식 후보로 뽑힐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 처음 배운 음식도 바로 달걀 프라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는 내게 처음 달걀 프라이 하는 법을 가르쳤다. 맞벌이였던 우리 집은 엄마나 아빠가 저녁 식사를 항상 준비할 수 없었다. 아빠는 제책사에서 하루 종일 기계를 돌렸고 집에 오면 거의 매일 기진맥진한 채 잠에 들었다. 엄마는 늦은 저녁까지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초등학교 2학년인 나는 혼자 밥을 차려 먹는 법을 알아야만 했다. 어렵지는 않았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쿠쿠 소리가 나는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서 먹는 것이 전부였다. 돌이켜보면 엄마와 아빠는 하루 종일 고되게 일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반찬을 준비했다. 하지만 식탐이 어마 무시한 어릴 적의 나는 엄마와 아빠의 정성스러운 반찬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고기반찬을 찾았다. 엄마는 결국 내게 달걀 프라이를 하는 걸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스레인지를 만지는 순간이었다. 

  달걀 프라이 만드는 법은 어린 나에게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달걀을 깨서 프라이팬에 넣는 것은 너무 재미있었다. 가스레인지에서 불이 나오는 것도 신기했다. 지금 보면 평범하고 진부하기 그지없는 과정이지만 그때는 모든 과정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달걀을 깨는 것, 프라이팬에 넣는 것, 가스레인지 가스 밸브를 돌리는 것, 불을 켜는 것 모두 너무나 해보고 싶었다. 엄마는 내게 두 차례 천천히 시범을 보이면서 흥분한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엄마의 감독 아래 세 번만에 그럴듯한 달걀 프라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달걀 프라이였다.

  엄마의 감독 없이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야 할 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이틀 후, 학원 선생님인 엄마는 예상치 못한 보충 수업 일정이 생겼고, 아빠는 출판사와의 계약을 맞추기 위해 야근을 해야 했다.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린 나는 늦게 온다는 엄마의 전화에 오히려 기뻤다. 달걀 프라이를 해 먹으라는 엄마의 말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게 안전을 주의하라는 말을 몇 분에 걸쳐서 계속했다. 하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서야, 달걀 프라이 할 수 있지? 엄마가 전에 가르쳐준 것 기억나? 가스레인지 사용하고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달걀 프라이'라는 단어가 전화기에서 들리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부엌 앞에 서있었다.

  엄마와 함께 할 때 그렇게나 손쉬웠던 달걀 프라이는 어느새 내게 난공불락의 산으로 변해 있었다. 모든 게 너무나 어려웠다. 달걀을 먼저 프라이팬에 넣어야 하나? 아니 기름을 둘러야 했나? 불은 언제 켜지? 엄마가 불은 가장 약하게 하라고 했는데. 뒤집개는 어디에 있지? 나는 결국 불을 켜지 않은 채 계란 프라이를 넣고 불을 켠 뒤 기름을 넣는 최악의 순서로 요리를 했다. 당연히도 뒤집는 데 실패했다. 불을 계속 켜놓은 탓에 결국 프라이팬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계란과 검은 그을음으로 코팅이 돼서 완전히 망가졌다. 불을 약하게 켜서 화재로 번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는 처참한 광경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고, 울음에 지쳐 잠이 들었다.

  공모전에 떨어졌을 때, 시험을 망쳤을 때, 인턴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글이 몇 일째 잘 써지지 않을 때 나는 달걀 프라이를 해 먹는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열이 올라오면 달걀을 깨트려 넣는다. 투명한 흰자가 온전한 흰색으로 변하면 뒤집개로 뒤집는다. 양면이 모두 익으면 접시에 담는다. 그리고 수저로 조각내서 한 입 크게 먹는다. 처음 달걀 프라이를 한 날을 떠올린다. 실패를 맛 본 그 순간, 나는 흐느껴 울고 싶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면 분명히 해결책이 있고 대안이 있다.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아빠가 해준 달걀 프라이를 맛있게 먹었다. 엄마에게 다시 한번 배웠고 그 뒤로 달걀 프라이를 만드는 데 실수하지 않았다. 달걀 프라이 만드는 거처럼, 실패한 순간이 지나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과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등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