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한 두려움과 곰표 밀맥주

by 이백구십칠

지금부터 20년 후에 너는 네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돛을 올려라. 안전한 항구를 벗어나 멀리 항해하라. 돛에 한가득 무역풍을 실어라.

탐험하라. 꿈꾸어라. 발견하라.


- <Mark Twain>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는 미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는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자신만의 실체 없는 적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의 대부분은 실체화되지 않고 망상으로써 곧 사라지지만 망상이 덩치를 키워 수면을 넘치게 되면 물리적 세계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은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정확히는 나이가 들어 사회적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배움이 느려지고, 감각이 무뎌지고, 체력이 떨어져 사회생활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만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에 대항하기보다는 언제가 찾아올 그 시기를 얼마나 의연하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주로 생각하곤 했었다. 때이른 항복선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작은 자극을 준 맥주가 생겼다. 고작 맥주 따위에 자극 받는다는 것이 좀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요즘 편의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맥주 중 하나인 곰표 밀맥주 이야기이다.

처음 곰표 밀맥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SNS를 통해서였다. 처음 보는 맛인데 너무 맛있다는 이야기. 어떤 연예인이 방송에서 언급해서 유명해졌다는 이야기. 예전의 허니버터칩처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이야기까지. 도대체 어떤 맥주이길래 다들 난리인지 맥주 덕후로서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맛이나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야심한 밤 편의점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매대에 놓여있는 수많은 맥주들 중 곰표 밀맥주의 자리만 비어 있었다. 다른 편의점들을 돌아보아도 상황을 마찬가지였다. 직원분께 언제쯤 입고될지 여쭈어보았으나 정확한 정보를 알기는 어려웠다.


결국 같은 방식으로 헌팅의 밤을 2~3번 더 보내고 나서야 곰표 밀맥주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 한 모금 마셨을 때는 과일향이 가장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과일의 향이 홉의 쌉쌀한 맛과 어우러져 적어도 기존의 캔맥주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독창적 맛을 보여주고 있었다. 단지 밀가루를 만드는 회사가 만든 맥주라는 '희귀함'만이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맥주 자체로서의 경쟁력 또한 갖춘 것이었다.

실제로 처음 곰표가 의류, 과자 등의 제품을 내놓았을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올드한 밀가루 브랜드의 재미있는 이벤트 정도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곰표 밀맥주를 필두로 한 맥주 시리즈의 출시는 공고했던 기존 편의점 맥주시장을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보이고 있다. 올드한 브랜드의 장난스러운 콜라보 제품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1952년 생,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넘은 곰표라는 브랜드의 모습은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나에게도 자극을 준다. 개인이라는 브랜드의 가치의 하락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새로운 가치로의 탈피를 시도해왔는가의 문제이다. 그동안 나는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어'라는 핑계로 '정체'라는 안락함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동안 얼마나 새로운 시도를 해왔고, 앞으로 또 어떤 도전을 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