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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Jan 04. 2021

가족이라는 달콤한 환상에 대하여

또한 정인이의 안타깝고 참혹한 죽음에 관하여

  소노 시온 감독이 연출한 <노리코의 식탁>은 '렌탈 가족'에 대해서 다룬다. 말 그대로 가족의 구성원을 '렌트'하는 사업으로, 고용한 사람이 원하는 가족의 역할을 수행해준다.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아들로, 혹은 누군가의 아내로 일하는 주인공 자매는 역설적으로 실제 가족에 있을 때보다 자유로움과 자신의 자아가 자유로움을 느낀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딸을 추적하고 '렌탈 가족' 사업에 일하는 것을 알게 되고, 렌탈을 신청하면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결국 아버지를 마주한 두 딸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노리코의 식탁>의 핵심은 이상적인 가족 관계는 허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가정에 있을 때보다 렌탈 가족으로서 존재할 때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자유로움을 느끼는 주인공을 보면 과연 이상적인 가족 관계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인간관계는 상하 권력관계를 동반한다. 좋은 관계란 이러한 권력관계가 평등하거나, 설령 평등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관계를 의식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해주는 관계를 일컫는다. 대부분 가족 관계는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러한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족 관계는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는 있다(이를 단정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관계도 '좋은 관계'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데이트 폭력이 연일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것과 가출의 가장 큰 이유가 가족 간 불화 및 폭력에 기인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국가가 가족 관계는 '좋은 관계'라는 달콤한 허상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관계를 단정 지어서는 안 되지만 그중 특히 가족 관계는 좋은 관계로 단정 지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왜냐하면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생활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관계일수록, 국가는 이를 가장 냉철하게, 너무 몰 인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차갑게 인식해야 한다. 이 방법만이 가장 참혹한 문제를 은폐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겉으로 보이기에 완벽하고 따뜻한 가정으로 보여도, 학교와 경찰을 비롯한 몇 가지 시스템을 통해서 이를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가족은 좋은 관계이기에' '가족 문제는 가족 문제 안에서 해결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친족 성폭행 범죄는 총 725건에 이른다. 하루에 대한민국 내 두 명의 인간이 자신의 친족에 의하여 성적으로 학대받고 있다. 가족 관계라 해서 좋은 관계라고 절대로 단정할 수 없다. 

  부디 대한민국 내 시스템이 가족에 대한, 더 나아가 관계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꿨으면 좋겠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해시태그로 짧게 타오르는 것으로 끝나는 걸 넘어서야 한다. 국가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관계가 정말로 좋은 관계인지 의심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인이를 구할 기회가 적어도 세 번은 넘게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시스템은 이 기회를 모두 놓쳤다. 왜 놓쳤을까. 가족 문제는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낡은 타성에 젖어 있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자행되고 있는 가정폭력을 막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분명히 방향성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가장 가까운 관계가 가장 파멸적일 수 있다는 인식을 시스템 내 구성원 모두가 완전히 장착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정인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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