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글 쓸 여유를 처음 갖다.

10월 17일 이후, 처음 노트북 앞에 앉다.

by 조현서

10월 17일에 군입대를 하면서 사회와 나 사이에는 그전에 없던 꽤 큰 장벽이 생겼다. 교류를 할 기회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제한적인 수단은 나를 체념하게 만들었다. 인터넷 편지가 고작인 훈련소에서는 특히 생의 의지가 조금씩 계속해서 감퇴하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물론 그 안에 작은 사회가 존재하지만, '자의적인' 사회와 '타의적인'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활력은 천지차이이다. '타의적'으로 조직된 사회가 나에게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얼마나 사람의 의지를 뭉툭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때까지는 몰랐다. (물론 꽤 많은 누군가에게는 이 사회도 타의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이겠지만, 정도의 차이 아니겠는가.)


(극단적으로) 타의적인 사회 속에 젖어 살다 보면, 내가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던 지점들에 대한 소식 조차 굉장히 둥그스름한 것으로 느껴진다. 원래였다면 나의 화를 돋울 일이나 혹은 감성을 자극할만한 일이 모두 체념으로 귀결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최근에 이슈된 육군 내 동성애 이슈도 사회 속의 나였다면 엄청 분노하면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청원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우리나라 아직 멀었네...'라는 생각으로 그 이슈를 끝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우리 사회 수면에 떠오르는, 혹은 점점 만연 해지는 극단주의적 성향의 사회와 그들이 하는 행동들에 대해 만약 군대 들어가기 전이었다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을 텐데, 그냥 안타까움 그 이상의 생산적이거나 창의적인 생각의 일부분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허무주의적 체념이 사회 현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 인생과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그 문제들도 체념과 (가끔씩은) 무관심으로 마주했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때, 슬픔보다는 나 스스로의 무관심함에 놀랐었다.


군대 갔다가 첫 신병 위로 외박으로 3박 4일 동안 사회와 격렬하게 교접을 시도했을 때, 지식향연 그랜드 투어에서 만난 이영근 형님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군대에서 내 뇌가 퇴보할까 봐 걱정이다. 지적 갈망이라는 내 마음속 엔진이 녹아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다.' 그랬기에 그 형을 만날 때 별의별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떻게든 엔진을 살려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그 형의 말을 탐욕스럽게 뇌 안에 각인시키고, 그 각인한 지식을 내 입 밖으로 계속 내뱉으면서 내 엔진은 아직 무사하다는 착각으로 자위했다. 지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그 근본적인 원인은 내 뇌의 문제라기보다는 나 스스로가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갈망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뇌가 사회에 비해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놓쳐버린 끈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모두가 원치 않게 오게 된 '타의적인' 사회 속에서 '의식하지 않는 동안' 점차 삶을 탐욕스럽게 요하는 그 굵은 끈을 놓게 된 것이리라.


누군가의 위로나 이해를 구하는 글도 아니고, 군인들이 이러니까 양해를 구하기 위해 적는 글도 아니다. 어쩌면 나만의 망상일 수도 있다. 타의적으로 조직된 사회에서 더 밝은 생의 빛을 내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나 같은 존재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글도 사실 아니다. 이 글은 내가 나에게 쓰는 선언문이다. 내가 허무의 심연 속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는 선언문이다. 내가 허무의 심연 속에서 생의 의지를 찾아서 늪에서 좀 나와보겠다는 선언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의미를 찾아내는 데 실패할 수도 있고, 그 가능성이 꽤 크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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